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110 - 아버지의 일기장
이달의 책 110 - 아버지의 일기장
  • 서영민 기자
  • 승인 2021.01.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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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부정父情을 읽다

아버지의 일기장 

박일호 일기 박재동 엮음, 돌베개 펴냄

 

일기는 내 인생의 한 축이었다. 중3때부터 결혼했던 스물여덟 살까지 매일 대학노트 한 페이지씩 일기를 썼다. 물론 못 쓰는 날엔 다음날 두 페이지를 썼지만 빼 먹은 적은 없다. 그러다가 결혼과 함께 일기를 쓰지 않게 됐고, 세월이 흘러 50을 넘어서면서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노트 한 페이지, 만년필 잉크로 똑같은 방식으로 일기 쓰기를 고수하고 있다. 다시 일기를 쓰게 된 지도 2년이 되었다. 예상컨대 20여년 일기를 쓰다보면 인생의 종착지에 다다르지 않을까 한다. 중앙회 기자회견 때 미용계 후배가 “선배님 읽어 보세요”하고 이 책을 놓고 갔다. 이 친구의 책선물이 처음은 아니지만 ‘일기장’과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를 잡아끌었다. 초판이 2013년으로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읽으면서 전혀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십 수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내 핸드폰에는 세 개의 알람이 저장되어 있다. 운동을 위한 새벽 기상 알람, 취침 알람, 취침 알람 20분 전에 울리는 일기알람이다. 잠들기 20분전 일기를 쓰면서 때로는 고단하고 때로는 밋밋하고 때로는 행복한 하루가 마감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책선물의 고마움으로 후배에게 생맥 한 잔을 청해야겠다.                                            

서영민 홍보국장 ymseo36@hanmail.net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나의 부모님이 이토록이나 힘들게 사신 줄 몰랐던 젊은 날의 내가 부끄럽다. 자식들에게 힘들다는 내색 전혀 없이, 집 걱정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공부하며 살라고 하셔서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알고 살았던 날들이었다. p9
▶▶ 풍족하게 해주는 부모나 여러 사정상 그러지 못하는 부모나 자식들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자식들은 나보다 더 행복하게 풍족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했을 것이고 지금은 내가 아들에게 그런 마음이다. 

하기야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낙방해서 낙오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p41
▶▶ 떨어지는 이가 없으면 그것이 어디 시험인가? 떨어지는 이도 있어야 시험이고 시험은 숙명처럼 합격률이 존재한다. 다행인 것은 인생은 한 번이지만 시험은 대부분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아이들도 벌써 지나친 치부의 허영을 원시하고 나의 유일한 신조인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부를 싫어할 자 없겠지만 어떻게 돈을 잘 쓰느냐?가 문제인 것이고, 부자로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다스리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부는 인생을 살찌게 하는 반면, 인생을 망치는 수도 있으니 말이다. p50
▶▶ 그래도 웃으면서 망가지더라도 흥청망청 쓸 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부를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선에서 욕망이라는 열차를 멈춰 세우느냐가 중요하다. 새삼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지금의 내 생활패턴이나 태도 등등을 보면 ‘건강한 삶’인 것 같다. 

지난 1개월간의 매상 하락으로 10만원의 부채가 생기고 말았으니 생활의 위협이란 삽시간에 온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p60
▶▶ 소시민의 삶이라는 것이 한 달 월급만 못 받아도, 한 달 매상이 떨어져도 불안하고 모든 것들이 엉켜버린다.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중산층이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부산생활 14년 만에 아이들은 거의 성장해서 성인이 돼가고 우리 부부도 40고개를 넘었다. 부디 앞으로 몇 년 무사히 넘겨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p65
▶▶ 아이들을 키울 때 몇 번의 고비가 있는 것 같다. 학교 입학 전까지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양육할 것인가? 대학을 들어갈 때, 졸업 후 취직할 때, 결혼시킬 때 부모는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고비를 넘다보면 어느 새 인생 황혼기에서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우리의 부모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오늘 밤도 아내와 같이 조용히 잠든 골목길을 통금시간에 쫓겨 돌아왔다. 그래도 얼마간의 수익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듯.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드니 겨우 네 시간 정도의 수면 시간이다. 삶이란 정말 고된 것이다. p70
▶▶ 고되지만 그래도 삶은 포기할 수 없으며, 삶을 지속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위대하기까지 하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미미한 존재여서 시대에 흐름에 집단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내 혼자서 지금 이 코로나 19를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몇 시간이 흐른 뒤의 어머니 모습은 평온해 보인다. 아직 온기가 있는 어머님을 잡고 한없이 울었다. 졸도한 뒤 한마디 말씀도 없이 가신 어머님. 불효를 외쳤지만 들어주지 않는 어머님. 불러 봐도 대답 없는 어머님 앞에 절규로 애통해했지만 소용없는 일. p132
▶▶ 나이가 들었다는 것인가? 살면서 몇 번의 죽음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또 지켜보는 일이 점점 잦아질 수도 있다. 죽음은 슬프다. 남은 자가 갈 수 없는 세상과 남은 자의 세상과 갈라서는 이별이기 때문이다.     

평소 신문지로 연습하다 좀 매끈한 종이로 연습을 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좋지 않은 점도 있다. 학문(예능)이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p147
▶▶ 마라톤 이외에 언젠가는 파고 들어보고 싶은 분야가 바둑이고, 서예다. 그렇다고 지금 매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바둑채널에서 중국기사와 한국기사의 바둑을 아무 생각 없이 두 세시간 시청하는 정도다. 서예는 언젠가는 더 배워야지 더 매진해야지 하면서 벼루와 붓 화선지를 여분의 김치냉장고 김치 통에 고이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이 심란하면 무작정 먹을 갈아 신문지에 명심보감을 또 쓰고 쓰던 기억 있다. 아버지는 붓글씨는 잘 쓰셨다. 농한기가 되면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시고, 토종비결을 낭랑하게 읽어 주시던 모습이 그립다. 살아계시면 더 효도하는 둘째 아들이 될 수 있는데.

친구들은 서로 멀어져 이제 내 곁에 친구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원한 우정이란 정말 어려운 것. p158
▶▶ 몇몇 친구 모임을 올 해는 거의 하지 못했다. 연말에나 얼굴들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코로나 19 상황이 힘겹다. 모두들 잘 견디고 있는지 연말에는 전화라도 돌려봐야겠다.
1981년이 막을 내리는 이 시간. 온 가족이 건강하고 우리 가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마음속 깊이 빌어본다. p172
▶▶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20년 우리 가족의 희망을 키우고 싶다. 아들은 힘겹겠지만 군 복무를 무사하게 해냈으면 좋겠다. 휴가도 막혔고, 코로나가 면회 한 번 못가고 군 복무가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년 9월에 와서 1년도 못 돼 다시 이사를 하게 되니 너무 자주 옮기는 인생이다. p181
▶▶ 거의 이사를 안 하고 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자주 이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 나도 이사를 많이 한 축에 속한다. 이사를 하면 우선 버리는 물건 새로 사는 물건이 많고, 소소한 비용이 들어간다. 밀려서 이사하는 서민들이 이사는 더 고달프다. 

25년간의 투병생활 속에 아내가 혼자서 악전고투하면서 자식들의 학업을 뒷바라지해왔다. 우리 가정에도 비록 최고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 보람이 찾아오리라. p207
▶▶ 어릴 때는 10년 20년이 엄청 긴 세월인줄 알았다. 나이를 먹어보니 20년 세월도 잠깐이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 기억속의 아버지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더 많다.  

동일안경원에서 안경을 맞췄다. 처음 끼는 안경이라 좀 이상하고 어지러운 기력마저 약해지니 이제 완전히 노인이 된 기분이다. p211
▶▶ 다초첨렌즈 안경을 맞추면서 내가 나이 먹었음을 느꼈는데 그 안경도 몇 년이 지나면 흐릿해져 바꿔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머지않아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는 시기가 오면 누가 봐도 내 모습은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은 교장까지도 직접 점포에 들러 엄포를 놓고 간다. 정말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욕스럽다. 매사에 둔한 감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인지 모른다. p214
▶▶ 감정과 성정이라는 것이 타고난 측면도 있어서 둔해지려고 해도 둔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람마다 화를 내는 지점이 다르고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도 다를 수 있다. 이제는 처세술도 귀찮아 진다. 그냥 내가 세상에 맞추지 않고 세상이 내게 좀 맞추어주었으면 좋겠다.

내친 김에 장례 문제까지 평소 생각한 대로 얘기했다. 인생의 최후란 비참한 것.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남겨야 할 말은 남겨야 하는 법. 훗날은 산 사람들의 몫이다. p220
▶▶ 떠나는 자는 떠나고 산자는 살아지는 것이 이치다. 떠나는 자는 남는 자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산자는 떠난 자만을 그리며 살게 놔두지도 않는다. 떠난 자의 저 세상에서 삶이 있을 터이고 남은 자의 이 세상 삶이 있을 터이다. 

‘아버지 되기는 쉬워도 아버지 노릇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아버지로서 구실을 한 것이 없다. p263
▶▶ 나는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일까? 그냥 항상 자기편이라고 느끼는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아버지라기보다는 나이 조금 많은 형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 그 좋은 친구도 생활에 얽매여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자연 가족 위주의 생일잔치가 되는 것. p270 
▶▶ 내가 챙길 수 있는 삶의 첫날이 생일이다. 죽은 날이야 산자들이 챙겨도 그만 안 챙겨도 그만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일을 챙겨주기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생일을 챙기는 것이 뭐 별건가? 가족끼리 맛나게 식사하고 이런 저런 즐거운 수다 떨면 되지.

성실한 생활의 연장에서 얻어지는 대가가 자기의 귀중한 참다운 재산이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우쳐주고 싶다. p291
▶▶ 찬찬히 살펴보면 재산은 쓸 수 있는 재산과 깔고 앉아 있는 재산으로 나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쓸 수 있는 재산이 많아야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깔고 앉아 있는 재산은 내 삶을 지탱해주는 역할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깔고 앉아 있는 재산을 과감하게 처분해서 쓰고 죽는 사람들을 별로 접해보지 못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쓰고, 깔고 앉아버린 재산의 속성은 쉽게 처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들은 재미삼아 장사를 한다고 여기겠지만, 그들이 어찌 우리 사정을 알랴? 이래저래 한세상을 보내는 것이다. p299 
▶▶ 재미삼아 일하고 소득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은퇴이후에 소일거리로 일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러기 힘들다. 

7~8년의 교육계 생활로 미련이 남아서인지 다시 교육계로 진출하려는 꿈은 큰데 자리가 없어 고충을 겪고 있다. 직업이 모두 그러하듯이, 첫 직업이 자기의 일생 직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사도(師道)에 한번 들어서면 떠나가기 힘이 드는 법. p324
▶▶ 첫 직업을 떨치고 새로운 직업을 개척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부침이 심한 경우도 있지만 그 직업 자체가 기술의 발전으로 부침이 심하면 나라는 개인은 휩쓸리고 고달파진다. 

서둘러 집사람과 울산으로 내려갔지요. 내려가는 중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p347
▶▶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님과 내가 생활하는 곳과의 물리적 거리는 400km에 이른다. 수시로 비행기가 뜨는 곳도 아니고, 매일매일 전화는 드리지만 어머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할 수도 있는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것이 불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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