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반복되는 '복고풍' 유행
패션칼럼 - 반복되는 '복고풍' 유행
  • 지재원
  • 승인 2022.05.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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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2009년도 작으로 2016년에 재개봉된 영화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하여,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 버튼의 일생을 2시간 46분의 긴 러닝타임으로 보여준다. 
 80대 노인 모습으로 태어난 신생아, 이에 기겁한 아버지는 아이를 노인 요양원에 버린다. 거기서 아이를 거둬준 노인 요양사를 엄마로 여기며 요양원 노인들과 함께 삶이 시작되는데….
 영화의 줄기는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트)이 일곱 살 때 만나 한눈에 반한 다섯 살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의 사랑과 이별, 재회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데이지는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는데, 벤자민은 거꾸로 나이를 먹는다. 데이지가 늙어갈수록 벤자민은 젊어가다 보니 40대에 이르러서야 둘의 몸과 마음 상태가 얼추 맞게 된다. 동거를 하면서 딸도 얻는데, 갈수록 젊어지다 못해 어려질 자신이 아버지 노릇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벤자민은 이들 모녀를 떠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는다. 벤자민의 상황은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80 노인 모습으로 태어나 80여년 뒤 신생아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설정을 통해 삶과 죽음을, 오늘 이 순간의 귀함을 긴 러닝타임 내내 일깨워주고 있다. 아마 그런 까닭으로 이 영화가 뭇사람들의 인생영화가 된 듯 하다.
다른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벤자민에게는 미래와 현재와 과거다. 그에게 현재는 미래같았고, 때로는 과거같았다. 벤자민의 삶에는 과거와 미래가 늘 함께 녹아 있었다. 패션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복고풍은, 과거의 것에 녹아 있는 현재와 미래의 요소가 되살아 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벤자민의 시계와 많이 닮았다.

▲ 20년전 핑클 시절의 이효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옥주현(왼쪽에서 두 번째). 크롭톱과 로라이즈 팬츠와 미니스커트 차림이다(출처 : 지니) 

올해 유난히 인기를 끌고 있는 유행 아이템은 Y2K패션이다. 연도(Year)와 1000(Kilo)의 첫 글자를 딴 Y2K는 2000년도가 시작되면 벌어질 수 있는 컴퓨터 오류(밀레니엄 버그)를 이르는 약자로서 당시 연도의 마지막 두자리만 인식하던 컴퓨터가 2000년이 되면 00만을 인식해 1900년과 헷갈리면서 사회적으로 대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생긴 말이다.  
 Y2K패션은 그 시대(1990년대말 ~ 2000년대초)에 유행한 패션을 말한다. 대표적인 아이템이 크롭톱과 로라이즈 팬츠였다. 크롭톱은 짧은 길이의 상의로서 배꼽티라 불렸고, 로라이즈 팬츠는 밑위가 매우 짧아 골반에 걸쳐 입는다고 해서 골반바지라고 했다.    

▲ 크롭톱과 로라이즈 미니스커트 차림의 윤아(엘르코리아 22년 3월호 표지. 출처 : 엘르코리아 인스타그램)

당시 인기를 끌었던 핑클의 이효리와 옥주현 등이 이 스타일을 잘 소화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가수 겸 배우 윤아를 비롯해 블랙핑크의 제니와 현아 등 패션 리더들이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Y2K패션은 2022 봄·여름 파리와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미우미우 펜디 돌체&가바나 샤넬 미소니 등이 집중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오른 아이템이다. 
 크롭톱과 로라이즈 팬츠와 미니스커트가 만나면서 상반신 노출이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는데, 가슴선 아랫부분을 노출하는 언더붑 스타일까지 등장한 상태다. 이 과감한 스타일에 정호연 등 패션모델과 비비와 김채연 등 연예인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 19세기 들어 저고리 길이가 극도로 짧아진 모습(출처 : 동아대학교 석당미술관) 

 

워낙 과감하고 대담한 스타일이어서 일반 대중들이 소화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언더붑을 보면 어떤 기시감이 떠오른다. 우리 한복에서도 저고리가 언더붑 못지않게 짧아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저고리 600년 변천사를 전시회와 책(<아름다운 우리 저고리>)으로 펴낸 바 있는 한복연구가 김혜순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는 저고리 길이가 65cm로 허리 선을 가릴 만큼 길었는데 점점 짧아져서 19세기에는 28cm 정도가 되었다가 급기야 14.5cm까지 짧아져 젖가슴 아랫부분과 겨드랑이살도 가릴 수 없는 저고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에 대해 18세기 실학자 이덕무는 “그것은 창기(娼妓)들의 아양떠는 자태에서 생긴 것인데 세속 남자들이 그 자태에 매혹되어 요사스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처첩에게까지 본받게 하여 퍼트리고 있다”며 ‘요복(妖服 : 요사스러운 옷)의 유행’을 한탄했다고 한다.
 

▲ 뉴욕 패션위크에서 이탈리아 스포츠웨어 브랜드 CCDS가 선보인 언더붑 패션(출처 : 뉴욕 패션위크 홈피)

 

크롭톱, 로라이즈와 함께 미니 스커트도 다시 유행하고 있다. 미니스커트는 1960년대에 프랑스 디자이너 앙드레 쿠레주와 영국 디자이너 마리 퀀트가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스타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윤복희가 1967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처음 선보였다.  
 미니스커트는 거의 20년 주기로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번엔 그 길이가 더욱 짧아진 마이크로 미니 스커트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Y2K의 유행은 패션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미니 홈피로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끌며 한때 회원수 32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전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가 복고풍 인기에 힘입어 지난 4월2일 재출시됐다. 오픈과 함께 앱마켓에서 1위를 하며 5일만에 200만 계정이 휴면 해제를 요청할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니룸, 일촌맺기 등의 서비스 기능들이 속속 복원된 가운데 사진첩 서비스 기능도 머지않아 90% 이상 복구될 예정이라고 한다. 
 패션분야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복고풍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갈수록 젊어지는 벤자민과, 갈수록 늙어가는 데이지가 몸과 마음이 얼추 맞았던 40대에 사랑의 정점을 맞이했듯이 우리들 마음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하나로 만날 수 있고, 그 지점에서 느끼는 마음의 안정과 행복이 사람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Y2K패션의 재등장으로 X세대는 추억을, MZ세대는 새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2022 년 여름시즌이다.   


 

지재원

패션 칼럼니스트, 고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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