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 ⑮ - 제주에서 걸었소, 제주애서(愛書) 읽었소2
일상문화탐구 ⑮ - 제주에서 걸었소, 제주애서(愛書) 읽었소2
  • 김도경
  • 승인 2021.03.0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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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_ 우도 photo by 김도경
▲ 사진1_ 우도 photo by 김도경

M에게. 

한 달살이와 귀향
M, 그간 잘 지냈나요? 저는 잘 지냈어요. 지난 1월 초 폭설을 뚫고 육지 길과 바닷길을 헤쳐 제주에 도착했던 저는 귀향(歸鄕)했어요. 집으로 돌아온 저 자신에게 처음 써보는 귀향. 이 단어가 주는 어감이 꽤 마음에 듭니다. 고향이라는 의미를 내가 태어나 유년의 시간을 보낸 곳에서 확장해 ‘내 삶의 인연과 일상이 있는 삶터’라고 생각해보니 말입니다. 살면서 마음을 주고 몸을 의탁해 살아가는 그 어느 장소도 내게 고향이 될 수 있고, 그렇다면 어딘가로 떠나 다시 돌아올 때 ‘귀향’이라는 푸근한 느낌을 줄 수 있겠지요. 2, 3월에 전하려던 제주 이야기는 아무래도 4월까지 세 번에 걸쳐 풀어내야겠어요. M에게 전하고 싶은 제주 이야기가 많거든요.

브레이크와 정담
제가 한 달 만에 돌아와 M에게 보낸 편지글을 지인들에게 공유하며 ‘귀향 신고’를 했더니 어떤 분이 “시간은 브레이크가 없다더니,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군요.”라고 화답해주셨어요. 또 다른 분은 뒤늦은 새해 인사를 전하신다며 “지난해 큰 사고로 힘겨웠던 도경님, 올해는 브레이크 없는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응원의 문자를 보내주셨지요. 

처음에는 나는 사막에서의 삶의 태도를 고수하려고 노력했다. 
물이나 전기를 낭비해서는 아니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도시에 돌아와 일주일이 되니 모든 것은 옛날로 돌아갔다. 
다시 참기 어려운 낭비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막의 꿈을 지키고 산다. 
사막에서의 장면들은 결코 환영으로 사라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생애 끝날 때까지 내 생명의 원천으로 남아 있으리라!

김미루, [問道禪行錄 문도선행록] 중 발췌

 

▲ 사진 2 _ 김영갑 사진 오름  photo by 김도경
▲ 사진 2 _ 김영갑 사진 오름  photo by 김도경

“이 문장을 보면서 한 달 제주살이 이후 사라지는 그 느낌을 잡으려 버티고 있을 김도경을 떠올렸다. ‘내 생명의 원천으로 남아 있으리라!’를 전하고 싶다.”는 화답한 분도 있으세요. 신기하게도 그 문자를 받던 이른 아침. 제주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저는 화사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서 어떤 사진집을 보고, 읽고 있었어요. 제주에 빠져 제주로 들어간 사람, 고 김영갑 작가의 <오름> 사진집이었죠.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한 집의 한 벽면에 걸린 고 김영갑 작가의 오름 사진집이죠. 그 문자를 받는 순간, 구석에 숨어 뭔가 맛있는 간식을 혼자 몰래 먹다가 들킨 아이처럼 저는 화들짝 놀랐지만, 배시시 웃으며 손에 든 것을 냉큼 꺼내 놓았어요. 마침 보고 있던 사진집의 이 문장을 찍어 즉시 화답하며 우리는 정담을 나누었지요. 그간 제주를 나름 여러 번 찾았는데 이번처럼 제주의 바람이 마음은 물론 제 몸의 뼛속 깊이 파고든 시간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문장이 제 가슴에 콕 박히더군요.

제주도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꼭꼭 숨어 있는 속살을 엿보려면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만 보고 느낄 뿐이다. 
제주도의 역사는 바람과 싸워온 투쟁의 역사이기에 눈물과 한숨의 역사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주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태풍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한라산은 일 년 내내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크고 작은 바람은 온갖 생명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사람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오름> 김영갑 사진집 중 

 

▲ 사진 3 _ 제주 올레 26코스/제주 올레 홈페이지
▲ 사진 3 _ 제주 올레 26코스/제주 올레 홈페이지

425km 26코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바람의 땅, 제주로부터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았어요. 그것은 지난해 여름 큰 사고 후, 제가 다시 걸을 수 있음을 제주에서 걸으며 확인한 거예요. 이제는 천천히 장거리 산책도 할 수 있음을요. 아니, 심지어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제주 올레길을 걸어버렸잖아요! 지난 글을 쓸 때 올레길 1코스를 걷고 흥분해서 M에게 소식을 전하며 한 달간 8개를 걷겠다 혹은 4개일 수도 있다고 했지요. 제주의 푸른 쪽빛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 제주올레 수첩에는 26개 올레길 코스가 있어요. 코스의 시작점, 중간점, 종점에서 스탬프 도장을 찍으며 완주를 해나가는 수첩입니다. 완주 유효기간은 첫 시작일로부터 2년 이내에 전체 코스인 425km 26코스를 완주하면 완주증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인증 사진이 올라가지요. 저는 한달살이 중 총 7개 코스를 완주했어요. 그 외에도 제주 곳곳을 여행하며 많이 걸었습니다. 단,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걷다 보니 사고로 위축되었던 제 발과 마음은 서서히 회복해가기 시작했어요. 

 

▲ 사진 4 _ 길 위의 도반 photo by 김도경
▲ 사진 4 _ 길 위의 도반 photo by 김도경

길 위의 도반
브레이크 없이 걷고 또 걸으며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하룻밤 꿈처럼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제주가 환영으로 사라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산간 땅에 머리를 대고 눈을 뜨던 새벽, 평온한 마음으로 잠들던 밤. 제주 이쪽에서 느낀 바람과 풍경이 제 몸의 세포와 뼛속 깊이 스며든 느낌이에요. 알게 된 지도 한 번도 함께 여행을 떠나보지도 않은 제게 파격적으로 한 달살이를 함께 떠나자고 말해준 도반 (도(道)로서 사귄 친구란 뜻) 안젤라와 함께 걷고, 쉬고 싶으면 멈추던 시간. 수확하고 밭에 남겨진 갈라진 당근과 무를 허락받고 이삭줍기해 아삭아삭 소리를 들으며 씹어 먹었던 건강한 시간. 동이 트면 일어나 숙소 옆 다랑쉬오름이 뿜어내는 맑은 기운을 그저 마음껏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더없이 충만하고 충분한 시간. 제 신체 리듬을 존중하며 조용히 기다려주던 깊고 넉넉한 마음 그릇을 품은 도반, 안젤라. 새벽의 찬 공기를 느끼며 천천히 몸을 깨우고 있노라면 반려묘 남매인 ‘철이와 딱이’가 소리도 없이 스윽, 다가와 방충망에 매달려 ‘야아옹~~’하고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그 소리에 깬 ‘써니’가 컹컹 짖으며(숙소였던 ‘철없는 펜션’의 반려동물들인 ‘철·딱·써니’) 우렁찬 목소리를 보태던 평화로운 아침 풍경. 둥그런 접이식 밥상과 식탁은 아침과 밤이면 도반과 저의 책상이 되어 읽고 쓰는 공부 책상이 되었고, 때로는 온라인 화상 강의나 회의 탁자로 변신했지요. 가끔 혹은 자주(?) 밥상은 술상이 되어 지금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의 흥미로운 일들을 도모하는 원탁이 되기도 했다지요.   

M.
2021년 신축년 새해는 지난해보다 더 환하고 따뜻한 풍경이 가득한 하루들로 채워지기를 기원할게요. 수다를 떨다 보니 편지지가 모자라네요.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M. 올해는 부디 아프지도 말고, 보고 싶은 얼굴들 마음껏 보고 소상공인들이 장사도 마음껏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우리 모두 화이팅!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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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경 2021-04-01 19:55:47
따뜻한글로 채워주시니 유채꽃핀 제주도가 연상됩니다.
늘 건강하셔서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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