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91] THE FIFTH SEASON 다섯 번째 계절
[이달의 책 91] THE FIFTH SEASON 다섯 번째 계절
  • 서영민 기자
  • 승인 2019.04.3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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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FTH SEASON
다섯 번째 계절


N.K. 제미신, 박슬라 옮김, 황금가지 펴냄

 

우리가 아는 판타지소설은 반지의 제왕이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반지의 제왕이 떠오르기도 했고, 제국의 역사를 다룰 때는 로마이야기도 떠올랐다. 이 소설의 무대는 상상속의 고요대륙이라는 곳이다. 고요대륙에는 흔들이라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 계절이 바뀌고, 그 지진을 막을 수 있는 초능력 인간 오로진이 존재한다. 오로진은 타고난 능력으로 주변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해서 지진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오로진들이 흔들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능력인 보님기관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오로진으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겪는 시엔의 이야기다. 우주 어딘가의 행성에는 유메네스 같은 도시가 존재할까? 생존을 위해서 또 사랑하는 아이를 찾기 위해서 고요대륙을 떠도는 시엔의 삶은 평범한 우리 모두의 삶과 닮아 있다.                                   서영민 홍보국장 yms@ko-ba.org

 

                               
인간이 이성이라 부를 만한 것을 진화시킨 이래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모든 특성을 부족함 없이 고루 갖추고 있었다. 아이는 건강했고, 영민했고, 그리고 당연히 살아 있어야 했다. p23
▶▶ 어느 집안이나 민족이나 아이는 희망이고 미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인구절벽이 다가오면 엄청난 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대부분 자신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살기를 바라고, 헌신을 삶의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이 점을 명심하라. 한 이야기의 끝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모든 일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사람은 죽는다. 옛 질서는 무너진다. 새 사회가 탄생한다. “세상은 끝났다”는 말은 대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행성은 변함없이 존재하기에.
하지만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p27
▶▶ 세상이 끝났다는 판단은 대개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렇게 많은 세상이 끝났음에도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끝남이 끝없이 이어지며 연속성을 만들어 낸다. 새 질서도 과거 언젠가 존재했다가 다시 소멸됐고, 다시 만들어진 질서일지 모른다. 몇 만년  역사에서 몇 백년의 차이는 그다지 변별력이 없다.

러나가 너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도 그 구절을 안다. 모든 아이들은 보육학교에서 돌의 가르침을 배운다.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불가에 둘러 앉아 징조를 보고도 믿지 않는 회의주의자들에게 경고하고, 마침내 가르침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사람들을 구하는 전승가(傳乘家)들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p37
▶▶ 이 소설에서는 돌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나온다. 어쩌면 삶의 지혜를 찾는 이정표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아주 오랫 동안 인류의 경험과 지혜는 불가에 앉아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것이 언어였는지 몸짓이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경험과 지혜가 전해지면서 한 걸음씩 전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돌아보지 마라.” 사파가 다정하게 이른다. “더 힘들어지기만 할 테니까.” 
그래서 다마야는 돌아보지 않는다. 나중에 그녀는 그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그보다도 한참 더 나중에, 다마야는 돌아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p64
▶▶ 오로진인 다마야가 수호자 사파를 따라 나서는 장면이다. 돌아보지 마라. 인생은 돌아보면 가지 않는 길이 더 넓어 보이고 힘들어진다.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 또 후회할 때도 있고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는 때도 있다. 그것은 마음이 간사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계절이 되면 모든 것이 변한다. 돌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렇다. 모든 산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할 일을 해야 한다. p112
▶▶ 자연의 계절이 변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할 일 들을 하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 삶이고 그것을 뭐라 탓할 수는 없다. 존재하려면 살아남아야 하니까.

“네 능력은 인지된 위험이 강하든 약하든 똑같은 방법으로 너를 보호하려 든다. 네가 얼마나 운이 좋은 아이인지 알아야 한다. 다마야. 많은 오로진이 가족이나 친구를 죽인 후에야 자기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보통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법이거든.” p134
▶▶ 조산술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타고난 오로진은 평범한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다. 다마야도 그래서 가족들을 떠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마음이 상대에게로 움직이게 된다. 움직여서 이동한 마음의 크기만큼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그렇다. 오로진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땅을 움직이고 지진을 막을 수 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며, 젖꼭지를 빠는 갓난아이 본능보다 더욱 강하고 절대적이다. 그리고 오로진 아이들이 생명을 잃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수록 자신의 위험성을 인지할 나이가 되기 전에 절로 능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p194
▶▶ 지금 지구상에는 수많은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고 매년 엄청난 사람들이 지진과 쓰나미로 죽어가고 있지만 막을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심지어 예측도 쉽지 않다. 소설속의 오로진이 실존해서 예측만이라도 정확히 할 수 있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땅속 마그마에 에너지가 차오르면 폭발하고 또 오랜 세월이 흘러 식어서 경관이 되고 다시 폭발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다.

너는 우리 모두를 대표한다. 누가 이런 처사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교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지저분하면 모든 오로진이 지저분한 것이다. 네가 게으르면 우리 모두가 게으른 것이다. 네가 우리 모두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너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p259
▶▶ 오로진들은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조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계급이 된다. 반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지진을 막고 땅을 움직이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여주인공도 그런 교육과정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초능력자들을 교육시키는 과정이기에 더욱 혹독하고 빈틈이 없어야 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혹독한 벌을 받는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도 불가능한 것을 몇 번이고 거듭해서 마주하고 경험하게 된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도리밖에 없다.
그래서 시엔은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부서지고 망가진 오벨리스크이며, 대지만이 알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알리아의 항구 밑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p309
▶▶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광장에 높게 세워진 오벨리스크를 만나게 된다.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어떤 도시의 중심이라는 상징도 있고 종교적인 상징도 의미한다고 한다.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 많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면 처음에는 놀라다가도 결국에는 받아들인다는 점은 오로진인 시엔이나 우리 인간이나 비슷한 것 같다.

 

 

그것은 마치 그날 북쪽에서 내려온 거대한 힘의 파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세상이 송두리째 바뀐 날, 네 옆으로 비틀어 보낸 그 흐름. 조금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바닥에 네 자식이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기분과도 비슷하다. 한줄기 스쳐 지나가는 날것의 무엇. 만질 수 없지만 뭔가 의미심장하고 중요한 것, 한순간 거기 있었다가 다음 순간 반짝 사라져 버리는 무언가, 처음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사라지고 난 뒤에 충격적인 것. p361
▶▶ 다행히 내가 사는 곳에서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는 파동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동일본 대지진 때 TV 영상 속 거대하게 밀려오는 쓰나미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영상으로만 봤다. 세상의 파동이 한순간에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지만 내가 사고로 인해 세상과 단절해 버릴 수도 있다. 세상이 나를 삼키는 것이나 내가 세상과 인연을 끊는 것이나 결과는 내가 세상과 함께 존재할 수 없음이다.

마치 지금까지는 안 그런 것처럼. 그러나 너는 그녀를 따라간다. 왜냐하면 아무리 굉장한 신화도 전설도 수수께끼도, 아무리 작다한들 희망의 불씨에는 비할 수가 없으니까. 육신은 사라진다. 오랜 세월 통치하는 지도자는 그보다 더 많은 것에 의존한다. p367
▶▶ 고단한 삶의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것도 희망의 불씨이고, 세상을 바꾸는 기적 또한 그 근원을 찾아가면 희망의 불씨를 만나게 된다. 고난 앞에서 희망의 불씨는 강력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육신은 사라지는데 정신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 정신은 엄격하게 말하면 사라진 육신과 함께 정신도 사라졌고, 다른 이의 육신에 정신이 계승된 것이다. 따라서 계승하는 이가 없다면 육신도 정신도 없다.

“어쩌면. 수호자들은 그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로가는 물론이요 둔치들도 주저 없이 없애버릴 거다. 둔치들이 눈치 없이 끼어들거나 방해한다면 말이야. 설령 그들 사이에 계급이 존재하더라도 그걸 아는 건 수호자들뿐이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하면…….” 알라배스터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일종의 시술을 받기 때문이다. 수호자들은 모두 로가의 자식이지만 로가는 아니야. 그런 시술이 그들에게 유독 효과가 좋은 건 보님기관 때문이다. 뭔가를 뇌에 삽입한다고 들었어. 어디서 그런 방법을 배웠는지, 아니면 언제부터 그런 걸 시행했는지는 오직 대지만이 알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조산술을 무효화시키는 능력을 얻었지. 그리고 다른 능력들도. 훨씬 나쁜 능력들이지.” p383
▶▶ 오로진이 조산술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무산시키는 능력을 수호자들이 갖고 있다. 그런 수호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슴없는 처단을 망설이지 않는다. 수호자 사파가 다마야를 늘 보호하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훈육시키고 오로진이 결코 수호자를 거부할 수 없도록 손의 뼈를 으스러뜨리기도 한다. 지금도 뇌에 전기자극을 주어서 파킨슨 병을 치료하거나 시신경이 망가진 시각장애인들의 안경카메라로 인지한 영상정보를 뇌에 전파신호로 보내 사물을 분간하는 방법 등이 개발돼 있다. 어쩌면 이제 어떤 외국어를 배울 필요 없이 뇌에 칩을 꽂아 넣으면 외국어가 통역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감정과 사고체계까지 바꾸어버리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판단을 내리기 조심스럽다.

“그건 말 못해.” 다마야가 째려보자 비노프가 두 손을 들어 올린다. “네 안전을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세상엔 지도자들만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사실은 나도 아직 알면 안 되거든. p407
▶▶ 어떤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분명 지도자들만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모두에게 알려졌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지도자만 알고 실행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월등히 크다면 지도자는 다 알리지 않았다는 대중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 근방은 기반암 위에 온갖 구멍과 통로와 광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세월이 지나면서 문명 위에 새로운 문명을, 과거 위에 계속 쌓아 올린 거지.” p444
▶▶ 내가 밟고 서 있는 곳이 수많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다만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홀로 우뚝 섰다는 오만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 생각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무의식의 산물도 아니다. ‘세상을 바꿀 방법을 찾아요. 왜냐하면 이건 옳지 않으니까.’
배스터는 늘 그녀의 생각을 읽을 줄 알았다.
“더 낫게 만들 순 없다.” 그가 침울하게 말한다. “세상은 항상 이대로일 거다. 지금 있는 걸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세상을 바꿀 방법은 없어.” 배스터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다. “그러니 지금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하렴, 시엔. 아들을 사랑해라. 해적의 삶이 좋다면 그렇게 살아라. 하지만 이보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건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야.”
시엔은 입술을 핥는다.
“코런덤은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누려야 해요.” p492

▶▶시엔은 코런덤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것이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스터가 이야기 해주고 있다. 개혁을 하려면 지금 있는 기득권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하는데 어느 조직이나 기득권자들의 방어는 탄탄하고 뿌리도 깊어서 세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늘 개혁을 말하는 세력이 있지만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세상이 바뀌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어도 일정 정도 세월이 흐르면 또 다시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역사가 되풀이 된다.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으면 재능이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면 저주고.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너다. 교관도 아니고 수호자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야.” p552
▶▶ 시련과 위기가 닥치고 자신이 무너지는 한계를 자기발전에너지로 전환시키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파도에 휩쓸리면 해안가에 초라하게 좌초되는 것이다. 파도를 타고 넘어야 서핑이라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에도 금이 갈 수 있다. 그저 적절한 양의 힘을 적절한 각도로 가하기만 하면 된다. 압력과 취약점의 중심축에. p581
▶▶ 가장 효과적인 공격은 가장 취약한 곳에 정확하게 힘을 가하는 것이다. 커다란 바위를 그냥 쇠망치로 때려쳐도 부술 수 없지만 미세한 바위틈으로 정을 박고 쇠망치를 두드리면 부서진다. 틈이라는 가장 취약한 곳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몸속 곳곳에 박혀 있는 돌들이 눌려 금이 가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알라배스터는 그녀에게 몸을 들이댄 채 다시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너는 깨닫는다. 지랄맞고 사악한 대지여, 그는 전혀 미치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미친 적이 없다.
“말해 봐라. 달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p593
▶▶ 시엔의 인생이 지랄맞고 사악한 대지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미쳐버린다면 혼란을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둔 알라배스터의 마지막 질문이기도 하고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알라배스터는 죽어가면서도 미치지 않았고, 시엔에게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고요대륙에서의 삶을 마감하면서 새로운 우주인 달에 대해서 묻고 있다.
“시엔, 나는 죽지만 네겐 달이라는 희망이 있어 그곳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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