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기생충
[시네마 리뷰] 기생충
  • 미용회보
  • 승인 2019.06.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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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 없던 계획이 이뤄진 ‘운수 좋은 날’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기택(송강호)은 부잣집 영어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학졸업장을 위조한 아들 기우(최우식)에게 계획이 있는 것 같다며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아들 기우가 그 대학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위조가 아니라고 말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기우의 첫 번째 계획은 성사된다. 계획은 이어진다. 기우의 소개로 딸 기정(박소담)까지 미술 치료 교사가 된다. 다음은 기정의 계획으로 연결돼 아버지 기택이 운전기사로 취직한다. 기택은 아내 충숙(장혜진)을 가사도우미로 소개한다. 계획의 연쇄는 온가족을 고정수입자로 만들었다. 이들이 ‘침입’한 곳은 글로벌 IT기업 박동익 사장(이선균)과 사모 연교(조여정)의 대저택이다.

사실 이들의 계획은 계획에 없던 것이다. 무기력하게 피자박스 접는 일로 연명하던 이들 가족은 계획으로 내려앉은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인 기택에게 계획은 불길하기만 하다. 치킨, 대만 카스테라 등 계획대로 이뤄진 게 없어서다. 기택에게 계획은 무계획이다.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획에 없던 일자리는 기우의 부잣집 친구 민혁(박서준)이 재물운을 가져다준다는 산수경석을 전해준 후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산수경석은 영화의 처음을 열고 영화 내내 기우를 따라다니는 역할을 한다. 기우는 이 돌을 보고 참 상징적이라고 말하고, 기택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보탠다. 어쩌면 계획에 눌린 기우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경의 대상인 민혁처럼(기우는 민혁의 말인 정신 차려, 기세를 따라 한다) 되고자 하는 신분상승의 욕망이다. 기우는 계획을 망설이던 기택을 대신해 결심한 이후 행동에 옮길 때 수석을 활용한다. 영화 후반부 기우의 계획도 수석을 자연 상태로 돌려놓은 후에 나온다.
영화 <기생충>은 계획으로 시작해 계획으로 끝나지만, 계획의 선을 넘어서지 못한다. 산수경석이 가져다준 재물운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한다.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더 나빠진 상태로다.

 

 

계단의 정치학

이들은 계획대로 계단을 오른다. 반지하의 제한된 풍경에서 벗어나 언덕 위의 전망을 꿈꾼다. 이 영화는 두 개의 공간을 축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 공간과 박사장네 대저택이다. 중반부까지 두 가족을 대칭적으로 배치하며 희극적으로 묘사된다.
공간의 대칭은 영화 초반부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반지하방은 와이파이를 잡는 장면을 통해 공간 곳곳을 보여주며 기택과 충숙까지 한번에 훑어나간다. 박사장의 대저택은 기우의 첫 방문 장면에서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 공간을 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이 대칭에서 계급의 차이가 드러난다. 수직으로 이어진 공간 사이에 계단이 놓여 있다. 기택의 가족은 주로 올라가고 내려왔다 다시 올라간다. 계단으로 상징되는 신분 상승의 욕망이다. 반면 박 사장은 오르거나 내려가는 장면이 없다. 아내인 연교는 내려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우와 기정에게 호감을 표했을 때다. 이들의 ‘침입’을 허락한 순간이다.

햇빛이 허락하는 범위나 물을 바라보는 위치도 다르다. 박사장 가족이 폭우가 지난 뒤 미세먼지가 사라져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는 위치에 있다면, 기택의 가족에게 폭우는 재난이다.
폭우와 함께 지하 벙커의 존재가 드러나며 재앙이 시작된다. 잊고 있던 존재가 나타나면서다. 충숙이 이 집에 가사도우미로 들어올 때, 기정과 기택의 책략으로 그 자리에서 쫓겨난 문광(이정은)이 나타나며 영화의 서사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지하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가족의 존재가 드러나면서다. 문광 부부다. 지하는 박사장 가족도 모르는 공간이다. 문광은 이 저택을 지은 건축가 남궁현자가 살던 때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했다. 그래서 유사시 피신을 위해 만든 지하 벙커를 알고 있다. 이들은 기택 가족보다 먼저 이 집에 기생해온 셈이다.
이 때부터 영화는 속도가 붙고 서스펜스가 더해지며 긴장을 높인다. 기택 가족은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틈을 이용해 그 집에서 술판을 벌인다. 폭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이 두 가족은 이전투구를 벌인다. 그 사이 캠핑을 떠난 박사장 가족이 폭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연락한다. 문광부부를 제압한 기택 가족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거실 탁자 밑으로 숨는다.
빠져나올 때의 모습은 벌레의 형상이다. 영화 초반부 곱등이와 방역차를 등장시킨 것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저택으로 올라갈 때의 과정이 생략된 것과 달리 겨우 빠져나온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두 공간의 거리감, 계급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다. 이들을 기다리는 건 폭우로 잠긴 집이다. 흡사 난민의 모습이다.

 

 

냄새가 선을 넘을 때

그리고 파국을 맞는다. 지하에만 머물렀던 문광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처음으로 계단을 오를 때다. 근세는 문광의 죽음을 확인한 후 기택네 가족을 타격한다. 파티 장소는 아수라장이 된다. 기우는 돌에 뭉개지고 기정은 칼에 찔린다. 근세는 충숙에게 찔리며 기택은 박사장을 가격한다.
기택이 박사장을 찌른 이유는 냄새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모멸감에서다. 기택은 의도치 않게 박사장이 자신의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한 말을 듣는다. 지하철 타는 사람에게 나는 냄새라는 것. 파티장소에서 박사장은 쓰러진 근세 뒤에서 차키를 찾으면서 코를 막는다. 이 행위가 기택의 모멸감을 자극했다.
어쩌면 이 장면은 기택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근세와 자신의 처지가 같다고 깨달은 순간일 수 있다. 기택은 반지하에 있지만 지하에 있는 이들과 계급이 다르고 이들을 떨쳐내려 했다. 결국 기택도 지하로 추락한다.

냄새는 비극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상징일 수 있다. 지상으로 올라선다 해도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는 슬픔이다. 냄새는 묻어나 사라지지 않는다. 기택이 냄새가 선을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기우는 다시 계획을 세운다. 박사장 저택 지하로 잠입한 아버지를 꺼내기 위해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겠다는 계획이다. 어쩌면 이 계획은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무계획일지 모른다. 실현 불가능(실제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 저택의 현재 시세를 최저임금으로 한푼도 안쓰고 모으면 547년이 걸린다고 말한 바 있다)하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세계관은 냄새와 계획으로 압축된다. 이미 신분과 계급이 고착화돼 올라설 수 없고,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이다. 그 속에서 분노는 위로 향하지 않고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도 보여준다. 지하 공간은 우리가 애써 잊고 있거나 외면하려는, 흡사 유령(박사장 아들의 트라우마의 원인은 어렸을 때 근세를 봤기 때문이다)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공생하지 못하고 서로를 기생으로 떠밀며 더 잔인해지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희망은 있는 그대로의 슬픔을 직시한 후에 오기 때문이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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