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 그여자가 쓰는 그남자 그여자 III
생활수필 - 그여자가 쓰는 그남자 그여자 III
  • 김시연
  • 승인 2020.08.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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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1년은 연애기간을 갖고 싶었다. 사계절은 만나봐야 상대방을 알 수 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남자는 1년은 너무 길다고 말하며 자기가 변할 사람 같냐고 했다. 변할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주워들은 게 많아서인지 이왕 늦은 거 좀 더 만나보고 싶었다. 결혼하면 물리기가 쉽지 않을 터, 30대에만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상관없었다. 나의 이런 생각을 들은 친구들은 말했다. 10년을 살아도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고, 심지어 평생을 살아도 모른다고, 다 사람 나름이라고.......

결혼하면 끝이라고?
결국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했다. 끼고 있던 안경 탓인지, 헤어스타일 탓인지, 남매 같다는 말도 자주 들으며 우린 부부가 되었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엄마 품에 살다가, 낯선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이 불편했을 법도 한데, 어쩐 일인지 난 남편이 엄마처럼 편했다.
오래전 엄마와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때 엄마는 일명 '고쟁이' 라고 부르는 헐렁한 바지차림으로 앉아 계셨고 난 그 옆에 누워있었는데 “아빠가 살아계시면 이런 옷 못 입고 있지~”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난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럼, 결혼하면 이렇게 누워있지도 못해?” 라고 말씀드렸다. 엄만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엄~” 말끝을 길게 내뱉으신다. 

헉! 그럼 그렇게 불편한 결혼을 왜 하느냐며, 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곱게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고, 그대로 외출해도 될 것 같은 옷매무새로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서로 지켜야할 것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겠지만 다행히 난 세상 편한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즈음 결혼 하라고 부추기던 지인들은 남편에 대해 질문이 많았다. ‘결혼하니 어떠냐. 결혼 전과 후가 다르지 않냐.’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이제 곧 본성이 드러날 거라며 마치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결혼하고 한 두 달 쯤 지났을까? 퇴근해 들어온 남편이 책을 내밀었다. “이 책 없지?” 「키다리 아저씨」다! 난 판형별로, 출판사별로 「키다리 아저씨」책을 모으고 있었기에 냉큼 받아 내지를 살폈다. 귀에 걸린 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된 그남자가 말을 잇는다. 
“이 책 말이야, 원래는 전집에 들어있었어. 그 전집을 한권 빠진 채로 판매하는 것보다는 온전한 채로 판매하는 게 훨씬 수월해서 갖고 있었거든. 그런데 오늘 손님께 판매가 됐어. 이 책은 그 손님께 내가 다시 구매한 거야.”
좋았다. 연애기간 10개월 동안, 서점에 들어오는 키다리 아저씨 책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지만 결혼하면 어쩌면 끝일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내가 모으고 있는 책을 애써 구해주다니 그 어떤 선물보다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남편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모은 「키다리 아저씨」는 현재 60권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남편은 참으로 한결같은 사람이다.

 

만남에 대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 만남에 대하여 감사하자는 것이다 / 처음과 같이 아름답자는 것이다 / 처음과 같이 순결하자는 것이다 /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 꽃이 진다고 울지 말자는 것이다/ 스스로 꽃이 되자는 것이다 / 처음과 같이 가난하자는 것이다 / 처음과 같이 영원하자는 것이다 _ 정호승 시인의 - 반지의 의미

삶이 호락호락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는 것을 결혼하고 느꼈다. 누군가 결혼에 대해 묻는다면 그 우선순위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형편과 같다면 그저 사랑만으로 괜찮다고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면 잠깐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르겠다. 서점 운영이 어려웠던 때 사랑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사랑으로 맺은 한결같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살아보니 경제적인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따라 오는 게 아닐까? 애당초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큰 것을 바라지 않지만 내 삶을 가꾸고 살다보면 암흑 같은 굴속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앞이 캄캄해서, 어떤 것을 짚어야 할지 막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기회가 찾아와 희망이 되었다. 여전히 서점 운영은 어렵지만 공간을 이용하여 서점이 유지되도록 애쓰니 지난 이야기도 하면서 “우리 양반됐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로 힘든 2020년, 당신에게 좋은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김시연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 공원연출 및 상품 기획
기업 문화 상품 기획(포스코 外 다수)
웹사이트 디자인(주한 르완다 대사관 外 다수)
엄마의 책장 기록집 <오늘은 고백하기 좋은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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