[시네마 리뷰] 콜드 워
[시네마 리뷰] 콜드 워
  • 미용회보
  • 승인 2019.03.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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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어떻든, 사랑만이 모든 것이다”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뻔하다. 언제나 끝을 모른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그렇게 수 천 년을 사라지지 않고 이어왔다. 살고 죽어가는 과정이 모두인 이야기. 거기에 사랑 이야기가 보태진다. 거의 대부분이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만큼 식상하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며 결국은 운명의 사랑 이야기로 나아가는 것. 그것뿐이다.
그렇게 뻔해도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애틋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사랑만이 사람을 살게 만들고, 내일을 꿈꾸게 만들기 때문인지 모른다. 같은 이야기여도 개별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영화는 영화 양식 고유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입혀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와 닿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관객 각자의 경험을 투영시켜 자신만의 감정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비어있는 공간을 관객 스스로 채우게 하며 풍부해진다.
폴란드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콜드 워>도 그렇다. 남녀가 수차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를 새롭게 만들며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다. 영화는 냉전시대 폴란드와 독일,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 곳곳을 배경으로 15년에 걸친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에 집중한다. 1949년부터 1964년까지가 배경이다.
1949년 폴란드, 민속음악단 마주르카를 이끄는 빅토르는 악단을 선발하는 오디션장에서 줄라를 만난다. 두 사람은 곧 연인으로 발전한다. 빅토르는 음악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려는 폴란드 당국에 반발해 1952년 파리로 망명하지만, 줄라는 동행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재회와 만남을 이어간다.

 

 

엇갈리는 만남 속 냉전 같은 사랑

이 영화에서 감독은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에만 집중한다. 다른 인물들은 가급적 배제하고 이야기를 둘러 싼 배경도 뒤로 감췄다. 마치 이 세상에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연출됐다. 영화 초반부 빅토르와 함께 악단을 이끌던 안무가 이레나라는 여성이나 중반부 빅토르가 파리 망명 시절 함께 살았던 작가, 줄라의 남편 같은 주변 인물들은 말 그대로 보조 역할을 하고 뒤로 빠진다.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 재회는 194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1952년 베를린, 1954년 파리, 1955년 유고슬라비아, 1957년 파리, 1959년 폴란드, 1964년 폴란드에 이르기까지 7개의 챕터로 나뉘어 각기 다른 시대 배경 아래 이어진다. 이 시기로 넘어갈 때 영화는 검은 화면을 사용한다. 시간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두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략한 채 만남과 만남 사이 공간을 비워뒀다.
빅토르는 파리 망명 후 한 작가를 만나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줄라는 두 번 결혼한 것으로 나오는데,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의 격렬한 만남에 집중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시대 배경도 마찬가지다. 공산정권이 들어선 폴란드의 시대 공기, 서로 감시해야 하는 상황, 2차 대전 후 승전국에 분할 통치됐던 베를린 상황, 동구권에 불었던 반 소련 항쟁 등은 시기를 건너뛰는 순간 짐작될 뿐이다. 이같은 생략은 당대의 불안한 공기나 억압적인 체제를 강조하며 두 사람의 만남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냉전시대가 갈라놓은 연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사랑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랑의 불가해함을 잇는 효과적인 장치다. 그래서 영화 제목 <콜드 워>는 냉전 같은 사랑에 방점이 놓인 것인지도 모른다. 단절과 갈망, 회의, 환멸로 이어지면서도 사랑을 이어가는 형태, 삶이 곧 사랑인 것처럼 그렸다는 점에서다.

 

음악으로 빈 공간을 채운 사랑 이야기

이같은 공백을 음악과 이미지가 메운다. 무엇보다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폴란드 민속음악과 재즈로 대표된다. 빅토르는 도시 중산층으로 클래식 교육을 받은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작곡가이다. 반대로 줄라는 빈민 출신으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것으로 그려진다. 그 차이만큼이나 음악적 취향도 다르다. 이 차이는 결정적으로 파리 망명에 줄라가 합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빅토르는 공산정권 아래 음악을 체제 선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파리로 망명한다. 파리 망명 후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한다. 줄라가 파리 행을 거부한 것은 빈민 출신으로 자신을 발탁한 당국에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음악적 자유를 꿈꾸는 빅토르는 음악을 체제 선전 수단으로 강요하는 이 세계와 타협하지 못한다. 반면 줄라는 음악적 자유보다 가난을 벗어나려는 욕망이 강하다. 악단 오디션도 신분을 속이고 참여할 정도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봐준 정권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같은 어긋남은 1957년 파리 생활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서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줄라가 빅토르와 살 작정으로 파리에 정착할 무렵이다. 1957년은 비교적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던,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해이다. 감독이 태어난 해가 1957년으로 이 영화의 모티브는 감독 부모의 러브 스토리(두 주인공 이름이 부모의 이름이다)에서 따왔다.

서방 세계에 적응한 빅토르와 달리 줄라는 이 세계가 불편하다. 줄라는 빅토르의 주선으로 재즈 음반을 취입하지만 그리 기쁘지 않다(첫 음반을 길거리에 버릴 정도로 불만이 가득하다). 밑바닥 인생을 포장해야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빅토르의 ‘서구 마인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솔직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폴란드 민속음악의 정서를 대변하는 줄라의 취향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폴란드 민속음악을 대표하는 ‘심장’이라는 곡은 여러 차례 변주되며 이 두 사람의 갈망과 어긋남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처음 줄라가 오디션에서 부른 곡이 날 것 그대로의 ‘심장’이라면, 악단에서 오케스트라 선율과 함께 나오는 활기차고 웅장한 ‘심장’이 있고, 파리 시절 녹음한 재즈 편곡의 ‘심장’이 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단순한 이야기는 이 음악 위에 모든 것을 얹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 영화에서 음악은 비중이 높다.
이미지, 즉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프레임도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폴란드에서 경직된 구도 안에 갇혀 있던 프레임은 파리에서는 구도를 벗어나 인물을 따라 움직인다. 자유로운 감정을 나타내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어쩔 줄 몰라 하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움직임처럼도 보인다.
결국 파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줄라는 폴란드로 떠난다. 줄라를 잊지 못한 빅토르도 결국 감옥행을 감수하며 폴란드로 향한다. 줄라는 이 감옥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한다. 빅토르는 줄라 덕분에 풀려나고 그 사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줄라는 빅토르 품에 안겨 이제 나를 여기서 꺼내달라고 호소한다.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는’ 사랑의 감옥.

결국 둘은 서로를 ‘세상의 것’에서 꺼내고 폐허가 돼버린 성당에서 식을 올리며 사랑을 완성하려 한다. 손을 잡고 벤치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저쪽이 더 경치가 좋다며 걸음을 옮긴다. 카메라는 그 둘을 따라가지 않고 비어 있는 벤치를 비춘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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