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공연이 끝난 후엔 무슨 일이 있을까
음악칼럼 - 공연이 끝난 후엔 무슨 일이 있을까
  • 신은경
  • 승인 2022.07.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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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여름이 되면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자동차 문에 B4 크기에 두꺼운 전국지도책을 꽂아 놓으셨는데, 아버지는 시동을 걸기 전에 늘 지도를 펼쳐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곤 하셨다.

새로운 작품을 연습하게 되면, 악보를 처음 펼칠 때부터 이 곡은 어떤 분위기고 어떤 소리가 어울리는지 음악 지도를 마음에서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이 길이 아니면 저 길로도 갈 수 있는 것처럼 음악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습을 한다. 하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내 음악 지도의 목적지는 가장 그 곡답게 연주하는 것이다.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혹은 비슷해질 때까지 연습한다. 처음에 그린 음악 지도가 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연습하면서 영감받거나, 함께 하는 작곡가 또는 다른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받아 세밀하면서 풍부하게 음악 지도를 그려나간다. 그렇게 음악적 목적지를 향해 지도를 따라 열심히 연습하고 연습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선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진다. 멀쩡히 잘 돌아가던 손가락이 굳어서 버벅거린다든지, 의심 없이 알고 있는 베이스음인데 갑자기 헷갈려 다른 음을 눌러 화음을 바꿔버린다든지, 악보를 한 장 넘겨야 할 것을 두 장 넘긴다든지, 리허설에서 문제가 없던 피아노 페달이 내려가 올라오지 않아 밟을 때마다 매번 들어올려야 하는 일 등 돌발 상황이 생기곤 한다.
공연 중에 물론 이렇게 당황스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습할 때 느끼지 못하던 영감을 받아 즉흥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고 기술적으로 어려워 염려하던 부분에 손가락이 저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관객과 함께 음악에 순간 몰입되어 관객과 진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공연이 모두 끝난 후에 희한하게도 나의 감정 상태는 전보다 분주해진다.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실수한 것들과 통제하지 못한 것들이 마음을 채운다. 이때부터 마음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나는 아직도 내 맘에 들게 연주했을 때와 아닐 때의 온도 차가 크다. 내 의도대로 음악을 무대에서 잘 구현하지 못한 경우나 남들의 평가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경우, 수치심이라는 삽으로 땅굴을 파서 아무도 나를 못 찾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내가 그린 음악지도 그대로 100%는 아니더라도 80~90% 표현되기를 바라는데 연주 중 지도의 동선이 꼬인다든지, 지도 색이 바랜다든지 하면 지도 자체를 버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극단적이고 과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 마음이 내겐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몇십 년간 흘러온 이런 사고방식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알아챘다. 

연주장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질 때, 연주자의 기질에 따라 공연 후 감정 상태가 달리 흘러갈 것이다. 누군가는 연주가 생각만큼 되지 않았어도 ‘담에 잘하자.’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서 연주가 끝나면 예외 없이 매번 끙끙 앓는 것일까? 

무대 위에 서면 더 잘해서 150% 드러내는 무대 체질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준비를 실컷 하고도 관객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긴장해서 손이 말을 안 듣는다. 남들이 보기엔 태연해 보일지 모르나, 수면 밑으로 열심히 발을 놀리는 백조와 같다. 연습할 때 매혹적인 멜로디에 취해서 흥얼거리고 아름다운 화성의 변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공연장에서 그렇게 감정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은 없다. 그렇게 감정 흐르는 대로 연주하다가는 실수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은 연주자가 주관적으로 느낀 바를 표현하기보다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 의도를 파악해 구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음악의 특성상 대중 음악가보다 클래식 음악가들이 무대에서 더 긴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까슬까슬한 옷이 피부에 쓸리는 것처럼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연주에 대해 칭찬하더라도 내가 설정한 기준에 연주가 도달하지 못하면 나 스스로와 다투고 싸운다. 그러니 연주가 끝나면 늘 마음이 괴롭다.

그런 내 마음을 동료 피아니스트에게 전하니, 그는 ‘무대에서 60%만 하자.’라고 생각하며 무대에 오른단다. 그렇게 마음을 놓고 치면 연주도 더 잘 된다는 것이다. 그 피아니스트는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 연주 후에 무척 가벼운 모습을 보였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마음을 비우고 기준을 낮추자.’ 그래서 나도 그런 마음으로 연주에 임했더니, 실수가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마음이 내 맘대로 된다면 몇십 년간 나와 그렇게 싸우지 않았겠지. 그렇다. 60%는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나와 싸우지 않으면서 공연 후 마음 정리를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참 잘하고 싶어 한다. 그 욕구만큼이나 두려움도 크다. 두려움 때문에 기준을 낮추면 오히려 의욕이 상실되니, 기준을 낮추지 않고 높여야 의욕이 살아나는 사람이다. 그래서 잘하고 싶은 욕구를 바꾸거나 놓아버리려 하지 않고, 욕구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니, 인정했다. 그래, 나 잘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인정한 것이 있다. 내 성에 찰 만큼 열심히 하진 않았어도 끊임없이 나아지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나는 미미하지만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은 여기인데 왜 아직 거기밖에 못 왔어?’라며 결과만 놓고 질타하던 것이 내 모습이다. 거기 도달하겠다고 노력하는 나는 간과한 것이다. 연습이 때로는 귀찮고 힘들지만 좋은 음악, 좋은 공연에 이끌리어 연습해왔다. 노력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고 있다면 그것도 인정하자. 넘 관대하다고? 그런 방식도 허용해보기로 한다. 나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모습을 잘못됐다 하지 않고 인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고 나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걸 몰랐다. 누구든 자신의 모습이 직업에 투사되어 나타날 것이다. 나는 피아노가 아닌 다른 일이어도 기존 방식대로 나를 달달 볶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일에 임하든 나를 제쳐놓지 말자고 다짐한다. 피아노 연습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상태를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음악 지도뿐 아니라, 어디쯤 내 마음이 머물고 있는지 마음 지도도 펼쳐놓아야겠다. 


 

신은경

스토리텔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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