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공연을 준비하며
음악칼럼 - 공연을 준비하며
  • 신은경
  • 승인 2022.05.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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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에 진행된 공연은 현대국립무용단과 함께 한 [구두점의 나라에서]였다. 작년, 2021년 12월에 했던 공연인데, 코로나 상황에서도 호응이 좋아 재공연을 하게 되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주최로 피아노 두 대와 무용수들이 함께 하는 공연이었다. 

2021년 봄, 빨강, 하양, 검정만 나오는 강렬한 그림책 [구두점의 나라에서]를 기반으로 작곡가 신동일은 곡을 썼다. 그림책을 봐서는 어떤 곡이 나올지 추측할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책이다.
어느 날, 작곡가로부터 [구두점의 나라에서] 악보를 받았다. 나는 악보를 처음 마주 대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악보를 처음 보고 치는 걸 ‘초견’이라 하는데 초견은 나를 늘 설레게 한다. 어떤 곡일까, 어떤 분위기일까, 작곡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악보를 읽어내려갔다. 
악보를 한 번 훑고 나면 설렘은 사라지고 테크닉적인 문제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손가락을 어떻게 써야 부드럽게 지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운지법(손가락번호)을 적기 시작했다. 운지법을 고민하면서 적었는데도 손이 꼬이거나 양손의 패턴이 틀려서 헷갈리거나 빠르게 점프해야 하는 등의 곤란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땐 이 곡은 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머리에서 열이 올라오고,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도 올라온다. 하지만 연주해야 하는 곡이면 어떻게라도 해내야 하므로 안 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분 연습을 하고 근육을 느껴가면서 천천히도 치고 때로는 부점연습, 스타카토 연습도 했다. 전체적인 음악 흐름을 보고 그 부분을 치면서 지나가 봤다. 안 되면 다시 부분 연습을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는 날은 피아노 방에서 나왔다. 물론 화가 가득한 채로. 
연습을 거듭할수록 안 될 것만 같던 것이 되기 시작했다. 연습으로 곡에 익숙해지면서 보이지 않던 다른 것들을 발견하고 변화하는 쾌감이 있다.

2021년 여름, 개인 연습을 어느 정도 하고서 다른 피아니스트와 함께 맞췄다. 두 대의 피아노 중 하나의 역할인 내 파트와 또 다른 역할의 파트가 만나 음악이 완성되어 갔다. 곡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곡이구나! 
혼자 연습할 때와 달리 둘이 함께 연습하면 서로 조율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호흡, 템포나 세기, 서로 어떻게 어우러질지, 그리고 어떻게 표현할지 의견을 나눴다. 의견이 맞을 때도 있지만 서로 상충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작곡가를 소환했다. 작곡가가 곡을 만든 의도에 충실하도록 연주자들은 최대한 거기에 초점을 맞췄다. 총 17곡인데 이 중엔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다른 조성으로 흐르는 곡도 있고, 국악 장단이 들어간 곡, 피아노 전공자들도 낯선 5박, 7박이 들어간 곡도 있었다. 정박이 아니라 엇박으로 나오는 것을 함께 맞춰야 해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혼자 할 때 문제없지만 두 명이 하니 걸리는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두 대의 피아노가 따로 또 같이, 두 개의 음악이면서 하나의 음악처럼 음악을 만들어가야 한다. 


피아노 연습 중인 곡을 녹음해 무용단에 보내면 안무가 정영두가 안무를 구상한다. 작곡가가 그림책에 반응했듯이 안무가는 음악에 반응한다. 평이하지 않은 이런 곡들에 어떤 춤이 나올까? 내 머리로는 상상이 안 된다.
2021년 가을, 드디어 무용단과 만나 연습을 함께 했다. 무용수와 함께 공연을 올리는 건 처음이라 기대도 되고 떨렸다. 무용수들은 어떤 사람일까.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무용과 학생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났다. 무용실에서 함께 모여 연습하면서 조화로운 예술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피아노는 늘 혼자 연습해서 게을러지기도 하고 연습실에서 외롭고 고독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해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함께 하기에 그 안에서 잡음이 늘 끊이지 않을 것도 같다.
오디션에 선발된 무용수들은 모두 젊은 여성이다. 정영두 안무가는 본인보다 어린 무용수들에게 늘 존대하며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움직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무용수들이 짜도록 하고 그것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안무가가 피드백을 전한다. 안무가가 혼자 안무 구상을 하고 가르친다고 생각한 내게는 특이한 풍경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출구가 안 보여 막히기도 하고 시간도 걸리고 정성도 더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안무가가 무용수들을 존중해가며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연습을 이끌어가니, 무용수들이 안무가에 대한 신뢰가 높다.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무용수들의 동작이 힌트가 되어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지 더 선명해졌다. 음악과 무용은 보이지 않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무용과 맞추는 것은 피아노 두 대가 맞추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맞춤이다. 피아노는 작은 근육을 주로 쓴다면 무용은 주로 큰 근육을 쓰기에 동작이 커서 템포가 중요하다. 무용수들의 신체 컨디션에 따라 첫 공연까지 적절한 템포를 찾아내느라 힘들었다.

무대 위에서 피아노 두 대를 데칼코마니처럼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랬더니 시차가 발생해 서로의 귀에 음이 늦게 도착했다. 피아니스트는 귀에 도달하는 음에 따라 연주하니까 음악이 점점 느려졌다. 그래서 음향감독을 외부에서 모셔와 인이어(in-ear)를 귀에 꽂고 템포를 맞췄다. 귀에 꽂히는 전자음으로 고막이 피로하고 내 피아노 소리가 작게 들리는 단점이 있지만 이런 방법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2021년 첫 공연 때, 기계오류로 인이어가 작동을 안 하는 바람에 상대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당황한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기쁘고 흥미롭게 감상을 했다니, 감상은 관객의 몫임을 새삼 느낀다.

2022년 4월, 연습을 위해 무용단과 다시 만났다. 더욱 날씬해진 무용수들은 하루 한 끼를 먹고 배고픔을 견디며 살을 뺀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해가는 모습에 존경스럽다. 무용수들 동작이 작년보다 더욱 분명해졌고 멈추지 않고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무용단 단장이 연습 과정을 보고서 한 이야기에 영감되었다.
“그동안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몸통과 팔다리뿐 아니라 얼굴까지도 무용에 포함시켜라. 몸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얼굴로서도 예술을 표현해야 한다.” 기술에 맘을 쏟기 바쁜 예술인에게 하는 쓴소리였다.
소리로 예술을 표현하는 나는 한 음, 한 음을 음악 속에 놓치지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동작과 음의 연결을 통해 자신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것 또한 성장의 큰 기쁨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공연을 주고 싶어 공연만큼이나 리허설을 엄청 꼼꼼히 체크했다. 조명의 타이밍을 몇 초라는 순간에 맞추고 장치가 움직이는 순간과 무용수와 음악이 나오는 타이밍 등, 순간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하는지 공연보다 리허설이 더 지치고 힘들었다.
무대에 드러나는 사람들과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그런 수고 덕분에 이 글이 게재되는 6월엔 모든 회차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연습과 마다하지 않는 노력, 무용수와 스탭과의 조화 등 이 모든 경험이 무대에서 녹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정점으로 나는 무대에서 자유를 누릴 것이고 내가 느끼는 그 자유를 관객에게 전해줄 수 있길 바란다.

사진출처 : 국립현대무용단


 

신은경 

스토리텔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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