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119 -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이달의 책 119 -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 서영민 기자
  • 승인 2021.10.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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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 가방 속의 페니미즘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추혜인 지음, 심플라이프 펴냄

모든 의사 분들이 슈바이처 같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나도 모르게 의사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의 저자 추혜인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으러 가면 그러한 편견들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다. ‘살림의원’이라는 협동조합 병원을 통해 우리 동네 주치의가 되셨다. 병원설립 취지가 좋아서 작은 정성을 보탠 조합원에게 선물해 주신 책 한권이 동네 주치의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서영민 홍보국장 ymseo36@hanmail.net

오늘도 진료실 문이 열린다.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의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 걸어 들어온다. 나는 그 시간에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p7
▶▶ 그렇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은 그 사람 인생 전체를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수많은 세월과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으며, 내가 만났기에 그 억겁의 세월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이고 동료가 된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의 삶속에서 작은 연결고리를 갖고 내 삶의 지도가 그려지는 것이다.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나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안전망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우리 동네를 건강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p34
▶▶ 문득 세상의 모든 문제는 ‘동네’라는 개념이 희미해지면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집은 동네사람들의 울력으로 짓고 보수하면서 살았다. 아이들은 가족도 가족이지만 동네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늙고 병든 나이든 사람들은 가족이 부족하면 동네에서 보살폈다. 주거 교육 육아 노인문제 등 모든 복지문제가 국가의 개입도 미미했고 법도 아니고 풍습과 관례에 따라서 동네에서 해결됐다. ‘살림의원’은 의료건강복지를 동네에서 해결하는 길을 찾고자 하는 열정이 넘치는 건강한 시민과 의료인들의 사회운동이다. 

그나저나 가까이 있는 것들이 덜 보이기 시작하니, 바늘귀에 실을 꿸 때 불편하기는 해도 좋은 점들도 생긴다. 가까이 있는 것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줄어드니 멀찍이 바라보는 시간을 더 가지게 된다. 들여다봐야 보이는 세세한 흠결 따위 찾을 생각 말고, 고개를 들어 멀리 보고 크게 보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p54
▶▶ 희끗희끗 해지는 머리카락은 세상 모든 것이 선명하지 않으니 물러설 때 물러서라고 말하고 줄어드는 머리숱은 내 것을 내주며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꾸짖는 것 같다. 여기저기 생기는 줄음은 인상 쓰면 험악해지기 때문에 항상 웃어서 인자해지라고 말하며, 노안은 사소한 것들을 못 본 척 넘기라고, 낮아지는 청력은 굳이 안 좋은 소리는 듣지 말고 또 누구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내 선한 의지로 행동하라는 몸의 가르침이지 않을까 싶다. 

여자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 자체로 페미니즘으로의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정치에서 여자 대통령이 나온다고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일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여자들이 더 많이 의사로,특히나 피를 보는 수술하는 의사로 진출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수술장이 여성주의적으로, 여성친화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p88
▶▶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떤 정치종교 이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극으로 치닫는 여성들의 인권. 탈레반이 여성들을 대하는 신문기사들이 불편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여성들이 군대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류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크게 보면 여성과 남성으로 나뉜다.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남성과 여성의 근육량에 따른 평균적인 운동능력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만들어 냈겠지만 가임여성들의 경우 임신 기간 동안 절대적으로 남성들과의 사냥 등 운동능력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컴퓨터나 로봇 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신체적 여성들의 불리함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사회문화적 관습은 과학기술보다는 더 더디게 변화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싸우는 방법에 얽매이지 말고 싸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싸우라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스스로를 잘 지키라는 것! p133
▶▶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싸움은 승패의 의미도 없으며 싸움의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다. 모든 문제들을 싸우지 않고 해결하면 좋으련만 살면서 그런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 싸움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계산하면서 싸우는 것, 누구와는 싸우고 누구와는 동지가 될 것인지 고려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 싸울지 신중하게 전략을 세우는 것, 무엇보다 싸울지 말지부터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꼭 싸워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때는 스스로를 잘 지키고 숨죽여 지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의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가 있다. 병원 안에서 싸우는 데는 정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p137
▶▶ 나 자신은 미련스럽게 누구와 싸울지만 몰두했지 누구와 동지가 될 적인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싸우고 난 후에는 후련함보다는 왜 시작했는지 후회가 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싸움을 시작할 때는 싸우지 않으면 도저히 내가 살수 없을 것 같아서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시작했다. 살만큼 살았고 경험할 만큼 경험해봤다고 생각했음에도 미련스럽게 싸움에 뛰어든 경우가 있다. 싸움도 삶의 한 부분이라며 받아들이는 수밖에.

사람은 산소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뱉고 싶어서 숨을 쉬려고하기 때문이다. p156
▶▶ 마라톤 훈련 중 짧은 거리를 빠르게 반복적으로 뛰는 ‘인터벌 훈련’이 있다. 어제도 언덕 열두 번 인터벌 훈련을 했는데 절반이 넘어가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마지막 구간에서는 심장이 터지는 듯 숨을 뱉어내는 소리가 커진다. 스포츠카나 오토바이도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 녀석들은 뱉어내는 배기통 소리가 요란하고 크다. 우리 인간은 내 안의 것들을 뱉어내야(버려야)숨을 쉬고 뭔가를 얻을 수 있다. 

공감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증의 이유를 찾아내 이름 붙이는 건, 그래서 환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건 오직 의료인만이 할 수 있다. 통증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는 ‘적절한 진단적 공감’이 필요한 때가 있다. p202
▶▶ 통증은 내 몸이 내게 자신을 살펴봐달라고 보내는 신호이다. 통증에 대해서 더 민감하고 더 공감하는 쪽은 사실 환자 자신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는 그 통증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더 큰 공포를 느끼는데 의사는 그 통증이 왜 발생했는지 알려주고 가능한 해결책(치료방법)을 제시해 준다. 내가 느끼는 통증을 나보다 더 공감해주는 의사에게 환자는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당장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듣자, 급격히 무릎도 골치도 덜 아팠다. MRI를 찍고 나니 알아서 낫는다고, 의사들끼리는 ‘MRI 치료’라고도 한다. 죽을 만큼 아팠는데 MRI 찍어보니 수술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밝혀지면, 그 즉시 슬슬 덜 아프다는 것이다. p223
▶▶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치료와 비적용 치료, 또 건강보험 진료의 수가를 결정하는 일, 과잉진료 등등이 문제가 된다. MRI는 아주 유용한 현대의학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과잉진료 지탄을 받을 때도 있다. 어쨌든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대화와 타협으로 구축한 건강보험 제도가 앞으로도 우리 후손까지 쭉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료인이나 환자나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고 유지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건강보험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질병 예방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고 한다.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발생을 차단하는 것을 1차 예방이라고 하고,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을 2차 예방이라고 한다. 생긴 후에 빨리 발견하는 것보다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터이다. 따라서 나는 갑상선암과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예방을 위해서라도 노후 된 핵발전소는 점진적으로 폐쇄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극히 예방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p259
▶▶ 현대문명은 전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마비되는 구조이다. 대체에너지 태양열은 흐린 날의 한계, 풍력은 소비지와 생산지가 멀다는 한계, 수소에너지는 저장과 이동의 어려움 등등분명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생산의 안정성과 생산원가 측면에 장점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무시무시한 재앙을 목격했고, 발전소 운영시 발생하는 핵폐기물과 발전소 폐쇄비용에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인류가 핵발전소 건설 연구투자만큼 핵발전소 해체기술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의료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좋겠다. 그래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이 뿌리 깊은 불신을 함께 해결해나갈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p287
▶▶ 모든 인간관계의 균열은 “니가, 이럴수가!” 즉 신뢰가 무너질 때 발생한다. 정부정책도 심지어 애완동물과 인간의 관계도 신뢰가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만만찮다. 하물며 나의 고통, 나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사와의 신뢰는.

불편한 얘기들을 계속 해야 환자-의사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 부작용을 알기에 다음에는 부작용이 없는 약을 처방할 수 있고, 경제적인 사정을 알게 되었기에 다음 진료 시 더 많이 배려할 수 도 있다. 불편한 얘기를 하는 건, 당장은 산처럼 큰 부담이지만, 그 산을 넘으면 서로를 더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장이 열린다. p304
▶▶ 내 성격이 불편한 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해를 차곡차곡 쌓기만 하다가 무너질 때가 많다. 이제 좀 구분해야 할 것 같다. 더 자주보고 더 가까운 관계는 불편한 소리를 하더라도 관계에서 오는 부담을 털어버려야 한다. 


자격증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음을 증명해주는 서류이고, 면허증은 면허가 없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는 서류이다. 그게 없어도 할 수 있는 것과 그게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것의 차이는 크다. p327
▶▶그래서 대부분 면허증은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정기적인 교육도 받아야 하는데 특히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면허는 엄격한 관리와 높은 직업의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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