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천문: 하늘에 묻는다, 미안해요 리키
[시네마 리뷰] 천문: 하늘에 묻는다, 미안해요 리키
  • 미용회보
  • 승인 2020.01.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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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시간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와 <미안해요 리키(이하 리키)>는 넓게 보면 시간을 다룬 영화다. 영화 <천문>이 독자적인 시간을 갖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그렸다면, <리키>는 시간에 종속된 인간의 삶을 다룬다. 한쪽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시간의 발견을, 다른 한쪽은 그 시간의 초단위에 맞춰 움직여야만 하는 현대인의 힘겨움을 담고 있다. 하늘의 시간이 땅의 시간으로 안착한 뒤의 힘겨움이다.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시간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나 땅의 시간은 인간이 발견한 것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라는 고정된 시간 개념이다. 하나의 기준 아래 지역에 따라 발생하는 시차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일 뿐이어서다.

 

역사적 상상력으로 복원한 숨겨진 이야기

영화 <천문>은 그 하늘의 시간을 땅의 시간으로 바꾸려는 당대의 노력을 축으로 서사를 풀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세종(한석규)과 관노 출신으로 종3품까지 나아간 과학자 장영실(최민식)의 관계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보탰다.
역사적 사실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문장에서 출발한다. 장영실을 기록하고 있는 마지막 문장이다. 세종 24년 3월 16일의 기록이다.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安與: 임금이 타는 가마) 만드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튼튼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장영실은 이 사건으로 문책을 받으며 곤장 80대형에 처해지고 이후 역사에서 사라진다.
영화 <천문>은 여기서 출발해, 세종이 장영실을 그냥 내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20여년에 걸친 돈독한 관계에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서사를 끌고 간다. 여기에 조선만의 시간을 갖고자 했던 의미가 더해져 당대 지배적 위치에 있던 명과 제후국 조선과의 관계도 끄집어낸다. 당시 하늘을 관측한다는 것은 과학이 아닌, 하늘의 뜻을 묻는 신성한 일이었다. 이는 천자인 명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장영실로 하여금 천문을 연구케 하고, 별을 관측하는 천문의기를 제작한 것은 명 황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세종과 장영실은 천문의기를 통해 중국과 조선의 시차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제야 조선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고 기뻐한다.
‘안여 사건’은 이 사실을 알게 된 명이 사신을 파견해 천문의기를 없애고, 이를 만든 장영실을 명으로 압송하려는 와중에 일어난다. 당대 세상의 중심인 명의 시간을 함부로 거슬렀다는 이유에서다.
장영실에 대한 역사의 마지막 기술은 이처럼 당대 역학관계와 정치, 장영실을 생각하는 세종의 애틋함이라는 상상력이 더해져 풍부한 서사가 된다. 여기에는 극을 끌고 가는 한석규와 최민식 두 배우의 힘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 흡사 연인처럼 그려졌다. 이런 관계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으로 멜로 영화 장인의 경지에 올라선 허진호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일할수록 멀어지는 ‘저녁이 있는 삶’

영화 <리키>는 시간에 종속된 현실을 그린다. 성실히 일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일상화된 고용불안이 가족의 삶을 흔들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주목한다.
영국 뉴캐슬에 사는 노동자 계급 가족이 주인공이다. 일용직을 전전하던 리키(크리스 히친)는 자영업자로 택배회사와 계약하고 배송 일을 시작한다. 성실하게 일하면 빚을 갚고 자신의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꿈에 부푼다. 독립 업주로 자신이 일한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회사의 말에 선뜻 계약했지만, 시간 자체가 돈인 회사의 배려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휴가를 내려면 개인이 대체 기사를 직접 고용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벌금도 부과된다.
방문요양사로 일하는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도 정해진 시간 없이 일한만큼 시급을 받는 제로아워 계약으로 시간외 수당을 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다. 이동 시간이나 환자의 집에서 예정된 시간보다 추가로 일해도 노동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리키는 택배회사와 계약하기 위해서는 벤이 필요하고, 회사에서 빌리기보다 직접 구매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 애비의 차를 판다. 하루에 여러 곳의 환자를 돌보는 애비는 차가 필요하지만, 리키를 위해 희생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리키의 소득이 애비의 희생을 상쇄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차를 마련한 리키는 시간에 쫓기며 여유를 잃어간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고를 수습할 여력도 없어졌다. 오히려 움직일수록 곤경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이동수단까지 없어진 아내도 가사 노동에 여러 사건이 겹치며 지쳐간다.

 

 

영화 <리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영국 사회에 만연해진 노동의 불안정성에 주목한다. 파트타임보다도 열악한 제로아워 계약처럼 임시직 노동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긱 이코노미 시대의 모순을 들여다본다. 무엇보다 개인사업자로 회사와 계약을 맺는 택배기사에 주목한 것은 첨단기술을 통한 고도의 노동착취가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화장실 갈 시간도 용납하지 않는 배송 위치 추적 기술과 개인사업자로 계약했기 때문에 문제 발생시 개인이 책임져야하는 구조다.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모순이다.

영화 <리키>는 이같은 불합리한 노동구조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가족을 위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지만 그 일로 가족과 멀어지는 구조적 모순이다. 마지막 장면은 절규에 가깝다.
영화 <리키>를 연출한 켄 로치 감독은 ‘이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한다. 리키 가족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이곳,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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