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 미나리
시네마 리뷰 - 미나리
  • 신대욱
  • 승인 2021.04.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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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 원더풀 미나리!

삶은 살아내는 것이다. 빈 들판을 일구며 꿋꿋이 앞을 향하는 일이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랬을 것이다. 흔히 발견되는 아버지들의 기념사진은 대체로 그런 의지를 반영한다. 빈 들판 혹은 작업장 위에서 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서있는 아버지들의 기념사진에서다. 
영화 <미나리>는 기억의 한 자락을 끌어올리듯 차분하게 응시하는 영화다. 아버지의 자리에서 출발해 할머니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보는 사람에 따라 들판에 서있는 아버지를 엿보기도 하고, 힘겹게 가족들을 보살피는 엄마의 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손자를 보듬는 할머니의 애틋한 시선에 동화되기도 한다. 다 자라 어른이 된 자식들의 기억의 한 틈이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 <미나리>는 삶을 살아내는 모든 개개인의 이야기다. 추억을 담고 있지만 질척거리지 않고 담담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

<미나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낯선 땅인 아칸소로 이주하는 한국인 이민 가족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칸소는 한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땅이다.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은 이곳에서 가족들에게 뭔가 이뤄내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것은 자신만의 농장을 일구는 것이다. 제이콥은 “아이들도 자기 아버지가 한번은 꿈을 이루는 걸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지에서 농장에 집착한다. 아내인 모니카(한예리)는 남편이 보여준 미래가 내키지 않는다. 그들이 마련한 보금자리는 ‘바퀴 달린 집(트레일러)’이다. 이들의 새 출발은 10여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모은 돈을 바탕으로 했다. 제이콥은 이곳에서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틈틈이 자신의 농장을 본격적으로 일구기 시작한다. 아내 모니카는 그런 남편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병아리 감별을 함께 하며 생계에 힘을 보탠다. 그런 가운데 두 자녀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 있는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사연을 담았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자신의 실제 가족 이야기를 담았지만 깊게 빠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무엇보다 가족간 관계에 집중하며 서사의 중심을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영화 초반부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관계를 따라가다 모니카의 엄마이자 두 아이의 외할머니인 순자가 등장하면서 손자와 할머니의 관계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다. 어쩌면 영화 <미나리>는 할머니인 순자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한약, 오줌, 쿠키 등을 소재로 할머니와 손자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쌓아나간다. 그 과정은 비로소 식구가 되어가는 시간이다. 개울에서 미나리 씨앗을 함께 뿌리는 장면은 영화 <미나리>를 관통하는 상징이면서 어떤 뿌리에 관한 은유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손자 데이비드에게 미나리의 효능을 설명한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아플 때 약도 된단다. 미나리는 원더풀이야. 미나리 원더풀!”

잡은 손을 놓지 않는 희망

야뇨증 에피소드도 앞뒤를 연결하며 가족의 일원으로 손을 내미는 장치다. 선천적인 심장병으로 몸이 허약한 손자 데이비드가 이불에 오줌을 싸자 할머니는 애틋한 시선으로 손자를 놀린다. 후반부엔 뇌졸중으로 이불에 오줌을 싼 할머니를 손자가 안타깝게 바라본다.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던 할머니를 집으로 다시 인도하는 이들은 손자, 손녀다. 힘겨움 속에서도 그렇게 손을 내밀어 잡고,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 가족애란 메시지다.
위로의 시선도 가득하다. 할머니는 힘겨워하는 딸에게 “너무 애쓰지 말아라”는 위로를 건넨다. 심장병으로 뛰지 못하는 손자에게 조금씩 뛰어보자고 권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다 아프면서 크는 거라며. 
영화 후반부 장면이 전하는 정서는 울림이 크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수확한 작물을 모두 태운 밤, 이들 가족은 거실에서 서로의 몸을 부비며 함께 잔다. 고난이 와도 부둥켜안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할머니 순자가 한국에서 가져와 미국의 낯선 땅에 심은 미나리는 어느덧 풍성하게 자랐다. 제이콥은 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 데이비드와 함께 냇가를 찾는다. 제이콥은 미나리를 보고 “알아서 잘 자라네”라고 말한다. 할머니에서 뿌리내린 미나리는 낯선 땅에서 손자에게로 강인하게 이어진다. 원더풀 미나리다.
영화 <미나리>는 한국 배우와 한국계 배우들이 주로 한국어를 사용해 서사를 이끌어간다. 화투, 멸치, 한약, 미나리 같은 한국적인 요소들도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호평 받는 것은 이민자의 보편적인 정서를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국적은 의미가 없다.
<미나리>는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80여개에 이르는 상을 수상했다. 4월 25일 열리는 2021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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