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경제적 빈곤이 관계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콘텐츠 큐레이션] 경제적 빈곤이 관계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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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0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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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㉔

 경제적 빈곤이 관계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2019년 노벨경제학상의 영예는 에스테르 뒤플로와 마이클 크레이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등 3명에게 돌아갔습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지난 10월 14일 선정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공통점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학문적 역량을 쏟은 학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나날이 심화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 부자와 빈자의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실증적인 사례와 통계로 입증했다는 연구 성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림1 2019 노벨경제학상3인 수상자

 

없다. 없다. 없었다.
경제적 빈곤 그리고 관계적 빈곤

2주 후인 11월 초, ‘성북동 네 모녀 동반자살’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 정황상 ‘생활고와 빈곤’이라는 키워드들이 기사를 채워나가고 있었습니다. 네 모녀는 사망 이후에도 고독했습니다. 이들이 숨진 시점은 발견 일로부터 한 달 전쯤으로 추정되는데, 병원 관계자는 “장례식장으로 연락 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경찰 관계자는 “친인척뿐만 아니라 주변에 왕래한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같은 층에 살았던 이웃, 과거 매장의 주변 상인들 모두 “교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회복지 전문가는 “경제적 빈곤이 관계적 빈곤으로 이어져 도움을 구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 그림2 누구도 알지 못한 죽음
▲ 그림2 누구도 알지 못한 죽음

고독사死 이전에
고독생生이 있다

2013년 1월, 필자는 한 사회적 경제 의료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된 이후로 ‘우리 동네 주치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의료협동조합의 가정의학과와 치과, 부인과 이용을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제가 살아가는 마을에 대해 고민하며 마을 도서관, 학습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동네와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는 요즘, 관련 의료협동조합에서 관심사에 딱 맞는 강좌가 있어 참가했습니다. <나이 들고 싶은 마을>이라는 대주제하에 ‘내가 늙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주지?’라는 강좌였습니다. 제목만 봐도 가슴이 서늘하고, 강의 유인물에 있던 ‘고독사 이전에 고독생이 있다’라는 문구는 심장을 파고들었지요.

어쩔 수 없이 살아남을 것인가,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

알코올성 치매를 앓고 계신 필자의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대부분의 자아를 상실한 채로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아마도 당신이 생활하셨던 익숙한 골목길이 있는 마을로 돌아오시지 못하고 병원의 작은 침상에서 이생을 떠나실 현실의 냉혹함에 때때로 아픔이 몰려오곤 합니다. 그럼에도 손을 번쩍 들어 용감한 돌봄의 주역이 되겠다는 용기를 쉽사리 낼 수가 없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지요. 대한민국은 이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 6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대인을 압박하는 사회경제 문화 키워드 중에 100 세 시대의 공포와 불안, 부담감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분출된다고 느끼는 것은 유독 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균수명 100세 시대는 우리 시대에 다가오지 않을 먼 미래의 일 같았으나, ‘재앙’이라는 표현으로 눈앞의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도달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살아남을 것인가,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 그야말로 생의 한가운데서 절박하리만치 현실적이고 냉철한 고민을 마주하게 되는 명제입니다.

서울 집들의 중간 집값이 2019년 11월 현재 8억 7천만 원이라는 관련 기사를 읽으며 필자에게는 저세상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단지 막연하게 유기농 먹거리, 값비싼 영양제와 경제적 계급에 따른 차별화된 건강검진, 지금도 버거운 보험을 더 가입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 이 정도는 있어야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노후자금 준비에 현실을 저당잡힐 것인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절망하여 수저 운운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인가.

 

▲ 그림3 밀집될수록 고독한 사회
▲ 그림3 밀집될수록 고독한 사회

 

구체적이고 실존적으로
명확하게 두려워하자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아플 때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끝까지 나답게, 자기 다움을 지키며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떠날 수 있는 그런 마을에서 나이 드는 것을 꿈꿀 수는 없는 것일까. 그 지극히 소박하고도 인간적인 꿈을 실현해나가려면 지금,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은 누구나 싱글이 되는 인간의 삶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돌봄은 필연적으로 괴로움만 있는가? 아니다. 혼자 돌봄이 아니라 공정한 돌봄이 된다면 다르지 않을까. 피의 연대기로 칭칭 묶어 바라보는 ‘가족밖에 없는 현실’은 돌봄의 부정의성과 돌봄의 실패로 반복되며 자본을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모두에게 이 사회는 불안하고 지속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주거환경, 공동체 환경의 울안에서 나이 들고 질병을 앓게 되는 불가피성을 자본의 굴레에 끼여 갈려 나가지 않으면서, 친밀한 이웃들과 상호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의료생활협동조합의 강좌는 나이 듦, 빈곤과 질병이라는 두려움의 악순환하에서 고립되는 삶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존적으로 명확하게 두려워하자는 메시지였습니다. 모두가 함께 나서서 추상적인 두려움에 지지 않겠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움직여 마을이 달라지면 모두가 안심하며 지속 가능한 마을, 여러 겹의 관계망이 동심원이 되어 퍼져나가는 마을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팔의 솜털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끼며 들었으리라.

함께하는 호혜적 돌봄으로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돌봄은 자본이 답이 아니라 ‘함께’라는 호혜적 돌봄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결국 약자가 약자를 상호 발굴하여 손을 내밀고 말을 걸어 함께 의존해 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경제적 빈곤이 반드시 관계적 빈곤으로 이어진다는 명제의 반전을 제시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호혜적 의존과 순환의 사이클이 마을, 더 크게는 사회적 경제의 틀 안에서 순조롭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면 타자들이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삶의 기억을 잃어 ‘치매 노인’으로 분류되어 배회하는 노인이 아니라 마을 안에서 안전하게 산책하는 노인이 되는 순조로움이라니! 가슴이 찡하고 코끝이 얼얼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은혜로운 관계 맺기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의 빛이 반짝거렸습니다. 부끄럽게도 동네에서 배회하던 아버지는 결국 낯선 타지의 요양병원에서 낡아가고 계신데, 필자는 같은 지역에서 나를 주체로 두고 좀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끝까지 존엄할 수 있는 마을, 자신을 비롯하여 소중한 사람이 짐이 되지 않는 사회, 인간으로서의 삶의 본질에 가장 근접하려는 생태적이며 존엄한 삶을 꿈꿀 수 있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자기 성찰과 함께 하는 철학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 그림4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 그림4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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