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2] 쉘위 스케이트? Shall We Skate?
[일상문화탐구2] 쉘위 스케이트? Shall We Skate?
  • 미용회보
  • 승인 2020.01.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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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스케이트? Shall We Skate

50년 만에 한강에서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때문인지 이제 웬만한 한파에도 한강이 얼었다는 소식을 듣기 어렵다. 1950~60년대만 해도 겨울이 되면 한강 중지도(지금의 노들섬) 인근은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며칠 전 약 50년 만에 한강 노들섬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스케이트장이 처음 운영되는 노들섬 야외 스케이트장은 노들섬의 자연 생태 숲, 스케이트장을 둘러싼 나무와 백색 눈꽃 모양의 조명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겨울왕국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볼이 빨간 채 연신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함박웃음을 짓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다보니 오래전 유년의 기억이 슥, 소환되었다.

▲ 사진출처_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 사진출처_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머리맡에 가지런히 두고 잠든
최초의 빨강 스케이트

80년대 중반, 겨울방학 중인 열두 살 소녀는 전날 선물로 받은 빨간색 스케이트가 담긴 가방을 꼭 끌어안고 한참이나 걸어가야 하는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마스크를 써도 얼굴이 얼어붙는 듯한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낡은 운동화를 신은 발걸음은 당당하고 힘찼다. 단발머리에 빵 모자를 쓴 차장 언니의 ‘오라이~’하는 출발 신호를 들으며 고양시 화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만화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열두 살의 소녀가 당시 가장 열렬하게 빠져 보던 만화는 <빙상의 세레나데>라는 스케이트 만화였다. 그 만화를 보며 ‘피겨 스케이터’를 꿈꿨다. 그야말로 꿈이었다. 근 한 달을 혼자서 버스를 타고 겨울이면 논에 물을 대 스케이트장으로 만든 임시 비닐하우스 스케이트장을 다녔다. 열두 살 인생 동안 모아둔 몇 푼 안되는 쌈짓돈을 아마 그 겨울방학에 탕진하다시피 썼다. 숙제였던 <탐구생활>은 쳐다보지도 않고 누구도 묻지도 시키지도 않는 ‘피겨 스케이트 탐구생활’에 빠져 살았다. 버스비, 점심밥인 오뎅 꼬치 1개 그리고 스케이트장 입장료와 스케이트 대여비를 투자하며 나 홀로 빙상 위의 세레나데를 지쳤던 것이다.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이 잘 타는 사람이 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다 혼자 구석에서 연습을 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앞으로 또는 뒤로 다리를 겹쳐 곡선을 그리며 유려하게 탈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하도 많이 넘어져 얼굴, 엉덩이와 무릎, 손바닥은 여기저기 까지고 터졌다. 치수가 안 맞는 스케이트를 빌려 타며 발이 삐기도 하고, 뒤꿈치가 까진 채 반나절 이상을 미친 듯이 스케이트를 지쳤다. 관리인이 이제 집에 가라고 할 때 까지 타다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절룩거리며 집에 와서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 사진2_figure-skating
▲ figure-skating

 

그 겨울방학, 고등학생이었던 큰언니가 그런 소녀를 안쓰럽게 여겼던 것 같다. 용돈이란 게 없던 집안 형편이었는데 큰언니는 어떻게 돈을 모았을까. 그날도 여느 날처럼 얼굴은 찬바람에 얼어 터져 빨간 얼굴로 잘 준비를 했다. 늦은 시간 집에 온 큰언니가 종이가방에서 새빨간 스케이트를 꺼내서 신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어디서 주운 것도 아니고 중고도 아닌 새 제품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그 벅찬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생애 최초로 받은 가장 인상적인 선물이었고, 강렬한 빨강이었다. 그날 밤 머리맡에 빨강 스케이트를 가지런히 두고 잠들었던 소녀. 처음 받아본 큰 선물에 콧구멍의 벌름거림은 멈추지 않았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과 도무지 내려오지 않던 입꼬리가 잊히지 않는다. 아. 눈두덩이가 시큰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당시로서 큰 지출을 감수했을 큰언니의 마음씀에 고마움이 밀려든다. 그나저나 언니는 어떻게 돈을 모아서 방학내내 빨간 볼로 하루종일 자취를 감추던 동생을 위해 빨강 스케이트를 살 생각을 했을까.

 

▲ 사진3_빨강 피겨 스케이트
▲ 사진3_빨강 피겨 스케이트


동물 뼈로 만든 스케이트를 탔다고?

스케이트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 경 북유럽 핀란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석기시대에 이미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초의 스케이트는 커다란 동물의 다리뼈로 만들어졌는데 뼈의 끝부분에 구멍을 뚫고 가죽끈을 끼워 스케이트를 발에 묶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현대와 같은 스포츠 목적이 아니라, 얼음판 위에서 물건을 이동하는 운반기구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뼈 대신 나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나무의 사용은 14세기 폴란드인이 고안해서 운하를 건너면서 확산되었다고 한다. 스케이트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무 또는 금속이 부착되기도 했다. 균형을 잡으면 거의 힘들이지 않고 미끄러운 얼음 위로 달릴 수 있어서 스케이트는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19세기에 제철 기술이 발달하면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하여 스케이트 타기는 겨울철에 즐기는 전 세계적인 대표적인 여가 활동이 되었다. 이에 따라 스케이트 타기에 대한 규칙이 마련되면서 스포츠 경기로도 발전하여,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는데,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쇼트트랙 경기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경기의 특성에 맞게 스케이트화(靴)도 다양하게 개발되었다.


 

▲ 사진4_설마_조선식 스케이트_네이버 지식백과
▲ 사진4_설마_조선식 스케이트_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식 나막신 스케이트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스케이트로 변화하기 시작한 건 1894년 겨울에 서구식 스케이트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뒤부터라고 한다. 얼음 신발 놀이라는 뜻의 '빙족희'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처음 알려진 스케이트는 고종이 경복궁으로 내외 귀빈을 초대하여 '스케이트 파티'를 열고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고 전해진다.

50년 만에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탄다는 뉴스를 보며 올해 50이 되는 필자도 폐장 전에 한강 노들섬에서 빨간색 피겨 스케이트를 꼭 지쳐보리라 다짐한다. 열두 살의 몸이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얼음 위에 그리고 그렸던 선들을 50세의 몸이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몹시 궁금하고 기대된다. 기억해내지 못하면 스케이트 신고 서 있어보기라도 해야지 별 수 없지 않겠는가. 겨울이 가기 전에 뷰티엠 독자들도 스케이트 놀이 추억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Shall We Skate?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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