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나를 지켜준 음악
음악칼럼 - 나를 지켜준 음악
  • 신은경
  • 승인 2022.04.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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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부닌
▲ 사진1 부닌

우울한 20세, 노량진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오물과 쓰레기가 너저분한 길을 걸어서 1호선을 탔다. 집으로 가려면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하기에 흔들리는 객실 안에서 환승하기 가까운 곳으로 이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전철에 타자마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웃긴 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나의 웃음을 눈치챌까 봐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사람들과 절대로 눈 마주치면 안 된다. 아마 내가 비웃는 줄 알 거다. 객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미친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아 정말 웃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장난 얼굴마냥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만! 그만 웃으라고!’ 4호선을 갈아타고 나서야 웃음기가 점차 사그라졌다. 집에 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리고 바로 LP판을 집어들어 전축을 틀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브 부닌이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지칠 때까지 엉엉 울었다. 왜 눈물이 터져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보다 더 효율적인 생활이었다. 입시학원 선생님들은 무척 뛰어났기에 공부는 향상됐고 피아노 연습도 고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집중해서 했기에 역시나 향상되었다. 대입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적화된 생활이었다. 그럼에도 조울증처럼 반복되는 나의 모습을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나도 이해할 수 없으니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입시환경은 잘 정비가 되었으나 속마음이 정리가 안 된 채 시작한 재수생활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속으로만 삭힌 대입낙방의 충격이 울음을 가장한 웃음으로 새어나왔던 것 같다. 

나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때, 작은 방에서 웅크린 내게 말을 걸고 안전한 공간이 되어준 것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곳곳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연주들이 많지만, 나는 당시 꼭 부닌의 연주로 들어야 했다. 부닌의 연주는 상당히 감각적이고 섬세하며 독특했다. 교과서적인 해석보다 그만의 특별한 해석을 좋아했다. 부닌이 연주한 쇼팽 협주곡은 봄날 꽃과 나비 같았다. 부닌이 기다랗고 날씬한 손가락으로 건반을 살랑살랑 건드리면 쇼팽은 향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영혼을 내어주었다. 부닌이라는 나비는 언제나 나의 몸을 관통하면서 날아다녔다. 환상적인 조합이다. 마치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나는 1, 2악장에서 한참을 울다가 3악장에 오면 대체로 울음을 그쳤다. 그렇게 울음으로 무언가 털어낸 뒤에야 입시곡을 연습할 힘이 생겼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가장 많이 들은 해였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어두운 터널을 쇼팽과 부닌 덕분에 통과할 수 있었다.

▲ 사진2 부닌 앨범
▲ 사진2 부닌 앨범

대학교 1학년 시절, 합창 수업 시간에 만나 함께 연주회를 자주 보러 다니던 작곡과 친구가 있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우리는 일주일에 2~3번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보고 마치 음악비평가가 된 것처럼 감상을 나누었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빠져나가 뿔뿔이 흩어져 서둘러 집을 향해 갔지만, 우리는 공연의 잔향을 안고 그대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공연장에서 나와 인적이 드문 우면산 옆길을 걸었다. 어둠이 우리를 감싸고 우면산의 흙내와 풀냄새가 피부에 짙게 닿았다. 이대로 밤이 지속되고 시간이 멈춰서 우리의 음악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았으면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들은 연주와 음악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서 편한 마음으로 집에 갔다. 음악대학에서 듣는 수업보다 소중하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2학년이 되어 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피아노와는 점점 멀어지고 연습은 게을리하고 연주회장도 잘 찾지 않게 되었다.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그 친구와 거리가 멀어지고 난 다른 이들과 집회에 나가거나 사회과학서적 독서 모임을 하는 등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는 친구대로 다른 음대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 차이콥스키 악보
▲ 차이콥스키 악보

 

사회에 눈을 새롭게 뜨는 것은 청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실력은 뒤처지고 전공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날 뒤흔들었다.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 난 안 되네. 내 손은 왜 이렇지? 음악은 내 길이 아닌가 봐.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고민은 3학년이 되어도 계속되었다. 경험 삼아 나간 콩쿨은 그야말로 경험으로 끝이 났다. 전공에 대한 열등감으로 점점 추락했고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언덕배기 교정을 따라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사회도 나도 모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내 귀 양쪽에 이어폰을 꽂아주었다. “도! 시! 라! 솔라도 솔! 파! 미!” 현의 소리가 강렬하게 나의 고막에 들어오는 순간 내 걸음도 멈추고 세상도 멈췄다. 눈앞이 파스텔색으로 변하면서 무지개가 내 앞에 흩뿌려졌다. 나를 짓누르던 회색 구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뒤를 돌아보니 그 작곡가 친구가 날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곤 내게 뭐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나는 곡을 듣느라 친구의 움직이는 입만 보았다. 그날 처음 들은 그 곡은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였다. 관악기나 타악기 없이 작곡된 곡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모든 악장이 특징 있으면서 격조가 있다. 
걸음을 멈춘 교정의 모습, 그리고 그 친구의 표정, 그리고 귓가에 맴도는 현의 소리 모두 생생하다. 무채색이던 세상이 갑자기 화사한 색을 띠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니 무엇이든 다시 해보고 싶었다. 나의 삶을 위해 다시 용기를 냈다. 4학년이 되었을 때,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피아노 의자 앞에 앉아 연습했다. 졸업 연주 무대에 나가기 직전까지 연습할 정도로 건반을 타건하는데 열중했다. 곡도 강렬하고 빠른 타건을 원하는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3번이었다. 무대에서 처음으로 나의 의도대로 거의 연주했고 나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경험이 되었다. 

좋은 음악과 연주를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 정신이 맑아지고 각성되기도 한다. 마치 명상한 것처럼 샤워해서 정신이 깨끗해진 느낌이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는 삶의 의욕과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육체적 통증이 없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음악이 안된다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음악으로 치유받곤 했다. 지금까지 음악을 놓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음악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음악이기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더욱 통하고 잘 스며들 수 있는 건 아닐까. 음악 전체에 흐르는 담대한 정신, 천재 작곡가들의 맑은 영혼이 정돈된 소리로 에너지를 발산하기에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클래식뿐 아니라, 팝송, 발라드, 랩 등 어려운 순간에 나와 함께 하고 위로가 된 음악, 힘을 주는 음악은 무엇이든 내 삶을 흐르는 명곡이다.



신은경 

스토리텔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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