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김영애와 '월계수양복점 신사들'
패션칼럼 - 김영애와 '월계수양복점 신사들'
  • 지재원
  • 승인 2022.03.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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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김영애(최곡지 역). 암투병중에도 54회중 50회에 출연했다.
▲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김영애(최곡지 역). 암투병중에도 54회중 50회에 출연했다.

 4월9일은 배우 김영애가 세상을 떠난지 5년째 되는 날이다. 
 1971년 MBC 탤런트 공채 3기로 데뷔한 김영애는 47년동안 드라마 120편, 영화 64편 등 매년 3~4편의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다작의 배우였다.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다작의 이유를 “먹고 살기 힘드니까, 돈이 급해서 계속 일했다. 늘 가장이었으니까”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동생들을 돕고,  세명의 손주들을 공부시키고 결혼시킨 것도 자신의 몫이었다면서. 
 ‘먹고 살려고 다작을 하는 게 지긋지긋해서’ 사업(황토팩)을 벌이기도 했다. 한때 연간 매출액이 17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중금속 검출 논란으로 사업을 접게 되었고 그후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로 병(췌장암)도 얻었다.
 본인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많은 작품에서 비중있는 배역을 맡을 수는 없는 일. 데뷔 2년만에 주연(MBC 드라마 ‘민비’의 민비)을 맡아 신인 연기상을 받는 등 김영애는 데뷔초부터 각광받은 배우였다. 공채 1기수 선배였던 김자옥 한혜숙과 함께 70년대 안방극장의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린 김영애는 이후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들며 연기의 폭을 넓혀갔다. 
 SBS 드라마 ‘형제의 강’(1996)에서는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 모습을, MBC 미니시리즈 ‘로열 패밀리’(2011)에서는 특권층 세계의 암투를 지휘하는 기업 총수 역할을 맡는 등 그녀가 보여준 연기의 영역엔 제한이 없었다.
      
 2016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방영된 KBS2TV의 주말드라마 ‘월계수양복점의 신사들’(이하 ‘월계수…’)에서는 양복 명장 이만술의 부인 최곡지 역을 맡아 갖가지 풍상을 겪는 한 가정의 안주인 역할을 절절하고 실감나게 연기했다. 
 김영애는 이만술 역을 맡은 신구보다 실제 나이가 15세나 어렸지만, 극중에서는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 암투병으로 인해 초췌해진 모습이 그녀를 더 노인처럼 보이게 했는데, 2012년에 발병했던 췌장암이 ‘월계수…’ 촬영중 재발한 것이다. 
처음 암판정을 받았을 때도 드라마(‘해를 품은 달’)에 출연중이었으나 암투병 사실을 끝까지 숨기고 촬영후 수술을 받아 완치 판정을 받았었는데 이번엔 드라마 종영후 한달여만에 세상을 떠나 ‘월계수…’가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생전의 인터뷰에서 “나는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연기로 풀어낸 것 같다”고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사업 실패 등 그녀의 개인사는 굴곡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연기할 때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져서 카메라 앞에 섰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죽기 전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녀의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     
 탤런트 공채 동기인 김수미(73)나 1기 선배인 박원숙(73)은 물론 윤여정(75), 나문희(81), 김혜자(81), 김영옥(85) 등 70 ~ 80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연기자들을 보면 김영애의 부재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 드라마의 미용실 장면
▲ 드라마의 미용실 장면

 

‘월계수…’ 드라마의 주요 무대는 양복점이지만 간간이 미용실 장면이 나온다. 이혼후 친정에서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이동숙(오현경)의 딸 김다정(표예진)이 미용실 스태프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비 며느리와 예비 시어머니, 시누이들이 서로 모르는 상태로 같은 미용실을 이용하다보니 여러 에피소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최지연(차주영)은, 미용실에서 콧대높게 굴다가 미래의 시누이에게 미운털이 박히기도 하는데….
내가 이 드라마를 정주행한 이유는, 극의 내용보다도 100년 전통의 양복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트의 세계’에 빨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동건 차인표 최원영 현우, 그리고 박은석 등 남자 주인공들은 극중에서 다채로운 형태의 수트를 선보일 뿐 아니라 옷에 따라서 사람의 이미지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 드라마에서 수트의 철학과 맵시를 두루 보여준 남자 주인공들
▲ 드라마에서 수트의 철학과 맵시를 두루 보여준 남자 주인공들

양복점의 마스터, 패션회사의 CEO, 신입사원, 무명가수 등 등장인물들의 입지와 상황에 따른 옷차림은 물론 극중의 패션쇼, 결혼식 장면들에서 마치 경쟁하듯이 남성 정장의 기본인 수트의 정석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사실 남성복 정장은 여성복에 비하면 스타일도 착장법도 단순하다. 모닝코트나 이브닝코트와 같은 예장은 일반인들이 입을 일이 거의 없으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준예장인 턱시도나 정장인 수트는 몇가지 기본상식만 알면 얼마든지 개성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다.
남성복 정장 차림인 수트는 소재와 색상이 같은 위아래 한 벌인 양복을 말한다. 앞여밈이 홑자락인 싱글 브레이스트 수트(약칭 싱글)와 겹자락인 더블 브레이스트 수트(약칭 더블)를 기본으로 드레스셔츠의 칼라와 넥타이, 포켓치프 등으로 변화를 준다.

▲ 남자 출연진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패션감각을 보여준 박은석(민효상 역)
▲ 남자 출연진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패션감각을 보여준 박은석(민효상 역)

드라마에서는 패션회사 사장으로 등장하는 박은석의 수트 스타일이 가장 돋보인다. 그는 다양한 색상의 수트를 선보일 뿐 아니라 포켓치프와 코사지 장식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의 왼쪽 가슴주머니에 꽃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슴주머니엔 포켓치프만이 장식할 수 있다. 꽃을 장식하고 싶으면 왼쪽 라펠의 버튼홀에 해야 한다.
양복에서 드레스셔츠는 속옷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안에 또 속옷(러닝셔츠)을 받쳐 입지 않으며, 한여름에라도 반소매 셔츠는 입지 않는 것이 격식에 맞는 차림이다. 양말도 흰색은 금물.  
하지만 드라마 속의 양복 명장인 이만술은 그 어떤 금기사항보다 중요한 것은 ‘수트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비싸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옷과 삶을 일치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신사다”라는 말로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은 주인공 이만술이 말년에 시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맞춤양복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세태를 그리고 있으나 남성 정장의 기본인 ‘수트’의 가치는 시대를 초월해 건재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드라마였다. 

사진 출처
※ 1 ~ 3까지는 드라마 화면 캡처
※ 4는 인스타그램(드라마에 등장했던 옷) 

 


 

지재원

패션 칼럼니스트, 고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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