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음을 이야기하다
음악칼럼 - 음을 이야기하다
  • 신은경
  • 승인 2022.02.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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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음대생이 그렇듯 음악대학에 입학한 후, 나는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다. 대부분 취미로 배우는 초등학생들이었다. 기초적인 주법과 더불어 음악의 흐름과 분위기 등을 말해주었는데, 어려웠는지 아이들은 받아들이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기악음악은 성악음악과 달리 텍스트가 없으니, 그 음악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딱히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어렵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는 기쁨을 느끼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행복했으면 했다. 어떻게 그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피아노곡에 맞춰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보았다.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계절은 뭘까? 눈 위의 발자국은 남자야, 여자야? 그 사람은 뭐 하고 있지? 기분은 어때?” 이런 질문 방식의 이야기 레슨은 효과적이었다. 이후 전공생에게도 곡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게 했더니 학생들의 음악적 표현력이 생생하게 좋아졌다. 어느 레슨생은 이야기를 들으며 쇼팽 스케르쵸를 치다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혼자 연습할 때도 선율이나 리듬, 화성에 의해 곡 분위기가 달라지면 그것에 맞는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어떤 마음 상태나 행동을 떠오르게 하는 선율이나 리듬, 화성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동안의 경험을 반영해서 음악회를 새롭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곡을 먼저 선정하고 그 느낌에 맞는 이야기를 쓴 후, 어울리게 흐름을 배치했다. 이렇게 하면 청중이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음악에서 떠오른 것은 사색한 것이 아니기에 단편적인 말의 나열이었다. 하지만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말을 각색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의 채에 거르지 않은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다. 지식에 따른 이해가 아니라 피부로 음악이 곧장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몇백 년 전의 낯선 음악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삶에서 숨 쉬는 음악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하는 음악회가 우리 모두에게 가치 있는 시간이었으면! 
우선 서점이나 대안학교 등의 공간에서 상상 이야기를 곁들인 음악회를 시험적으로 선보였다. 연주가 끝난 후, 처음 보는 청중이 나를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고, 어떤 청중은 얼굴색이 밝게 화사해지기도 했다. 이런 연주는 처음이라면서 하이톤 목소리로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감상을 얘기하기도 했다.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나 보다. 조심스러운 시도였지만 가슴 벅차고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렇게 몇 번의 작은 음악회를 가진 뒤, 용기를 내어 2018년 [음을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으로 시리즈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음악회를 시작했다. 연속적으로 연주회의 모든 좌석이 매진되었다. 
그렇게 세 번째 [음을 이야기하다, 행복] 콘서트를 앞둔 2018년 말, 우리나라 청년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잘려나가는 처참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충격적인 기사 제목을 보고 자칫 내 연주에 영향을 받을까 두려움이 일어, 예정된 음악회를 마친 뒤에서야 그 기사를 읽었다. 끔찍한 노동환경에서 희생된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해도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마치 숨어있던 둑방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익숙한 무기력함에 항복할 즈음, 남양주 성당에서 마주치던 이주노동자들이 생각났다. ‘혹시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가 그들에게 선물이 될까?’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당장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연주에 대해 신부님께 허락을 받았다.

 

 연주회를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첫 마음의 간절함과 달리 미뤄지고 미뤄져 시간만 흘렀다.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낯선 그들을 만나야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집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나라면 가족과 떨어져 타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서가 아닌 가족을 위해서.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오랜 시간 아들, 딸을 볼 수 없고 가족과 함께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데... 마음의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떨어지는 눈물에도 그들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틀에 집어넣고 기꺼이 헌신했다. 공동체 정신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이번엔 예전 콘서트와 다른 순서로 준비했다. 인터뷰와 책, 나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글을 먼저 쓰고 거기에 시벨리우스, 피아졸라, 작곡가 신동일의 음악을 붙였다. 음악에 글을 붙이기보다 글에 맞는 음악을 선곡한 것이다. 고난 속에서도 그들 삶에 흐르는 사랑이 잘 드러나도록 표현하고 싶었다. 연습하면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연주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과연 이 이야기가 그들에게도 공감될지, 혹여 곡이 낯설고 어렵지 않을지 염려되었다. 
2019년 [음을 이야기하다, 코리안드림] 콘서트에선 영어 자막을 띄워 놓고 진행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시는 분, 눈물 훔치시던 분들이 연주 끝난 후, 미소를 띠고 다가와 연이어 안아주셨다. 그들 마음속 간직하고 있던 보석이 드러나고 우리는 연결되었다. 

 

 

어떻게 피아노 음악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시작된 고민이 스토리텔링 피아노 콘서트로 확장되었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야기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음이 눈에 보이도록 연주하라고 말하곤 했는데, 음악은 보이는 것 이상이었고, 언어 그 이상이었다. 음악에 상상의 말을 얹은 것은 작은 가이드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내가 느낀 만큼 음악의 세포까지 보송보송하게 전달하고 싶다. 이후 깊은 음악의 향유는 그분들 몫이리라. 

코로나가 예상외로 길어져서 오랫동안 새로운 음악회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어느새 2022년이다. 음악을 함께 나누고 누리는 것이 큰 기쁨이기에 이런 상황에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민이다. 비대면 음악회도 확산 중이지만, 나는 기계치라 온라인으로 나누는 것을 미루고만 있다. 어느 날 심장이 튀어 나갈 때, 음을 이야기하다 시리즈도 다시 뛰지 않을까 싶다.

신은경
스토리텔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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