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 십개월의 미래
시네마 리뷰 - 십개월의 미래
  • 신대욱
  • 승인 2021.10.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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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전하는 위로

모든 엄마들이 그랬을까. 아이의 탄생과 함께 “그래, 이제 우리 시작해보자”라고 다짐했을까.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혼돈으로부터 그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이기까지 10개월의 과정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최성은)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29살 게임회사 개발자인 미래는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자신의 임신을 의심한다. 의사에게 자신이 임신한 게 확실한 것인지 따지며 혹시 외계인은 아닌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남자친구인 윤호(서영주)에게 소식을 전해도 딱히 해결책은 없다. 천진하게 결혼하자는 윤호의 말이 오히려 얄미울 정도다. 중절 수술도 고민하지만 이 역시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직장에서도 임신 사실을 알자 난감해하고, 미래는 홧김에 직장을 뛰쳐나온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미래의 10개월은 빠르게 흘러간다.

무거운 주제, 경쾌한 리듬으로 연출

<십개월의 미래>는 주인공 미래가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부닥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그로 인한 혼란스러운 심리를 진지하면서도 경쾌하게 전한다. 시간의 경과와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을 임신 주차의 흐름을 따라 챕터로 끊어내는 방식을 취해 속도감을 높인 것이 특징적이다. ‘집’과 ‘혼돈’, ‘멍청함’, ‘광기’, ‘선택지’, ‘생각’, ‘문제들’, ‘죄인들’, ‘혼자’, ‘애도’ 등 11개의 소제목을 달아 그 과정을 상세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구성을 취했다. 
미래에게 임신은 예정에 없던 일이다. 미래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미래에게 ‘미래(future)’는 게임 프로그래머로서의 성공이라는 꿈이 도달하는 지점이다. 괜찮은 직장을 나와 소규모 게임 스타트업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것도 자아실현을 위해서다. 그런 그에게 임신은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다. 자신의 아이에게 태명으로 카오스를 붙인 것도 얼핏 장난스럽지만, 그런 자신의 심리를 대변하는 일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갈등을 다룬 영화는 많이 나왔지만, 그 과정을 겪어나가는 여성의 경험에 집중한 영화는 드물었다. <십개월의 미래>는 그 과정의 경험을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끄는데 초점을 맞췄다. 임신은 흔한 경험담이어서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험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무겁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그만큼 <십개월의 미래>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소소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의 변화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우회적으로 건드린다. 임신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나 낙태 관련법, 가부장제 문화에 이르는 당대 이슈들까지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남궁선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통의 여성이 겪는 보통의 임신담을 풀어내는데 중점을 뒀다. 임 감독은 “막상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임신이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 사건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며 “의아했던 건 그 경험의 크기와 보편성에 비해 그 과정을 대중문화에서 온전히 주인공으로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사자의 눈높이로 그려진 이야기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보통 여성이 겪는 보통의 임신담

<십개월의 미래>는 임신을 모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임신에 여성이 마주하게 되는 급격한 심리 변화와 두려움을 솔직하게 전한다. 미래는 예기치 않은 임신을 안 이후 의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왜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지를 묻는다. 미래는 뚜렷한 답이나 해결책은 없어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고민한다. 낙태 상담의사의 “생각을 하면 시간이 사라진다”는 말에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명분이 없어”라며 선택을 망설이기도 한다.
양가 부모에 떠밀려 결혼으로 내몰리지만, 역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남자친구 윤호로 인해 갈등이 고조된다. 갈등 와중에 윤호로부터 “너는 엄마잖아”라는 말도 듣게 된다. 미래는 결국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러면서도 미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미래가 아이에게 전하는 독백에서 그런 진심이 느껴진다.
“카오스, 아직도 네가 낯설지만 최선을 다해 널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 나는 이름이 없는 곳에 들어선 느낌이야. 영원히 떠돌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해. 하지만 카오스, 널 기다리고 있어. 곧 만나자.”
마지막 에피소드는 ‘애도’를 소제목으로 단 시퀀스다. 미래의 할아버지 죽음과 미래의 출산 장면이 이어져 있는 시퀀스다. 죽음과 탄생이 겹치면서 미래의 선택도 그 과정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미래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으며 “그래, 이제 우리 시작해보자”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엔 “for my mother(엄마에게)”가 자막으로 뜬다.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바치는 의미일 터이다. 감독은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아이를 가진 여성들은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바뀌지 않았음을 전하고 있다. 세상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해 왔지만, 엄마 세대의 이야기가 아직 온전히 끝난 것만은 아니란 말이다. 
<십개월의 미래>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상 출신인 남궁선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 8월 열린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특별언급되는 영예를 안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주연을 맡은 최성은과 서영주는 물론 조연인 백현진, 유이든의 연기도 영화의 현실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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