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패션과 문화 이야기
패션칼럼- 패션과 문화 이야기
  • 지재원
  • 승인 2022.02.2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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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특권
▲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데츠키 행진곡을 지휘하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역동적인 모습(유튜브 캡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연주회장을 자주 찾는 편은 못된다. 클래식 연주회는 대중음악 공연을 즐길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엄격해서 시종일관 긴장하게 되는 것도 자주 찾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한곡의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치는데, 짧은 독주곡이라도 보통 30분을 넘고 1~2시간 이어지는 공연도 많다. 물론 10분 내외의 곡들로 레퍼터리가 채워지는 경우도 있으나 그때도 연주가 끝나는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아는 청중은 많지 않다. 악장과 악장이 끝나는 때와, 전곡이 끝나는 때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끝날 때를 정확히 알고 박수치는 사람보다 주위의 눈치를 살펴가며 박수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클래식 연주회에는 ‘안다박수’와 ‘눈치박수’ 두가지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제일 확실하게 박수칠 때는, 지휘자가 돌아서서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연주하는 중간에 지휘자가 돌아서서 청중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곡도 있다. 라데츠키 행진곡이 그렇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신년 음악회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해 더욱 널리 알려진 클래식 음악으로, 1848년 이탈리아의 제1차 독립전쟁때 이를 제압한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라데츠키 장군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헌정한 곡이다. 라데츠키 장군은 나폴레옹이 침공해올 때 이를 막아내기도 했던 오스트리아의 전쟁영웅으로 이탈리아와의 전쟁 때 이미 80세가 넘은 노(老)장군이었다.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신년 음악회에서도 이 곡을 연주하지 않는다. 

 연주회 내내 조용해야할 뿐 아니라 긴장감마저 감돌게 되는 클래식 공연장에서 청중들의 박수가 음악의 일부가 되는 것은 클래식 공연의 틀에서 보자면 관습을 깨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관습은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이라고 정의한다. 기호학적으로는 이를 랑그(Langue)라 한다.
 라데츠키 행진곡은, 아무리 클래식 공연이라지만 청중들의 박수도 연주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관습’을 깨트렸을 때, 또다른 묘미가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2014년 우리나라의 유명 의류브랜드인 노앙(NOHANT)에서는 영문 알파벳과 한글 자모를 섞은 디자인을 내놓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서울 / 파리 / 런던 / 뉴욕 / 도쿄 등을 ㅅEOUL / PAㄹIS / ㄹONDON / NEㅠYORK / TOㅋYO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법적으로 보면 한글로나 영문으로나 다 규칙을 어긴 것인데, 이 재미있는 발상의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영문 알파벳과 한글 자모를 합성한 디자인의 노앙 브랜드 제품들

규칙(관습)을 어겼지만 사람들이 수용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가 된다.
 이러한 예는 언어의 경우에 더욱 흔하게 나타난다. 모바일 문화가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축약형 말이나 은어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는데 방가(반가워), 짱나(짜증 나), 취존(취향 존중), 현타(현실 자각 타임), 인싸(인사이더)처럼 줄여서 말하거나 ㅇㅈ(인정), ㅇㄱㄹㅇ(이거 레알(진짜)?처럼 초성을 활용하는 경우, 또는 개(무시), 개(웃겨), 갓(연아 →  김연아 최고)처럼 접두사를 종래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 당근(당연하지), 헐(황당하다), 일(1, 하나도)처럼 은어가 일상용어가 되는 경우들이 그렇다.   
 

한때는 교육부에서 위와 같은 용어들을 ‘외계어’로 규정하고 각급 학교에 특별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으나 젊은 세대들은 물론 기성세대와 방송에서까지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자 당근, 헐, 현타, 인싸처럼 국어사전에도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규칙(랑그)대로 말하는 것을 기호학에서는 파롤(Parole)이라고 한다. 그런데 규칙을 어겼지만 사람들이 수용하면 그것도 파롤이다.     
 

패션에서는 새로운 트렌드(유행)란, 이미 통용되고 있는 것(랑그)을 변형시키거나 파괴한 것을 소비자들이 수용하는 것(파롤)이라고 정의한다.
 라데츠키 행진곡에서 청중들의 박수를 음악의 일부분으로 삼거나, 알파벳과 한글 자모의 음소를 파괴한 노앙의 디자인은 랑그가 파괴되거나 변형된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그것을 대중들이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되지 않던가.  
 즉 창조는, 기존의 관습이나 틀을 깨트리거나 변형시켜서 대중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창조한 것이 과연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따져보기보다 일단 창조해보는 것, 그것은 디자이너(Designer)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패션 디자이너든 헤어 디자이너든.     


 

지재원 

패션 칼럼니스트, 고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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