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 모든 다른 바다, 모든 같은 바다
생활수필 - 모든 다른 바다, 모든 같은 바다
  • 미용회보
  • 승인 2022.02.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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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일출
▲ 동해 일출

아이 대학 합격을 핑계 삼아 겨울 바다 여행을 다녀 왔다. ‘강원 영동에 50cm 넘는 폭설’이 뉴스 헤드라인을 뒤덮던,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아이는 한껏 기가 살아 있었다. 아빠의 모교인데다 꽤나 괜찮은 학과에 합격한 데다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으니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인생 첫 술을 여행지에서 하기로 약속한 것도 있어 텐션이 앞머리를 모히칸으로 만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아이는 동해를 보고 싶어했다. 종종 만나왔던 제주, 남해, 서해 바다와는 다른 동해 바다만의 ‘그 무엇’을 아이는 확인하고 싶어했다.
평생 짝꿍인 와이프도 동해를 가고 싶어했다. 남해와 제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짝꿍은, 툭하면 보게 되는 (시댁이 있는) 서해 바다를 평가절하 해왔던 터다..

“에게게~ 저게 파도야?”

“무슨 바닷물이 이렇게 탁해?”

짝꿍에게 바다란 사람 키보다 높은 파도와 시릴 만큼 맑은 빛이 있는, 역동적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서해바다는 파도소리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는데다 이게 바다인지 뻘밭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심드렁해지는, 말하자면 심심하기 그지 없다. 짝꿍의 취향이 아니다. 짝꿍이 그나마 서해를 ‘인정’할 때는 바다와 하늘을 함께 물들이는 석양 즈음뿐이었다. 이를테면 불멍 물멍 같은 석양멍의 순간에서 비로소 짝꿍의 서해는 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모두 다른 ‘목적’을 품고 목표지인 동해로 떠났다. 첫 일정은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권금성을 오르는 것이었다. 해발 850m에 올라 설악의 웅장하고 기묘함을 직접 느끼고 주변의 멋진 풍광을 내려다 보는 것이, 미리 그렸던 목표였다. 권금성에 올라 짝꿍과 아이 앞에서 권금성의 유래와 보이는 풍경을 일일이 짚어가며 설명(또는 일장설)을 하며 갈 수록 흐려지는 아빠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복원해보려는 우스운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내 기대를 단박에 무시했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눈보라 덕에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 눈, 눈, 눈 뿐이었다. 연설은 커녕 산 아래에서 봉우리를 향해 솟구치듯 날리는 눈보라를 피해 산등성이 위태로운 휴게소에서 어묵이나 사 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남해, 서해와 다를 동해 바다의 그 무엇을 제대로 느껴보자 시작했던 여행이지만 시작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어’를 세 명의 여행객은 되뇌이기 시작했다..
폭설 때문에 삐끗하기 시작했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의 여행은 시간과 장소만 바뀔 뿐 패턴은 늘 비슷하다.
우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히 숙소다. 대체로 에어비앤비 등의 앱을 통해 그 지역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을 고른다. 때로는 70년된 노후 주택에서 머문 적도 있고 1박에 100만원이 넘는 최고급 호텔이나 리조트를 고른 적도 있다. 비용보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셈이다. (전국 헤어샵의 고객님들도 그랬으면 좋…)

▲ 미디어 아트 _ 아르떼뮤지엄 강릉
▲ 미디어 아트 _ 아르떼뮤지엄 강릉

숙소를 정했다면 매 끼니 다른 식사를 할 식당을 가려 찾아 낸다.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에 도배되어 있는 집은 일단 거른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수년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소위 핫플에 있는 집이 ‘제대로’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카카오맵이나 구글에서 리뷰를 뒤져 노포집을 찾거나 지인에게 추천을 받는 편이 ‘최소한의 안전성’을 유지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오랫동안 이런저런 온라인 마케팅을 경험하거나 설계하면서 ‘포털과 SNS리뷰의 작위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그 지역민이 좋아하고 자주 먹는 식당을 애써 찾아가는 편이다.

우리 가족 여행의 백미는 박물관, 전시관, 미술관 탐방이다. 어느 곳을 가든 그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 등은 다른 일정을 포기하더라도 꼭 들른다. 이번에도 여행 일정에 맞춰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강릉>을 들러 ‘Eternal Nature’을 주제로 제작된 미디어 아트들을 즐겼다. 여행지마다의 박물관 등을 빠짐 없이 들르는 행위는 이를테면, 위로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벗어나 햇살 비추는 옹달샘의 물로 잠시의 평화를 즐기는 육식동물처럼, 내게도 우리에게도 백지의 안식은 필요할테니.
여행 마지막 날. 그야말로 무너지는 듯한 파도 소리에 잠을 설치다 일출을 마주하는데, 무슨 일인지 가슴이 울컥거렸다. 간밤의 과음(!)으로 비몽사몽 중인 아이를 깨워 발코니에서 아침해가 떠오르기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서해, 남해, 제주와는 다른 동해 바다만의 아침. 장엄한 일출과 엄청난 높이의 파도, 빛나는 눈밭과 숨쉬기조차 어려운 바람. 역시 클라스가 다른 동해 바다!
그러나 생태계와 풍경은 다른 바다의 그 것과 다르지만, 본질에서야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모두 같은 바다인 걸.
짐을 챙겨 돌아갈 내일의 일상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장을 위해 대학을 가고, 새로운 동료들과 성장을 토론하는 등의 모든 행위에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오랜 세월을 보내고, 수많은 바다를 보고 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왜?’라는 압박을 놓아주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열심히!’라는 태도였다. 셀프 동기부여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상에 우직하고 충실하게 몰입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성장을 만든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내일 행복할 수 없다. Carpe diem!
 


글 이재규 

주식회사 엔케이인베픽/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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