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패션과 문화 이야기
패션칼럼 - 패션과 문화 이야기
  • 지재원
  • 승인 2022.01.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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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컷'으로 시작된 한국 패션
▲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한 장면 (SBS 방송화면 캡쳐)
▲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한 장면 (SBS 방송화면 캡쳐)

지난 1월8일, sbs의 16부작 주말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종영되었다. 주인공 하영은(송혜교)이 패션 디자이너로 나오길래 관심 있게 보았다.
극중에서 하영은은 패션회사 더원(THE ONE) 오너의 딸 황치숙(최희서)과 파리 유학을 함께 한 친구이면서, 디자인실 팀장과 담당 이사로 등장한다. 회사 본부장 고광수(장혁진)는 매출하락을 이유로 디자이너를 쥐잡듯이 몰아붙이곤 한다. 그렇게 오금이 저리도록 궁지로 몰면, 어떻게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겠냐만 그것은 우리나라 내셔널 브랜드(기업 브랜드)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일부 등장인물들의 부자연스러운 연기, 둘째 아들이 죽은 큰아들의 애인과 사귀는 것을 엄마가 ‘목숨 걸고’ 반대하는 등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설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완주했다. 패션계 현실을 실감나게 반영하는 부분들이 나름대로 흡인력이 있어서. 
패션 브랜드는 크게 디자이너 브랜드와 내셔널 브랜드로 나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말 그대로 ‘디자이너’ 중심이라면, 내셔널 브랜드는 철저하게 ‘매출’ 중심이다. 디자이너 브랜드라고 해서 매출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매출 이외의 요소 즉 디자이너가 창조해내는 독창성의 비중이 내셔널 브랜드에 비해 높은 것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 내셔널 브랜드 중에는 연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곳이 열군데 남짓 된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전국의 매출액 모두를 합쳐도 5천억원 정도.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내셔널 브랜드들과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 브랜드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매출 이외의 요소’ 즉 독창적인 디자이너의 세계가 소비자들의 특별한 요구를 만족시킬 뿐 아니라 그것이 패션의 진정한 본질인 까닭이다. 
 

극중에서 소노(SONO)를 이끄는 디자이너 하영은에게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가 러브콜을 보낸다. 소노의 신작품 패션쇼를 보고, 그녀에게 자신의 브랜드에서 디자인 총괄 업무를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내 디자이너 인터뷰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패션잡지에서도 하영은에게 특별 인터뷰를 요청한다. 
 

결론적으로 하영은은 이 달콤한 제안들을 모두 거절한다. 프랑스의 제안은 계약기간이 2시즌에 불과했고, 패션잡지 인터뷰의 질문지는 온통 (하영은에 대한 게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프랑스 패션그룹과 국내 유명 백화점의 갑질, 유명 연예인 모델과 패션잡지들의 국내 브랜드 차별 등이 실감나게 잘 묘사돼 있다.
 프랑스에서도 관심을 끈 디자이너 하영은은 패션기업 더원의 대표브랜드 소노를 갖고 나갈 기회를 얻지만 이를 사양하고 개인 디자이너로 독립하기 위해 사표를 낸다. 영은의 절친이자 회사 상사인 황이사는 “비단길을 깔아주었는데 걷어찬다.”고 몹시 안타까워하지만, 영은은 “회사의 틀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의 옷을 만들고 싶다”며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다.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우리나라 패션계의 현실은, 패션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수긍할 정도로 일반화돼 있는 내용들이다. 
 작년 12월 어패럴뉴스는 <‘쫓겨나고 밀려나고’… 백화점에서 사라지는 내셔널 패션>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 백화점들이 국내 기업 브랜드들의 비중은 급격히 줄이는 대신 그 자리를 해외 명품 브랜드로 채워가고 있는 현실을 소개했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현상이지만 근래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보도였다. 
 그에 따르면 신세계, 롯데, 현대 등 유명 백화점들이 최근 2년 사이에 해외 패션과 명품의 비중을 30~50%나 늘렸고, 이런 사정은 서울 뿐 아니라 지방의 백화점들도 마찬가지여서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의 경우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를 모두 입점시키면서 최단 기간 연매출 1조원을 기록했다고 전한다. 
 10여년전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겪었던 상황을 이제 내셔널 브랜드들도 겪고 있는 것이다.  
  

▲ 단발과 서양복장의 고종(출처 : 구글)
▲ 단발과 서양복장의 고종(출처 : 구글)

 

 우리나라에 서양복식이 전해진 것은 19세기말, 일본을 통해서였다. 이화학당 등 기독교계 학교를 세운 서양의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복식이 막 소개될 무렵 조정에서 변복령과 단발령(1895년 11월) 조치를 취함으로써 두발과 복식의 서구화가 강제로 이루어졌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한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의 위상이 오히려 약화되자, 국모인 민비를 시해하고(1895년 8월, 을미사변) 친일내각을 앞세워 고종과 세자부터 강제로 머리를 깎고 서양식 옷을 입게 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 서양복장의 엄비(출처 :구글)
▲ 서양복장의 엄비(출처 :구글)

하지만 일본의 위력에 의한 강압적인 단발령은 전국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항일 의병운동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2년도 못가 단발령이 취소되었지만 한번 시작된 단발과 서양복식의 착용은 유길준 윤치호 서재필 등 이른바 개화파 인사들과 민비 시해후 고종의 비가 된 엄비를 비롯해 이토오 히로부미의 양녀 배정자,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박에스더와 하란사 등의 여성들과 교회와 여학교들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양 스타일은 신식, 우리 전통 스타일은 구식이라고 생각하는 우열의 개념도 같이 생겨났다. 드라마 ‘지금 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는 그런 인식이 지금까지도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 잘 보여주고 있다. 


지재원
패션 칼럼니스트, 고려대 겸임교수
고려대 불문과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 
경기과학기술대학교 미디어디자인과 부교수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장 
현 고려대학교 패션디자인 & 
머천다이징 융합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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