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⑫ - 오르막은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일상문화탐구⑫ - 오르막은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 김도경
  • 승인 2020.12.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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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 중 

▲ 사진출처 : 영화 뚜르_내 생에 최고의 49일
▲ 사진출처 : 영화 뚜르_내 생에 최고의 49일

자전거 타기의 흔적
멀리까지 옮겨주는

여중생 때인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떠올려도 기억에 남는 무척 멋진 장면이 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핸들이 구부러진 자전거, 즉 사이클을 타고 꽤 경사진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타고 내려오던 옆집 대학생 오빠의 날렵한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다. 평소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자전거를 탄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멋지게 보였다. 나도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수십 년 전의 장면으로 가보자. 기억이 나지 않는 누군가에게서 빌린 키 큰 자전거 안장에 앉기 위해 까치발로 이리저리 넘어지며 고군분투하는 소녀가 보인다. 내 무릎에 남아있는 수많은 상처의 8할은 혼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기 위해 무지막지하게 넘어지며 생긴 몸의 역사다. 자전거는 어느 계절이고 어느 시간이고 엉덩이를 앉히고 허리와 다리에 리드미컬하게 힘을 주면 출발할 수 있다. 자전거는 두 다리를 이용해 힘껏 페달을 밟으며 굴리고 굴리면 답답한 현실의 공간으로부터 떠날 수 있었다. 먼 낯선 동네까지도 내 몸과 영혼을 옮겨놓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여고생으로서는 드물게 두 손을 놓고 사이클을 타며 주변의 시선을 받았다. 그 시선에는 ‘여자애가 무슨···.’하는 어른들의 질타하는 시선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초겨울, 저녁노을과 함께
자전거 한 바퀴 도실래요? 

자전거를 소재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다양한 자전거 영화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자전거 도둑>이 있고, 사우디 최초 여성 감독의 작품이자 이 영화를 계기로 사우디 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만든 영화 <와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청년의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 있다. 그 외에도 <자전거 탄 소년>, <플라잉 스코츠맨>, <프리미엄 러쉬>, <챔피언 프로그램>, <뚜르 드 프랑스 : 기적의 레이스>,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2017년에 개봉한 <뚜르 : 내 생애 최고의 49일>는 소셜 펀딩 사이트를 통해 나도 기부에 참여했던 영화라 더욱 특별하다. 이 영화는 26세 청년이 암 선고를 받은 절망의 순간에 만난 꿈의 길, 생애 가장 소중한 49일의 자전거 질주 여정을 담았다. 내게는 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화두를 남긴 영화였다. 생의 끝을 ‘예견’ 받았던 그 시기에 오히려 죽음을 향해 정주행하며 ‘뚜르 드 프랑스’ 3,500km를 완주한 그에게 암 환자라는 수식어는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수식어 중 하나일 뿐이다. 업 힐과 다운 힐이 교차하는 건 자전거길만은 아닐 것이다.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기에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는 작가 김 훈의 글에 탄식이 새어 나온다. 이 가을 『자전거 여행』을 다시 읽어야겠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
▲ 사진출처 : 픽사베이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막막함이 밀려오며 혼란스러운 때가 이따금 찾아온다. 가까스로 생각의 실타래를 멈추고 몸을 세워 자전거 안장에 조심스레 몸을 앉힌다. 움직여본다. 한 바퀴라도 굴려 나를 옮겨본다. 얽혀있던 생각의 한 올을 겨우 찾아낸다. 바퀴가 굴러가며 내 몸도 내 생각도 굴러간다. 어느새 번잡하던 생각은 지나온 바퀴 자국 뒤에 남았다가 가을바람에 흩어진다. 묶여있던 생각의 한 올을 이어 풀어낸다. 자전거 바퀴와 바퀴를 돌리는 내 몸의 근육들이 함께 춤을 추며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든 길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무엇이 정답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땐 이렇게 말해본다. 일단, 움직여 보자. 그래, 밀고 가보자.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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