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모두를 울게한 그의 사물함
[콘텐츠 큐레이션] 모두를 울게한 그의 사물함
  • 미용회보
  • 승인 2019.09.0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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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 21

 

출동 벨은 예고 없이 울린다
자꾸 눈길이 가는 TV 광고가 있습니다. 국내 유명 제약회사의 대표 장수 상품인 피로회복제 캠페인 광고였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대한민국 소방관 스토리로 광고 영상은 출동벨이 울려 급히 출동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복귀 후 라면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이 또다시 출동벨이 울려 계속해서 사고 현장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이 이어지죠. 출동 복귀 후 한 땀과 그을음 범벅이 된 젊은 소방대원이 지친 얼굴로 “밥 챙겨 먹기 힘드네요”라고 말합니다. 이어 옆에 있는 선임인듯한 다른 대원이 “이거라도 챙겨”라며 피로회복제를 건네며 미소를 짓습니다.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자꾸 겹쳐지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들 또한 대한민국의 소방관이었습니다.

 

그림 1) 출처_동아제약 홈페이지

 

지켜내지 못한 얼굴을 떠올리며
2016년 10월 울산시 119안전센터 정희국 소방교와 강기봉 소방사는 태풍 ‘차바’로 인한 집중호우로 차 안에 고립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어느새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비를 뚫고 차에 가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불어난 물은 허리까지 차올라 소방관들조차 탈출이 어려운 상황이었죠. 정 소방교는 전봇대의 쇠로 된 손잡이를 잡았고, 강 소방사는 바로 옆 가로등 같은 것에 몸을 의지해 버텼다고 합니다. “선배님 저 더는 힘들어서 못 잡고 있겠어요”라고 외치는 강 소방사의 말을 듣고 정 소방교는 함께 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봉아, 우리 같이 물에 뛰어들까” “네...” “하나둘 셋 하면 뛴다. 하나둘 셋~.” 정 소방교는 물에 뛰어들어 몇 바퀴를 구른 뒤 수면 위로 떠올랐고 시야에 강 소방사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고 합니다. 그게 정 소방교가 기억하는 강 소방사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림 2) 출처_연합뉴스_태풍 차바

 

그의 사물함을 열자 모두가 울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8월 5일, 눈앞에서 동료를 떠나보낸 정 소방교는 울산의 한 야산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하루 뒤 그의 사물함을 연 동료들은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정 소방교의 사물함 안에는 자신의 근무복과 함께 3년 전 죽은 동료, 강 소방사의 근무복이 함께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물함에 자신의 근무복과 함께 떠나보낸 동료의 이름이 새겨진 옷을 뉴스로 보며 그의 심정이 이해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인의 옷을 모두 태우거나 폐기하지요. 동료의 옷 한 벌을 나란히 걸어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아프게 전해졌습니다. 정 소방장은 사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자책감을 이겨내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태풍 속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트라우마가 정 소방장을 괴롭혀 왔던 겁니다. 정 소방장은 한 달에 두세 차례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고 평소 6-7개의 알약을 복용해 왔다고 합니다. 현장을 함께 했던 동료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사고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가족을 위해 살아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그가 사물함 속에 넣어둔 숨진 동료의 근무복은 구하지 못한 동료의 몫까지 더 열심히, 치열하게, 성실하게 소방관이자 아버지로서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뜨거운 침묵의 상징물이었을 겁니다. 웬만한 멘탈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못 낼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인이 된 동료의 근무복을 3년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옷장을 열 때마다 얼마나 다짐하고 다짐했을까요. 그의 직면에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는 강하고 강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림 3) 출처_픽사베이

 

모두가 도망쳐 나올 때
그곳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신뢰하지만 극한 직업인 대한민국 소방관. 소방관이 다치거나 순직할 때 영웅이라고 조명하는 것은 잠시뿐, 사람들도 세상도 그들을 빠르게 잊습니다. 정 소방장이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린 다음 날인 6일에는 안성 공장 화재 사고로 또 다른 소방관이 순직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소방관 4만 5천여 명 가운데 우울증 진단을 받은 소방관은 4.9%인 2천2백여 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도 4.4%인 2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전국의 소방관은 모두 15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소방 업무와 관련된 정신장애가 인정돼 순직 처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울산소방본부는 숨진 정 소방장의 트라우마 진료 기록 등 관련 자료를 종합해 순직 승인 신청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직업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는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문제와 책임으로 처리해온 관행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회적 여론이 이미 형성되고 있습니다.

나약해서라고, 말하지 마세요
스스로 생을 놓은 이들을 단순히 나약해서, 혹은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함부로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이 그렇다 하여 그들이 살아온 날들의 성실함과 존엄성마저 삭제당하고 훼손시키는 것은 고인에게도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과정에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번뇌하며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까요. 그저 나약해서, 힘들다는 마음으로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까운 이의 자살로 인해 남은 자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혀 다른 삶을 건네받게 됩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에 따르면 남겨진 자살 유가족의 고통은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위로, 예방하자는 취지로 전하는 언어들에 가슴이 부서져나가는 고통을 겪고 있을 자살 유가족들은 2차적 고통을 겪고는 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을 유가족과 소방관 동료들에게 진심을 다해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시내 곳곳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응급 환자들은
더러는 살고 대개는 죽었다.
죽음은 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곳엔 어김없이 슬픔이 따랐지만
일일이 그 슬픔에 젖어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의식적으로라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낮과 밤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을 향해 다가가야 하는
소방서의 구급 대원으로서, 그 모든 개별적인 슬픔에
동화되어서는 아마도 그 어두운 중량감을 이겨낼 수 없을 터였다.
물론 주관적인 체험을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익숙해졌다고 믿던 그 어느 날에라도,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슬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방관 오영환 <어느 소방관의 기도> 중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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