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➉ - 때가 됐다. 재분배할 때
일상문화탐구➉ - 때가 됐다. 재분배할 때
  • 김도경
  • 승인 2020.10.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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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Pixabay

어쩌면 묵은 숙변 같은
묵은 물건들과의 이별

“오늘 저녁 7시 30분, 합정역 2번 출구에서 거래 가능할까요?” 지난 6월 초순이었다. 4년이 넘도록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티라이트(Tea Light) 밀랍초 36개를 ‘직거래’ 했다. 내가 개인과 개인 간의 중고 직거래 앱을 통해 ‘팔아치운 첫 물건’이었다. 이태원에서 왔다는 구매자는 바로 되돌아가야 하니 역 개찰구에서 거래할 수 있냐고 했다. 안될 게 뭐 있겠는가. 개찰구를 중간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구매자에게 천 원짜리 세 장과 물건이 담긴 봉투를 맞교환했다. 그렇게 최소 1,460일을 잠자고 있던 물건이 개당 83원의 중고거래가로 내 손을 떠났다.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언젠가 쓰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일단 보관해두자’라며 보관하던 지난 4년 동안 최소 열 번은 버릴까 말까를 고민했다. 오죽하면 ‘팔아치운’이라고 표현을 하겠는가. 그만큼 ‘언젠가’라는 막연한 가능성에 부여잡고 매달리며 헛된 욕심에 지는 시간을 보내왔다. 

장에 들러붙어 있는 묵은 숙변처럼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그만 보내고 싶었다. 기존에는 특정 기관을 지정해 일괄기부하거나 기부하기에 애매한 물건은 재활용 수거 날에 맞춰 내놓아 버려왔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물건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간 사실 귀찮아서 시도하지 않았던 개인과 개인 간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해보기로 한 것이다. ‘단번에, 한방에, 왕창’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꾸준히, 재미도 느끼며’ 할 수 있는 새로운 패턴을 찾고 싶었다.


온라인 중고거래
쇼핑의 미래가 되다

향초 36개를 단돈 3천 원에 책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이 향초는 얼마에 내놓으면 팔릴까였다. 즉, 수요자의 마음을 떠올리는 수고를 한 것이다. 내가 이 물건을 얼마에 구매했었는지는 중고시장 구매자들은 안물안궁(안 물어보고 안 궁금하다는 신조어)이다. 지금 시점에 중고마켓에서 얼마면 수요자가 구매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코로나 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 이전부터 장기 불황은 진행 중이었다. 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새 물건 대신 중고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이 MZ 세대는 과도한 절약도, 충동적 탕진도 아닌 ‘합리적 사치’를 한다.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도 있지만, 그보다는 ‘소유’보다 ‘사용 경험’에 의미를 두는 소비 의식변화가 크다고 보는 이유다. 공유 사무실, 공유 자전거, 공유 자동차 등 공유경제에 익숙한 이들은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현재 내가 사용하지 않는 책, 가구, 가전제품은 필요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중고시장에 내 놓으며 물건의 재분배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또한, 스마트폰 기술 기반으로 발전한 중고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10대부터 70대에 달하는 거의 전연령 세대의 스마트폰엔 00마켓, 00장터, 00나라 중 하나 이상의 앱이 필수로 깔려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어쩌다 보니 너도, 나도 중고거래 시장의 구매자이자 판매자가 되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고 있다. 노트북을 켤 때 네이버, 구글, 다음 중 어느 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공간으로 입장하느냐의 문제처럼 이젠 그저 취향의 차이가 되었다. 최근 발표된 중고거래 시장 분석 데이터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국내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의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3월 중고 거래 앱 사용자는 492만 명이라고 한다. 지난해 1월 대비 76% 증가한 수치다. 특히 중고 거래 앱 부동의 1위를 자랑하는 00마켓은 전체 쇼핑 앱 가운데서도 이커머스의 제왕인 쿠팡 바로 다음이다. 국내 마켓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팬데믹 전 중고 마켓의 규모가 2배 이상 커졌으며 코로나 이후 그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개인과 개인 간의 물류 이동
소유를 넘어 경험의 재분배

중고거래는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공유경제’의 한 축으로 볼 수 있다. 지난 6월부터 꾸준히 물건을 정리해가고 있는 나는 물건을 직접 판매하는 소소한 재미를 경험중이다. 구매자이자 판매자가 되는 경험을 주는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온라인 중고거래의 핵심은 ‘P2P 물류’다. 판매자와 거래자 개인이 중고물품을 주고받는 것을 ‘물류’로 표현한 것이다. 직접 거래를 하지만 거래가 이루어지는 
기반은 머신러닝 (Machine Learning) 시스템 등 IT기술을 적용한 플랫폼 앱을 통해 알게 모르게 ‘제어’ 받는 간접거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손때 묻은 큰 가구는 물론 사용하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둔 작은 거울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집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곤 지역 기반의 플랫폼 앱을 통해 ‘접선’하며 동네에 사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즉, 개인 간의 자발성에 기초한 사회적 재분배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돈 받으려고 귀찮게 그 수고를 해? 그냥 버리고 말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결한 삶을 지향하며 현재 진행 중인 중고거래는 단순히 내게 필요 없어진 물건을 ‘정리’하고 ‘비우는’ 행위를 넘어서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물건을 매개로 연락하며 크고 작은 거래가 오갔다. 이는 누군가로부터 받던 사랑이 식어 역할을 다했던 물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지며’ 또다른 관심과 쓸모를 부여받아 순환되는 물건의 생태계가 구축되는 느낌이라면 과한 표현일까. 아무튼, ‘때가 됐다’ 이야기는 10월호를 끝으로 마쳐도 간결한 삶에 기초한 아주 작은 시작인 물건의 재분배는 계속 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거처와 상당히 관계가 깊어서
집을 잘 관찰하면 거기 사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게 마련이다.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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