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94] 옥상에서 만나요
[이달의 책94] 옥상에서 만나요
  • 서영민 기자
  • 승인 2019.09.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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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소설집, 창비 펴냄.

 

놓고 생각하면 별다른 일이 없는 평범한 날들이 있는데 한 달 한 달을 놓고 생각해보면 그저 평탄하게 흘러간 달이 없는 것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의 무게감이 우리 삶의 지도를 그려내려 힘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힘든 달이 있는데 내개는 지난 7월이 그러했다. 7월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8월은 7월 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삶이 그러하다고 내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 여름을 헤쳐 나가고 있다. 물론 9월의 하늘처럼 청명한 날들이 펼쳐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서영민 홍보국장 yms@ko-ba.org

 

 


 

여덟 번째 여자는 칼럼니스트였다. 여자는 결혼해서 사는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혼잣말을 했다. “이제 환멸에 대해서는, 웬만큼 쓸 수 있겠군.” p15
▶▶ 많이 사람들이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을 감행하지만 결혼으로 인해서 불행하다고 절규한다. 그래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정답일까? 그렇게 원해서 하는 결혼이었는데 환멸로 탈출을 꿈꾸는 것이 삶이라면 삶이 그저 허무해진다.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만나지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이민을 가는 걸까? 눈을 뜨면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도시였으면 했다. p25
▶▶ 관계에 지쳐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타자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돈독한 관계를 떠나온 사람들은 타자들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지금 처해있는 감정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결혼을 통해 스스로에게 관습에 순응하는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 여자는, 자주 ‘이것이 관습일 뿐인가?’ 검토하는 사람이 되었다. 의미를 두지 않는 행동은 되도록 하지 않는 사람이. p34
▶▶ 관습이라는 것은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다수의 지혜가 만들어낸 결정일 수 가 있다. 사람들은 오랜 세간과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았던 것을 반복하다보면 관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관습을 깨뜨리지 않으면 현재보다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윤회의 바퀴가 셀 수 없을 거듭 돌아 본래의 육(肉)과 혼(魂)이 먼지만큼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함께 있고 싶은 이들과 함께 있다면 그곳이 극락이다.” p80
▶▶ 그렇게 함께 하고픈 사람이 있을까? 보통의 인간관계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탐색하고 또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이 흐르고, 싫증나는 권태기를 거쳐서 멀어져 가거나 그 전 단계에서 멈추게 된다. 영원이라는 단어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런 인간관계가 있을까 싶다.

아이디어는 한 사람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공기 중을 떠도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물고기처럼 어떤 아이디어는 지표면에 아주 가깝게, 어떤 아이디어는 성층권쯤에서 부유하다가 사람들의 안테나에 슬쩍 지느러미를 가져다 대는 것이다. 비슷한 발명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명되고 비슷한 전설들이 먼 땅에서도 태어나는 건 그렇게 설명이 가능하다. p85
▶▶ 어쩌면 신은 인간을 질투해서 진정한 창조를 허락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인간은 본 것 같은 것들이나 있을 것 같은 것들의 파편을 꿰어 맞추어 창조라는 이름으로 부끄럽게 신에게 내밀 뿐이다.

결국 나는 완전히 포기하고 남편을 방치했지. 사람은 정말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더라고. 불합리함을 지나 부조리함에 가까운 직장에도 적응했듯, 나는 멸망의 사도 남편에게도 적응했어. 남편이 현관에 떠 있든 말든 깊이 잤고, 옷을 갈아입었고, 빨래를 널었지. 흉측한 디자인의 운동기구를 잘못 산 셈치고 외면하려 애썼어. p107
▶▶ 살기 위해서 적응하는 것인지, 적응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정답이 없다. 우리 모두는 기억이 됐든 상황이 자기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적응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p116
▶▶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사랑은 소중한 것이라고 틈만 나면 세뇌를 당했지만 그것의 이율배반을 경험했을 때 절망의 크기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지옥은 죽어서 간다면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역겨운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바로 지옥이다.

“회사는 악독하지만, 어떨 때는 갑옷이기도 하잖아. 조직 밖의 사람들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혼자 세상이랑 싸운다고.” p130
▶▶ 많은 사람들이 밥벌이라는 그 무거운 무게에 짓눌려, 악독한 회사라는 갑옷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문제는 그 악독한 짓으로 억누르는 인간들도 회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님에도 갑질을 부린다. “너 말고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아, 속이 뒤틀리면 나가!”라고 악마처럼 속삭인다.

“하다가 죽지 않는 거, 하고 싶다.”
“있어? 그런 거?”
“……그럼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하고 싶다.”
“그것도 없을 것 같은데.” p142
▶▶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이거를 많이 만들어야겠구나! 뭐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면 편안해지지 않을까.

인생이 이렇게 나쁜 농담 같은 것인 줄 알았더라면 p147
▶▶ 누가 이런 나쁜 농담을 내게 지껄이는지? 분노가 차오를 때가 있다. 나쁜 농담처럼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 싶다.

“무섭지 않니? 우리를 죽일지도 모르는 것들이 우리 몸에서 돋아나고 있어. 종유동굴이라도 된 기분이야. 의사가 이제 치즈, 바나나, 초콜릿, 아보카도를 먹지 말래.” p219
▶▶ 종양이라는 것도 내 몸이 먹고 마시고 숨 쉬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뾰루지 하나가 돋아도 인과가 있을진대 종양은 더할 것이다. 내 몸을 이롭게 하는 근육은 키우고 건강한 피를 생산하고 싶지만 그것이 때때로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식국은 정치?경제적으로 타국에 비해 평등한 편이었는데 그 기저에는 ‘네 놈이 먹는 거 나도 좀 먹자’하는 심리가 깔려있었다. p230
▶▶ 상대를 죽이고 자기는 살겠다는 사람보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같이 죽자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다. 견디기 어려운 모욕이나 공격을 받았을 때 함께 죽자는 유혹에 갈등한다. 더러운 네 놈도 그리 잘 사는데 나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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