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DMZ 그 너머, 거기 친구가 있다.
[콘텐츠 큐레이션] DMZ 그 너머, 거기 친구가 있다.
  • 미용회보
  • 승인 2019.05.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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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 17

 

 

군사분계선을 넘는 남북정상 <출처:Money S>

 


군사분계선의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꼭 1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의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악수했습니다. 그리고는 곧이어 1953년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두 나라에 절대적 ‘그 너머’였던 군사분계선을 북으로, 남으로 한 발짝씩 함께 넘는 모습이 전 세계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겼던 역사적 순간이 펼쳐졌지요.  TV를 통해 그 장면을 보며 너무도 생경한 그 장면에 소름이 돋았고 시선을 고정시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17년부터 2018년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사드 배치 문제로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남북 정상이 첨예한 대립의 장소이자 동시에 공유의 장소인 DMZ(Demilitarized zone 국제조약이나 협약에 의해서 무장이 금지된 지역 또는 지대)에서 만난 적은 없었기에 두 정상의 만남은 더욱 각별한 역사적 만남이었습니다. 1년이 지나는 사이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북미 관계 진전이 멈췄지만, 정부는 지난 4월 3일, 관계 부처·지자체 합동브리핑을 열어 'DMZ 평화 둘레길 개방 계획'을 발표하는 등 냉전을 종식하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처음으로 DMZ가 민간에게 개방되는 것이죠.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 방향 각각 2km에 설치된 철책으로 인해 왕래의 금지는 물론 서로를 향한 비방 선전으로 가득했던 그곳에 또 다른 봄이 시작되는 것 같아 이 봄, 두근거리는 마음마저 듭니다.

 

 DMZ 평화둘레길 지도 <출처 : 행정안전부>

 

우리는 목숨 걸고 이곳에 왔어요

한반도에 도는 평화의 바람을 가장 갈망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일까요? 증권가? 개성공단 관련 사업체? 접경 지역 주민들?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이들이 남북 관계의 진전을 간절하게 소망하겠지만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는 실향민이나 북한 이탈 주민들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실향민들은 세월이 흘러 기억이라도 희미해진 측면이 있지만, 북한 이탈 주민들은 살기 위한 선택으로 가족을 두고 떠나온 뼈아픈 상실감과 죄책감, 돌아가지 못하는 그리움과 탈북 과정 시 겪은 죽음의 공포와 몸과 마음의 상처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돌고 돌아 짧게는 한 달 아니면 몇 년에 걸쳐서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북한 이탈 주민들입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초미의 관심은 북한의 핵이죠. 그러나 그 정치적 이슈 너머, DMZ 너머, 거기 사람이 있습니다. 거기 떠난다는 말도 못 하고 떠나온 친구와 엄마, 자녀가 있음을, 거기 사심 없이 뛰어놀며 꿈을 키우던 고향이 있음을, 거기 이별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한겨레가 있음을 적어도 대한민국의 우리는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전쟁과 DMZ <출처:고성 DMZ박물관>

 

통일을 꿈꾸는 ‘먼저 온 미래’

전 세계 최후의 분단국가인 우리 한반도가 다시 어떤 물살을 탈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전과는 다른 변화의 물결을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이미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전망을 예측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이 극소수였던 시절, 그들 대부분이 군인이었기에 ‘귀순 용사’라 불렸지요. 하지만, 계층 범위가 넓어지고 숫자가 불어나면서 ‘탈북자’, ‘탈북난민’, ‘새터민’ 등으로 부르다 3만여 명에 이른 오늘날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을 공식적인 용어로는 ‘북한 이탈 주민’이라고 칭합니다. 전국 곳곳에 둥지를 틀고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북한 이탈 주민’이지만, 소수의 TV 프로그램과 언론사의 기사 등을 통해 이들이 살아온 환경 중 극소수만을 간접적으로 소비하는 형태로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정전협정이 거론되는 시대에 남북한을 모두 경험한 북한 이탈 주민은 서로의 이질감을 줄이고 상호 교류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기에 ‘북한 이탈 주민’을 표현하는 ‘먼저 온 미래’라는 은유적 표현이 있습니다. 저는 참 따뜻하고 포용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세대는 사상이라는 반목에 잡혀 이질감을 좁히지 못할 수도 있지만, 청소년들인 신세대는 서로 간의 화합을 더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기에 희망을 갖게 됩니다. 최근에 저는 ‘먼저 온 미래’의 핵심 세대인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바라는지를 담은 책을 출간하며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DMZ 박물관 외부 <출처:고성 DMZ박물관>

 

 

DMZ 그 너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겨레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북한 이탈 청소년들은 수도 평양 외의 특정 도시를 제외하고는 전기 사정이 아직도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어두운 밤길을 걷다 길을 잃고, 밤에는 책을 읽을 수 없었던 북한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태양광 랜턴을 만들었습니다. 랜턴과 분단 70년을 상징하는 꽃씨 70알과 함께 북한에 보내게 될 편지에는 남겨진 가족에 대한 미안함,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 기억이 사라지는 두려움, 평화통일의 희망, 다시 꼭 만나자는 학생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겼습니다. 최후의 분단국가에서 사는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왜 그들이 그곳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들의 눈물과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책 작업을 하면서 한민족인 북한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돼서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북한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북한 이탈 주민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멀지 않은 DMZ 그 너머에서 살아가는 상실의 아픔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학생의 편지글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함께 상상하고 설레며 꿈꾸고 싶습니다.
 

친구들아! 보고 싶다.


니들과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이렇게 보고 싶고 그리울 줄 꿈에도 상상을 못 했었어.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어가고 있네. 깜깜한 저녁에 자리에 누워 천정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니들과 함께 강에 나가 고기도 잡고 어죽도 끓여 먹고
강에서 실컷 미역감으며 놀던 그때 추억이 떠오른단다.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요새 한국은 새 정권이 들어오고 북한과의 관계도 좋아져 갑자기 통일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 니들이 살고 있는 그곳도 그런지 모르겠네.
우리 이제 통일이 되는 그때 다시 만나 어릴 때처럼 추억을 만들어 가자.
난 그날을 상상해보면 막 설레고 너무 행복해.

 

『우리 북동네 잘 있니?』 한 학생의 편지 중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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