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리뷰 - [테넷] , [후쿠오카]
시네마리뷰 - [테넷] , [후쿠오카]
  • 신대욱
  • 승인 2020.10.0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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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떻게 흐르더라도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시간을 거스르는 건 영화에서만 가능하다. 상대성이론 같은 첨단 물리학 덕분에 이론적으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현하는 건 아직까지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라는 매체는 처음 등장한 이후 시간을 자유자재로 과거나 미래로 돌리는 플래시백, 포워드 등의 기술을 활용해왔다. 그만큼 영화는 시간을 다루는데 능한 매체다. 이런 시간 활용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 과거를 기억하는데서 나오는 것 같다. 과거의 한 순간에 머물거나 바꾸고자 하는 욕망에서다.
영화 <테넷>과 <후쿠오카>는 각각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테넷>은 첨단 물리학을 동원해 시간 순행과 역행의 충돌을 스펙터클하게 드러내는데 중점을 뒀고, <후쿠오카>는 기억이라는 주관적 관념을 통해 시간을 허무는데 치중한다. <테넷>이 시간 충돌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미래의 기술을 통해 현재의 문제점을 바꾸고자 하는데 있고, <후쿠오카>가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강렬했던 기억의 순간을 떠올려 그때로 돌아가 머물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 자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영화 <테넷>은 물리학의 시간 개념을 대상으로 삼아 시각적으로 재현한 야심찬 영화다. 엔트로피나 양자역학, 시간 역행의 인버전, 맥스웰의 도깨비 등의 어려운 물리학 개념들이 동원됐다. 실제 이 영화를 한번 보고 이해하려면 적어도 물리학 석사 정도는 돼야 가능할 정도다. 영화에 등장해 주요 시간 개념을 주인공인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에게 설명하는 조력자 닐(로버트 패틴슨)도 물리학 석사로 설정돼 있다. 오죽하면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도자에게 인버전 개념을 설명하는 여성 과학자가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고 말했을까 싶다.
이 영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인버전을 바탕에 깔고 있어서다. 현재의 시간을 순행하는 인물과 미래 시점에서 시간을 거슬러 현재에 다다른 인물이 얽혀 있고, 시간 자체도 순행과 역행이 충돌하는 퍼즐 구조여서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초반의 산만한 전개를 지나 중반부의 본격적인 인버전을 통한 충돌이 나오는 장면부터는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질 수 있다.
복잡한 설정과 달리 서사는 단순하다. 미래 세력과 결탁한 러시아 무기상 사토르(케네스 브래너)가 현재 벌이고 있는 3차 세계대전 음모에 맞서 역시 미래 세력인 테넷 조직이 시간을 역행해 이를 막아서는 이야기다. 음모에 맞서는 테넷 조직의 작전을 이끄는 주도자는 CIA 정예요원으로 조직의 테스트를 거쳐 작전에 투입된다. 주도자는 인버전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닐과 사토르와 사이가 틀어진 그의 아내이자 미술품 감정사인 캣(엘리자베스 데비키)과 협력해 거대한 음모에 맞선다. 
<테넷>은 스토리나 캐릭터보다 시간 개념의 충돌을 향해가는 영화처럼 보인다. 인물들이 쌓아나가는 정념이나 갈등구조는 단순하게 처리됐다. 실제 등장인물 중 과거의 행적이 드러난 인물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 주인공인 주도자는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어쩌면 인물들은 순행하는 시간과 역행하는 시간의 물리적 충돌을 완수하기 위한 기계적 장치로 사용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테넷>은 순행과 역행의 시간이 충돌하는 순간을 보여주는데 모든 걸 건 것처럼 보인다. <테넷>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의 압권인 고속도로 카체이싱 장면이나 러시아 비밀기지에서 벌이는 마지막 전투 장면이 대표적이다. 후진하는 차량과 정주행하는 차량, 뒤로 움직이는 인물들과 앞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 한 화면에 등장하며 충돌하는 장면이다. 
특히 마지막 전투 장면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기획을 압축한 것 같다. 10분 차이를 두고 순행하는 부대원과 인버전해 역행하는 부대원으로 나눠 시간 협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이는 영화 제목과도 연결된다. 테넷(TENET)은 앞이나 뒤로 읽어도 똑같다. 시간의 순행과 역행을 암시한다. 또 10(TEN)이 앞뒤로 겹쳐 있다. 10이라는 숫자는 끝이면서 시작을 의미한다. 마지막 임무를 마친 후 닐은 주도자에게 “당신에겐 시작이고 나에겐 끝이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대사도 시작과 끝이 맞물린 세계관을 압축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영화가 말하려는 교리(TENET)일지 모른다.

기억하는 인간, 시간의 경계를 허문다는 것

영화 <후쿠오카>도 논리적 이해보다 느끼는 게 중요한 영화다. 자신이 나온 학교 앞에서 헌책방 정은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제문(윤제문)은 단골손님 소담(박소담)의 제안을 받아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난다. 즉흥적으로 떠난 후쿠오카엔 28년 동안 떨어져 지낸 제문의 선배 해효(권해효)가 운영하는 술집 들국화가 있다. 두 사람은 대학 연극반 선후배 사이로, 이 두 사람 사이엔 28년 전 사랑했던 순이가 있다. 순이는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했다. 그 때문에 제문과 해효는 심하게 다퉜고 이후 28년간 만나지 않았다. 소담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28년 만에 재회해 순이를 사랑했던 과거로 돌아간다.
<후쿠오카>는 시간과 기억의 상관관계를 바탕에 뒀다. 기억을 보여주는 방식인데, 꿈인 듯 귀신인 듯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구조다. 핵심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소담이다. 소담은 느닷없이 제문을 후쿠오카로 향하게 하고, 오랜만에 만난 해효와 화해를 주선한다. 두 사람 사이를 빠져나온 소담은 우연히 마주친 중국 여자와 얘기를 나누고, 후쿠오카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일본 여자와도 소통한다. 소담은 한국어로, 중국인과 일본인은 자신의 모국어로 얘기하는데 소담은 다 알아듣는다. 소담은 두 남자의 마음도 꿰뚫어보는 듯하며 심각하게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우리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모든 경계를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소담은 귀신같은 존재다.
귀신같은 존재는 순이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순이는 소담과 제문, 해효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인물뿐만 아니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순이는 영화에서 낭송되기도 하는 윤동주의 시 ‘사랑의 전당’에도 나온다. 윤동주가 태어난 간도(현재 중국)와 공부한 서울, 최후를 맞이한 후쿠오카까지 연결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제문과 해효가 살고 있는 서울과 후쿠오카도 이어준다.
제문과 해효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순이를 잊지 못한다. 제문은 순이가 자주 찾던 헌책방이던 정은서점을 아예 운영하고 있고, 해효는 순이가 태어난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쩌면 두 남자는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 다른 곳에 존재하는 같은 인물. 소담은 순이의 환생이거나 귀신 자체일지도 모른다. 
<후쿠오카>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시간을 허물고자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애틋했던 사랑의 정서를 되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조금 더 느슨해지고 경계를 풀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정서다.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우리 모두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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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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