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㉔ - 흐름을 타는 것도 괜찮아!
일상문화탐구㉔ - 흐름을 타는 것도 괜찮아!
  • 김도경
  • 승인 2021.12.0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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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키오스크』 미래그림책 

친애하는 M에게
M. 지난 1월에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하고 소식을 전했는데 어느새 2021년의 마지막 글이네요. 이 글을 끝으로 M에게 마지막 연재 인사를 드립니다. 2017년 7월 <감응하다>로 첫 소식으로 글을 시작했네요. 54번의 마감을 했고, 햇수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하며 M에게 저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부족한 글솜씨로 종이와 인터넷 지면을 통해 M과 소통할 수 있었던 시간이 주어짐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제야 밝히지만 매월 마감이 돌아오면 끙끙 앓으며 원고를 썼어요. 일필휘지로 글을 써낼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라 며칠을 고민하며 더디게 글을 썼답니다. 혹자는 “무슨 노벨 문학작품 쓰냐?”라며 한없이 느린 저를 답답하다고 했지만, 그것이 저였고 저의 방식이었어요. 아, 이제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서운하면서도 내심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54번의 마감
M. 
덕분에 머릿속에서 맴돌던 주제를 ‘매월 연재’라는 정해진 루틴을 통해 풀어낼 수 있었어요. M에게도 가끔은 유익한 소식이었기를…. 때로는 헤어샵에서 M을 읽다가 우연히 저를 만난 지인들이 사진을 찍어 보내며 반가운 인사를 전하기도 했어요. M의 존재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추억들도 많았네요. 2021년 올해에는 ‘제주’, ‘이사’, ‘정원’, ‘사물’, ‘활자’를 주제로 소식을 전했지요. M과 함께했던 추억에 젖어 작별 인사를 하느라 편지지가 얼마 안 남았지만 고민했던 마지막 주제를 짧게라도 나눠볼게요. 

두려움에 관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고,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다.
I must not fear. 
Fear is the mind-killer. 
Fear is the little-death that brings total obliteration.

영화 <Dune> 중에서

M. 
최근에 1960년대에 처음 출간된 SF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개봉작을 봤어요. 영화는 ‘10191년’의 미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데요. <왕좌의 게임>, <아바타>, <해리포터>,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등이 골고루 뒤섞인 느낌을 받았답니다. 저는 SF 장르를 딱히 즐기지 않아서 그런지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영화 속 저 대사의 여운이 남았어요. 영화에서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자의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의 어머니가 기도처럼 혹은 주문을 외듯 간절하게 두 번이나(세 번이었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되뇌는 대사였어요. 왜 여운이 남았을까 한동안 생각했어요. 가을 들어 제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주제어가 ‘두려움’이었기에 아마도 귀에 쏙 들어왔을 겁니다. ‘두려움은 세계를 소멸시키는 작은 죽음’이라는 표현이 여러모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당시의 제게는 몹시도 공감되었고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영화 속 그녀는 목소리로 상대를 조종하는 ‘보이스’라는 놀라운 초능력을 가진 마녀였는데요. 그런데도 더 강한 어떤 존재 앞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을 타이르듯 주문을 외는 모습이 묘한 여운을 남겼어요. 과거 2천 년 전 폼페이 사람들이나 2021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나 10191년 또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초능력을 가진 미래인들이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 ‘두려움’은 과연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극복해야만 하는, 부정적인, 어두운, 나쁜 감정인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답니다. ‘두려움’에는 겸손한, 고결한, 신중한, 낮추는 등의 이면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해요. 즉,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문제로 여기는 관점을 한편 새롭게 전환해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두려움’은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가져야 할 자연스러운 감정이자 지혜이고, 덕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M. 
살다 보면 누구나 예외 없이 두려운 순간이 찾아오는 거겠지요? 한 번도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두려울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그 겸허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두려움의 크기를 키워나가며 우리는 성장해 나가겠지요. 두려움을 용기로 돌리고, 두려움을 간절한 바람을 동력 삼아 구체적인 행동으로 난관을 돌파해나가며 이전보다 더 깊어지고, 성장하며 지혜로워질 수 있겠지요? 

사고에서 여행으로
M. 글을 마치며 최근에 본 그림책 중 마음에 들었던 『키오스크』의 주인공 ‘올가’이야기를 할까 해요. 시작은 사고였는데 그 상황을 바라보는 올가의 관점으로 인해 꿈을 찾는 여행이 되는 이야기예요. 키오스크는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의 무인 단말기를 가리키지만, 원래 이슬람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원형 정자를 일컫는 말로 길거리의 간이 판매대나 소형 매점을 뜻하지요. 올가는 자기 몸 하나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키오스크에서 온종일 앉아서 신문이나 잡지, 복권을 팔아요. 그곳이 일터이자 쉼터이고 곧, 자기 인생이기도 하지요. 키오스크에 몸이 꽉 끼어 바다에 빠진 채 누워 있는 이가 ‘올가’예요. 노을이 지는 바다에 떠서 흘러가는 그녀가 불행해 보이나요? 사실 위 사진은 그녀가 휘파람을 불며 발장구를 치며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장면이랍니다. ‘사고’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상황을 인정하며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저녁노을 지는 바다를 몸으로 느끼고 있지요. 

친애하는 M.
이 글을 쓰며 두 개의 장면의 공통된 키워드가 교차하네요. 하나는 <Dune>에서 비행기가 모래바람에 들어갔을 때 주인공 모자가 무의미한 핸들 조정을 포기하고, 힘을 빼 바람의 흐름을 타며 가까스로 착륙합니다. 또 하나는 올가가 냇물에 빠지고 바다로 흘러가면서 키오스크에 몸이 꽉 낀 채 허우적거려봤자 의미 없으니 아예 발장구치며 물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며 새로운 인생의 풍경을 만나는 장면이죠. ‘흐름을 타는’을 키워드로 말할 수 있겠는데요. 저의 주제어로 잡아볼까 궁리 중입니다. 친애하는 M. 2021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12월을 맞이하며 깨어있고 조심하되, 두려움 대신 파도의 흐름을 타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안녕, M!


눈 감지 말고 똑바로 봐. 
두려움의 실체는 생각과 다를 수 있어.

영화 <니모를 찾아서> 중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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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2021-12-08 10:41:19
제 sns닉이 <흐름>이라 눈이 반짝했습니다. ^^
저에게 있어 두려움은 감정이 아닌 머리가 만들어 내는 허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이미 지나온 것, 경험해 본 것에 대한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제가 한심해 보이는 요즘입니다.
두려움이 가진 이면의 덕목을 생각하며, 허상을 지우고 눈을 뜨고 용기를 내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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