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 김원장의 다이어리
생활수필 - 김원장의 다이어리
  • 김하형
  • 승인 2022.02.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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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이곳이,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언니! 저 혜수예요. 기억하세요?”
십수 년 만에 걸려온 후배의 전화. 
“부탁이 있어 이렇게 간만에 전화를 불쑥했네요. 제가 고향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오래 일해왔거든요. 그런데 친한 언니의 딸이자 제가 어릴 때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있던 아이인데 서울에 올라가서 미용을 하겠다네요. 문득 생각나는 분이 언니밖에 없어서요. 21살 된 대안학교를 나온 아이인데 미용을 하는데 맞는지, 정말 모르는 분야라서요. ”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여튼 그 아이 엄마와 막역한 사이였던 후배는 제자이기도 한 아이의 미래가 어지간히 걱정되었나 보다. 
중 고등학교를 평범치 않은 대안학교를 다닌 여자아이. 엄마, 아빠가 자녀를 바라보고 키우고 싶은 방향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혜수야! 일단 미용이 쉽지 않아. 서울에서 배워가면서 일하려면 주거도 알아봐야 하니 많지 않은 급여 받고 일하면서 애가 잘 견딜 수 있을까 싶다. 몸도 힘들고 맘도 힘들 텐데. 일단 나한테 보내봐. 만나보고 내가 얘기 잘할게”

솔찬이를 만나다!
그러고 얼마 안 돼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백솔찬입니다. 어디로 언제 찾아뵈면 될까요?”
엄청 씩씩한 녀석이군... 이름도 참!. 보나 마나 아빠의 작품일터. 
전라도 말로 솔찬하다는 꽤나 멋진 표현이다. 
‘그렇게까지는 안 보였는데 너 참 대단하구나’ 하는 진심 애정어린 인정의 표현.
그렇게 솔찬이를 만났다. 
매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솔찬이는 정말 밝은 아이였다. 에너지가 가득한... 
입시 공부에 찌들어 막 고3이 된 울 딸의 얼굴과 오버랩되며 괜한 미안함이 몰려들었다.

(나)“왜 미용을 하려 해?”
(솔찬)“제가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다양한 걸 해봤거든요. 중학교는 미션학교여서 좀 엄한 곳이었고 고등 대안학교는 여행을 주제로 한 곳이라 몽골 봉사 활동, 히말라야, 산티아고 순례길 등등 많은 곳을 다녀보고 정말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기도 했고요. 재봉도 배워보고, 지금은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하면서 건반을 치고 있기도 해요. 000 아세요? 저희 선배에게요. 이번 공연에도 오실 건데 흐흐흐(사실 누군지 모른다는) 그런데 미용학원에 다녀보니 이건 신세계 인 거예요. 너무 재밌고 신나고, 제가 손재주가 좀 있어요. 3개월 만에 자격증을 땄다니깐요. (웃음)”

(나)“미용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일반 회사원 같은 복지를 기대하긴 힘들어. 그래도 괜찮겠어?"
(솔찬)“저 체력 하나는 자신있어요!! 히말라야도 젤 먼저 올라간걸요!! 전 제가 즐거운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데 인생의 목표예요.”

 

밝고 씩씩하고 열정 가득하고, 좋은 디자이너가 돼서 이 바닥에서 함께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갑자기 확 들었다. 

(나)“넌 여행을 좋아하니, 미용하면 가위 하나로 어디든 갈 수 있어. 그리고 기술은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으니 40세 넘어서 늦게 미용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또 봉사 활동에서도 인기 만점이지. 네 재능을 기부하고 그 재능으로 평생 먹고살고 세계 어디서나 일할 수 있고.... 음 또... ”

여튼 솔찬이는 내 멘토 격인 대표님의 매장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솔찬이 엄마는 그 미용실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주며 비싼 월세를 1년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가 농대를 가기를 바라고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미용을 한다고 하니 말리고 싶은 엄마 맘이 굴뚝 같았을 테지만...
서울 간다고 취업도 했다고 방방 뜨며 친구들과 송별회를 하고 행복해하는 딸을 꺾을 엄마는 아닌듯했다. 
“솔찬이가 한다면 하는 아이예요!!” 자랑스럽고 부끄럽지 않은 사회인이 될 거라는 뚝심 가득한 멘트를 엄마가 스무 살이 넘은 딸에게 하는 걸 보니 그 믿음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또 빠르게 반성. 난 울 아이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경의
미용실을 운영한 지 12년쯤 되다 보니 그냥 스쳐 지나간 사람부터 오랫동안 함께한 직원까지 족히 100여 명은 넘은듯하다. 관둔지 수년이 지났지만 생일이나 명절이면 서로 선물도 주고받고 꾸준히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인생 선후배 같은 관계가 정착된 디자이너들도 꽤 있다.
그러나 황당하리만큼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이 안된 친구들도 정말 많이 만났다. (말해 뭐해...)
소통이 인력관리의 핵심인 걸 깨달은 뒤부터는 다들 기술 배워서 자기 인생 똑 부러지게 살고 부모한테 효도하는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걸 알게 됐지만, 때론 줄다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겁도 없이 미용실을 시작했을 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힘들어서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눈에 들어온 카운터에 누군가 아무렇게 나 써놓은 메모지 한 장. 
월세 30만원(10년 전이라 좀 싸다) / 아빠 20만원 / 보험료 10만원 / 적금 10만원 등등
아! 이 공간이 전혀 헛되지 않구나. 
함께 먹고 살고 있구나. 
엄마가 말하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와 업보가 여기에도 있구나. 

희망의 씨앗 한 톨 
미용은 사람으로 움직이는 사업이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에 대면 서비스인 미용업이 더욱 타격을 받았으리라. 
어려워지니 최근 디자이너들이 고민이 많다. 
다른 일을 해볼까? 스패어를 뛰면서 뭘 배워볼까? 적당히 돈 들여서 미용실을 차려볼까? 혼자는 먹고살겠지. 실제 택배 배달로 업종을 바꾼 남자 디자이너에 대한 얘길 심심찮게 듣는다.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사람이겠지?
산업 발전의 크기는 인재를 담을 그릇에 비례한다는 건 팩트. 
디자이너 개개인의 역량만으로 진행된 성장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답이 아직 보이지 않는 숙제를 한가득 안았다.
그래도.
미용에 부푼 꿈을 가득실어 한껏 들뜬 솔찬이를 보면서 또 희망의 씨앗을 한 톨 심는다.

 



글 김하형 
십수년을 뷰티전문 기자로 일하다 십이년전부터 미용실을 운영해오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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