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리뷰] 타이페이 스토리
[시네마리뷰] 타이페이 스토리
  • 미용회보
  • 승인 2019.12.0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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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고 사랑은 불확실하다”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시는 언제나 빠르게 변화하며 과거와 현재는 여전히 충돌한다. 그 속에서 사람은 소외되며 자주 쓸쓸해진다. 새로운 출발은 늘 지연된다. 급격한 도시화와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대만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가 전하는 정서다.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끈 에드워드 양 감독이 1985년 연출한 이 영화는 국내 공식 개봉되기까지 34년이 걸렸다. 한 세대에 이르는 시간이 흘렀어도 영화가 전하는 정서는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여기도 미래는 불안하고 사랑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아룽(허우샤오시엔)과 수첸(채금)은 오랜만에 재회하지만 관계는 흔들린다. 오랜 연인 관계인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꿈꾸지만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수첸은 다니던 직장이 대기업에 인수되자 그만두게 된다. 직물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아룽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수첸의 아버지를 돕는다. 이는 이들의 미국 이민 계획을 막는 요소로 작용한다. 여기에 대만으로 돌아오기 전 일본(아룽의 옛 연인이 사는 곳)에 들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이들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

34년만의 공식 개봉, 여전한 울림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는 급격한 도시화와 고도성장에 따른 인물들의 소외와 고독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의 억압과 현재의 불안이 충돌하는 80년대 대만 젊은이들의 풍속화다. 고도성장의 혜택은 고르게 주어지지 않는다.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하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곤경에 처한다.
이같은 정서는 파편화돼 나타난다. 인물을 둘러싼 4차선 도로와 고층 빌딩, 아파트 내부를 보여주는 방식에서다. 인물들은 종종 건물 옥상이나 아파트 내부의 기하학적인 선으로 분절돼 놓인다. 섞이지 못하고 관계가 끊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게 하는 방식이다. 구분되지 않는 건물들처럼 인물들의 소외를 나타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선은 차갑고 어둡다.
이는 수첸의 직장 상사가 고층 건물들이 늘어선 풍경을 보며 수첸에게 한 말에서 드러난다. “건물들을 봐. 다 똑같잖아. 어느 건물이 내가 디자인한 건지 모르겠어. 내가 있는 없든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
수첸의 동생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물 옥상에서 수첸에게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선 전부 내려다 볼 수 있어. 근데 저 사람들은 나를 못 봐.”
에드워드 양 감독은 대만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대만이 처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대만이라는 지리적 여건 속에서 근대화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다.
<타이페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처한 고독과 소외,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공허한 듯 비치는 도시 풍경은 어쩌면 절대적인 억압 아래 놓인 무력감일지도 모른다. 영화 중반부 폭주족의 도심 질주 장면이 상징적이다. 도로 중앙의 장제스 초상화와 중화민국만세 구호를 회전하는 질주 장면이다. 대만은 오랜 기간 국민당 독재가 이어졌다. 1949년 선포된 계엄령은 1987년까지 지속됐다. 세계 최장기간 계엄령이다.

고도성장기, 과거와 현재의 충돌

과거와 현재의 충돌에서 오는 관계의 단절은 두 인물, 수첸과 아룽의 대비로도 나타난다. 수첸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려는 주체적 여성이다. 아룽이 미국에 가 있던 동안 유부남인 직장 상사와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가 하면 동생의 친구인 어린 폭주족 남자들과 아울리기도 한다. 다니던 직장에서 나온 뒤에도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아룽에게 미국에 이민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말하는가 하면 결혼하자는 얘기도 먼저 꺼낸다.
반면 아룽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 오래 머물렀지만 자유로운 사고보다 과거에 갇힌 가부장적 면모를 보인다.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에게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미국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옛 야구 코치가 “LA는 어때?”라는 물음에 대만과 똑같다고 답한 그다.
수첸과 아롱 두 인물의 대비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첸이 미국에서 돌아온 아룽과 함께 이사할 집을 둘러보는 시퀀스다. 수첸은 텅 빈 공간에 어떤 것을 채울지 계획을 말하지만 아룽은 돈이 많이 들겠다는 얘기만 할 뿐 새로운 계획엔 관심이 없다. 이들의 대화는 종종 허공으로 흩어진다. 수첸의 미국 이민 제안에 아룽은 이민 가서 뭘 할지가 문제라고 답하는가 하면, 결혼하자는 제안에는 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룽은 채우고자 하는 것이 없어 보인다. 특별히 바라는 것도, 뭘 하고자 하는 것도 없는 듯하다.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무력감이다. 그럼에도 수첸의 아버지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가 하면 야구를 같이 하던 어린 시절 친구를 돕는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 일본으로 떠난 옛 연인을 떨치지도 못한다. 도쿄에서 타이페이에 잠깐 들른 옛 연인은 그에게 “넌 사람을 동정할 뿐, 사랑을 몰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상은 야구 플레이처럼 단순하지 않아. 세상은 변했는데 너만 그대로야”라고 덧붙인다.
아룽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과거는 잊는 거야라고 말한다. 수첸에게 매달리는 어린 폭주족에게 지난 과거는 잊으라고 말하며 쫓아낸다.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룽은 과거에 멈출 것 같다. 아룽은 칼에 찔려 바닥에 주저앉는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길가에 버려진 TV에서 환상을 본다. 1989년 세계 소년 야구대회에서 대만 소년 야구팀이 우승하는 환상이다. 이는 과거와의 결별일 수도, 끝나지 않은 과거일 수도 있다.
영화는 수첸이 텅 빈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 오프닝과도 이어지는 이 장면은 쓸쓸한 정서를 배가한다. 수첸은 홀로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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