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122 - 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이달의 책 122 - 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 서영민 기자
  • 승인 2022.02.24 14: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펴냄

지은이 장 아메리는 191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78년에 돌아가신 분이다. 이 책 또한 우리나라에서 2014년에 초판이 나왔다. 신간을 많이 읽기도 하지만 그냥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한 살 더 나이가 들어서 책 제목이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이 먹고 자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이 들어가고 결국엔 죽는다는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누가 썼든지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헤엄치는 존재일 뿐이다. 
                                               서영민 홍보국장 ymseo36@hanmail.net

흘러감, 물밀 듯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짐은 사실 시간과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다. 흘러와서 사라지는 것은 공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공간속에 있는 어떤 것만 눈으로 보거나, 최소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꾸며 이야기할 수 있다. 시간을 이야기하려면 공간 세계의 비유를 필요로 한다. p24
▶▶ 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사실은 공간의 변화였을 수도 있겠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 함께 찍은 40여년이 지난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은 그 때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구령대 옆 측백나무가 단정하게 서 있던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기억과 추억이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며 체감하는 것은 무어라 파악하기 힘든 것일 뿐만 아니라, 갖가지 모순으로 점철된 것이기도 하다. 정밀하게 이해하려는 지성이 노력을 뼈아플 정도로 비웃는 게 시간이다. p29
▶▶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무뎌지고 몸도 무뎌진다. 무뎌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만 그 또한 시간 속으로 흘러가버려 허망할 때가 많다. 냉철한 지성이 항상 같은 온도로 냉철하면 좋으련만 시간 장소 감정 얽힌 상황들에 따라서 온도를 달리한다. 그래서 어렵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공간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듯, 우리는 시간을 우리 자신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없는 것처럼 말 할 수 없다. p32
▶▶ 내가 눈을 뜨는 아침이면 침대와 방이라는 공간과 눈을 뜨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어떤 공간으로 나를 이동시킬 건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오로지 내 몫이다. 그런 것들이 나의 의지로 실행하는데 부자연스러워지고 주체할 수 없음이 늙음이리라.

늙어가는 사람은 다만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까 노인은 전적으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자, 시간의 소유자이며, 시간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p39
▶▶ 노인이 되어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바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의외로 노인이 되면 주체할 수 없는 시간들로 파고다공원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사회적 역할과 관계의 단절은 의외로 노인에게 많은 시간을 부여한다. 노인은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지 현재적 관점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확한 현실에, 진리가 아닌 민낯 그대로의 현실에 근접하는 사실은, 시간과 그 되돌릴 수 없음을 나이 먹어가면서야 비로소 완전히 실감한다는 점이다. 말년의 노인이 시간을 되돌렸으면 하고 간절하고도 무망하게 품는 소망이 그 증명이다. p44
▶▶ ‘그랬더라면’이라는 회한과 한탄은 역으로 생각하면 결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지나 못한 일들을 곱씹을 수는 있겠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과 공간 모두 되돌려지는 것은 없다. 오늘 퇴근을 하지만 오늘 퇴근한 집은 어제의 집이 아니다. 공간 또한 찰라가 아닌 이상 과거의 공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활동은 시계를 가지도록 강제한다. 수첩에 약속시간을 적고, 특정한 날 해협을 횡단할 수 있게 여객선의 자리를 예약한다.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평온함 속에서는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가진다. 그래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53
▶▶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시청하는데 자연인들이 시계를 차고 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보다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시계를 차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을 조율하는 것이 사회생활이지 싶다. 

‘나 아닌 나’가 되는 깊은 충격이 노화의 진실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게 돌연 낯설기만 한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소름끼침, 우리 인간의 근본 정서 가운데 일부인 소름끼침은 거울 앞에서 물러나 평소 일상에 뒤덮여 하루 일과를 감당하느라 잊힐 따름이다. p61
▶▶ 하루하루가 쌓여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다가도 20여년 사진속이다 동영상 속의 나를 보면 그렇게 젊은 날이 있었나! 사실 노화는 거의 정신과 몸의 모든 기관에서 물방울이 스며드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40대후반 50대 초반부터 몸이 변하고 있음을 느끼고 아마도 60대에 접어들면 내 눈에도 타인의 눈에도 띌 것이다. ‘젊어 보이신다.’는 말이 위안이 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곁에 있는 사람이 늙어 죽어가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반면, 우리 자신만큼은 살고 늙어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한사코 들어내려 한다.  p144
▶▶ 죽음은 아무리 간접체험을 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당사자 경험이다. 또한 의학적으로 몇 년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음을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죽음은 서로가 관찰자 입장이다. 간혹 뇌사 상태인 사람이 몇 년 만에 깨어나는 경우가 있지만 뇌사 기간 동안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뇌사 이전의 기억 외에는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화는 불치의 병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아픔인 탓에, 우리가 인생을 살며 그 어떤 단계에서 빠질 수 있는 절절한 고통과 현상적으로 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바로 그래서 노화는 우리 몸을 바라보는 익숙함과 낯섦을 포괄하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p151
▶▶ 노화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상대적으로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이다. 늙어가는 존재인 평범한 인간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회한과 고독과 공허와 씁쓸함이라는 감정들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고 싶지, 병들고 싶지는 않다. 젊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늙고 싶지는 않다. 아픔으로 자아발견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휘파람 섞인 야유나 들을 소리다. p85
▶▶ 마음이 됐든 몸이 됐든 아픔으로 존재를 확인받고 싶지 않다. 아프면 그냥 서럽고 힘들뿐이다. 갑자기 젊어지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갑자기 늙어지고 싶은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젊음이 주어졌을 때 그게 그렇게 감사하고 대단한 일인지 몰랐듯이 늙음이 다가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달리 뾰족한 수는 없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우리가 처한 운명을 두고 성찰할 때, 부조리함과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질 위험은 피할 수 없다. ‘늙어감’은 우리에게 그런 성찰을 피할 수 없게 만들며, 또 성찰을 감당할 능력도 준다. 논리는 세계를 묘사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세계는 늘 논리로부터 멀리 달아나지 않는가.  p94
▶▶ 매일 매일 일기를 쓰면서 성찰하고 내일의 계획들을 세우지만 또 오늘이 되면 어리숙한 내 자신이 덩그렇게 앉아 있을 뿐이다. 어리석음과 부족함은 죽음으로서 마무리 될 것이다. 

나이, 곧 사회적 연령은 기억에 저장된 시간 층이나, 압박과 고통으로 손상된 몸을 세계의 상실로 경험한 바로 그 기억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물론 이 사회적 연령이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시대마다, 그때그때 인간이 사로잡혀 있는 특수한 관계 영역에 따라, 사회 구조에 바탕을 둔 사회적 연령이 달라진다.  p105
▶▶ 100세 시대가 열릴지 안 열릴지 모르겠지만 문득 20년 단위로 삶을 조각내 보니 겨우 네 조각의 삶을 살아간다. 첫 번째 20년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은 줄만 알았었고, 두 번째 세 번째 조각인 40년이 주체적인 사회생활이고 네 번째 조각은 노년이며, 다선 번째 조각이 시작된다면 덤이리라.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존재는 가진 게 얼마나 되느냐는 소유의 문제를 밝힘으로써 비로소 주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그가 무얼 가졌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p108
▶▶ 소유를 들여다볼 때 자산은 물론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수많은 관계들이 그 사람의 존재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소유와 관계는 연대를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계층을 만들어 낸다. 

이후 사회가 ‘누려 마땅한 은퇴생활’이라 부르는 게 찾아온다. 어떤 이에게는 두둑한 공무원 연금이, 다른 이에게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연금이 주어진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역사를 써나가는 현실, 늘 새로운 형세와 국면으로 변화하는 역동적 현실로부터의 추방을 뜻할 뿐이다. 그럼 매우 섬뜩한 물음이 고개를 든다. 도대체 나는 언제 진짜 사는 것처럼 살까? 내 인생을 끊임없는 혁신과 부단한 모순의 과정으로 이끌기를 언제부터 포기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런 물음의 순간은 드물게 찾아온다. p114 
▶▶ 은퇴라는 말은 경제활동이 됐든 사회활동이 됐든 활발한 활동이 전제됐을 때 이야기인데 애초에 은퇴자들보다 더 비활동적으로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가 지급하는 노령연금을 기준으로 받으면 은퇴자이지만 받지 않는다면 현역으로 구분해야 하는 걸까? 피부로 느끼기에 50대 후반에 접어들면 연금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긍정적인 태도, 품위 있고 불평하지 않는 노년은 두 측면을 가진다. 변화와 발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저 자기기만의 인기 높은 주장대로, “젊음과 더불어 젊게 살자!”고 외쳐대는 게 그 하나이다. 사회는 그 경제제도로써 전력을 다해 돕는다. 인생은 마흔부터, 쉰부터 시작합니다. 쉰다섯에 캘리포니아에서 누리는 은퇴생활은 얼마나 행복할까. 여성은 폐경 이후에 성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p128
▶▶ 인생의 나이를 꼭 집어 표현하면 어떤 노래에서 이야기한 예를 들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처럼 또는 서른 잔치가 끝났다는 시처럼 애틋하고 풍성한 스토리가 없는 나이란 없다. 90노인의 입장에서는 60먹은 젊은이가 청춘일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젊게 산다는 것이지? 젊게 살면 무엇이 좋지? 스물다섯에 느꼈던 성적 행복과 예순다섯에 느끼는 성적 행복은  얼마나 다를까? 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문화적으로 소외된 노인은 잘 알지 못하는 표시 체계, 곧 전혀 새로운 신호로 가득한 상황에서 길을 찾느라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처음 영국을 여행하는 자동차 운전자는 교통 표지판이 대륙과 다른 경우가 많아 자신감을 잃고 중압감에 사로잡혀 차를 천천히 몬다. 시대의 문화적 표시로 혼란을 겪는 늙어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p139
▶▶ 어느 시대라도 유행어와 새로운 신호는 지속적으로 출현했다가 소수가 자리를 잡지만 다수는 사라진다. 새로운 것들이 출현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이기도 하다. 온전히 새로운 것들과 이미 존재했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혼재하겠지만 결국엔 내 안에서 소화가 되든지 뱉어내든지 결정된다.   

늙어가는 인간은 누구도 자신을 올바로 이해해주지 않음을 알고 가슴을 치며 괴로워한다. 이게 그가 처한 상황의 실상이다. 새로운 표시와 그 관계는 오로지 그 고안과 배열에 참여한 사람에게만 유효하며 그들만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사회의 각종 표시는 그것을 창조한 사람만 알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교통 표지판 사이에서 헤매는 자동차 운전자처럼, 옛날만 기억하는 낯선 손님은 곤욕을 치러야만 한다. p145
▶▶ 늙어가면서 자산을 불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친구를 사귀는 일이다. 있던 친구들 중에서도 재생된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과거의 추억만을 되새김질하면서 현재적 고민을 전혀 나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친구들은 과거에 친구였을 뿐이다. 과거에도 친구였고 지금도 친구인 친구가 많아야 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낯섦이라는 문을 넘어서야 했다. 낯섦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낯섦은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가기위한 과정일 뿐이다. 

모든 것은 시간과 더불어 허망하게 사라진다는 말은 지당한 진리다. 늘 새로운 게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도 맞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아주 해묵은 지혜는, 오로지 살아왔던 공간으로부터 빠져나온다는 불가능한 일을 과감하게 시도할 때에만 자명해진다. 그러나 어디로 빠져나간다는 말인가? 표시도 체계도 없는 세계, 공허한 세계, 곧 안티 우주로? p164
▶▶ 강물은 흘러가는 것이 눈에 보이기라도 한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시계바늘은 돌아서고 나면 제자리요, 시간이 흘렀음을 지나간 달력만이 흔적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달력을 불쏘시기로 불사르고 나면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없음이다. 이렇듯 시간은 보이지 않게 소리 없이 늙음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거대한 힘이다. 강물은 댐을 막고 양수기를 동원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시간에 올라탈 뿐이다. 

“피고인이 죽었습니다. 이로써 공소는 해소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객관적 사안을 이보다 더 명확하고 더욱더 절박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 이제는 없는 사람에게 무슨 소송을 하는가. 그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도, 봉급을 줄 수도, 집에서 몰아내 감옥이나 양로원에 집어넣거나 농촌으로 데려갈 수도 없다. 다만, 인간에게 그의 인생은 결코 공무公務일 수 없을 따름이다. p181
▶▶ 늙고 병들어 죽는 죽음이 아니라면 죽음 보다 더한 처벌을 가할 방법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죽음을 각오한 군대요. 가장 무서운 사람도 죽기로 작정하고 덤비는 자들이다. 공소권 없음처럼 법에서도 죽음 이후에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죽음은 어떠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냥 끝이다. 

나는 죽는구나, 늙어가는 이는 자신에게 다짐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보다 중요한 물음은 ‘어떻게?’다. p191
▶▶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는 인간의 영역이 아닐 경우가 많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설사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면 크게 긴장감을 갖지도 않는다. 죽음은 시간의 문제이지 누구라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자신이 죽음에 가까이 왔음을 아는 노인은 기도문을 외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균형의 줄타기를 한다. 그는 기꺼이 죽음을 맞겠다고 말한다.(사실은 죽고 싶지 않지만, 달리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맞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게 오늘 밤은 아니다. 하물며 지금 이 시간은 절대 안 된다. 모든 밤은 오늘 밤이며, 매 시간은 지금 이 시간이다. p204
▶▶ 죽음을 기꺼이 맞을 수 있을까? 역사속의 영웅호걸들이 대의명분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맞는 사례도 있지만 지금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하면 아직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너 왔구나! 반길 수 없으리라. 

살며 겪어온 근심은 죽음이라는 근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생의 근심은 죽음이라는 근심의 희미한 그림자였다. p209
▶▶ 이번 달 돈이 좀 더 필요한데, 어디를 가야하는데, 누구를 만나서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등등 근심들을 앞두고 ‘나 오늘 죽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근심들은 더 이상 근심들이 아니다. 죽음은 근심하는 주체가 사라지기에 모든 근심의 종결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123 미용회관 5층
  • 대표전화 : 02-585-3351~3
  • 팩스 : 02-588-5012, 525-1637
  • 명칭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 제호 : BeautyM (미용회보)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한미용사회중앙회.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