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 자연과 하나 된 스타일링, 라드라비
생활수필 - 자연과 하나 된 스타일링, 라드라비
  • 미용회보
  • 승인 2022.07.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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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진상미로 1163번길 220 ‘라드라비(L’art de la vie).’ 뜻밖의 풍경에 입이 떡 벌어집니다. 바위 등고선 따라 구불구불 세워진 건물.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괴테의 자연론을 반영한 가우디 건축이 언뜻 떠오르는 풍광입니다.
자연에 스미듯 세운 건물을 파노라마의 시선으로 훑어봅니다. 건물이 도드라지지 않으니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네요. 바위를 계단 삼아 올라야 하고 나무를 피해 낸 길은 구불구불합니다. 난관을 잡고 길을 걸으며 몸으로 느껴야 온전히 보이는 공간입니다. 그렇다 보니 핸드폰 사진으로는 이곳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습니다. 생경한 전율.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굴복시키지 않고 타협해 만든 결과물 같아서일까요? 
애초 이곳은 맹지 산이었다고 합니다. 길을 내고 바닥을 파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밑으로 바위가 드러났다지요. 바위에 건물을 얹고 나무를 피해 건물을 지은 세월이 10년. 이 말도 안 되는 공간에 한번 놀라고 만든 이의 이름에 또 한 번 놀랍니다. 미용인이라면 한번쯤 들었을 이름, 바로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 이상일 선생이 ‘라드라비’ 주인이기 때문이죠.

 

최초의 이름, 이상일

남자 미용사가 드문 시절, 184cm의 키에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한 이상일 선생은 1983년 명동에 ‘헤어뉴스’를 오픈합니다. 당시 ‘○○○ 미장원’ 일색이던 미용업계에 상호변경 바람을 일으켰다죠. 그는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를 말고 있는 사진에 카피 한 줄 넣은 파격적인 주간지 광고를 게재하고 1987년 서울 압구정에 정원 있는 미용실을 선보였으며, 최초로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디자이너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였습니다. 플로리스트의 감각으로 미용실에 꽃꽂이를 시도한 것도 그가 처음이라지요.  
이후 이상일 선생은 서울 청담동 도산공원에 ‘파크뷰 바이 헤어뉴스’를 오픈해 청담동 미용실 시대를 엽니다. 카페·베이커리·미용실 등을 한 건물에 모아 인테리어부터 플라워, 푸드 디자인까지 직접 참여하죠.  

 

 

2012년 미용을 은퇴한 그는 충남 외암리에 한옥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화가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0년 만에 ‘라드라비’라는 그의 인생 예술을 이뤄냅니다.     
‘라드라비’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우측 산능선 꼭대기에 한옥 세 채가 있습니다. 세월의 느낌이 있어 원래 있던 한옥인가, 했더니 생 들기름으로 닦은 나무를 써서 그렇답니다. 먼저 올라온 관람객 몇몇이 한옥 마루에 앉아 한숨을 돌리네요. 어깨가 내려가 편해 보이는 뒷모습입니다. 
왼쪽으로 건너가 스몰웨딩이나 파티를 해도 좋을 너른 잔디밭을 지나면 숲속이 시작된 곳에 홍송과 붉은 벽돌, 참나무와 회색 돌 외관이 어우러진 서양식 객실이 보입니다. 나무가 상할세라, 크레인으로 기둥을 옮기고 나무 사이에 꽂아 완성했다죠. 
자연에 맞추려다 보니 작업은 더디고 공사비도 늘었지만 그 덕에 지난해 내린 폭우에도 끄떡없었다고 해요. 

 

 

L'ART DE LA VIE 인생의 예술

이제 작가 이상일의 그림이 있는 미술관으로 가볼까요. 미술관은 총 4개 전시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유럽의 성 안에 있을법한 키 큰 문을 열어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더군요. 
제1전시관으로 들어서자마자 ‘Beauty DNA’가 눈길을 끕니다. 35년 미용실 단골들의 모발 샘플을 넣은 수만 개 캡슐을 크리스털 용기에 담은 설치물이죠. 미용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입니다.  
이상일 작가의 그림은 여러 폭의 캔버스를 퍼즐처럼 배치해 대작을 이루는 연필 드로잉이 특징입니다. 전시관 천장도 높고요. 그래서인지 관람객 동선으로 단을 놓았더군요. 런웨이 모델처럼 스테이지를 걸으며 그림을 보는 겁니다.   
화려하지만 공허한 서울 강남 여인들 그림의 맞은편 벽에는 소박하게 사랑을 나누며 사는 연인의 그림이 대비를 이룹니다. 드로잉의 소재는 이상일 작가의 인생을 담은 것이기도 해요. 어린 시절, 가정을 이룬 후 모습, 미용사로서 활동하던 시기 등을 그림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여인들이 가득한 캔버스를 넋 놓고 보는데 도슨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녀들이 걸친 의상이나 장신구가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는다고요. 

 

 

제2전시관에 들어서면 중앙에 설치작품 ‘인생의 나룻배’가 공중에 떠 있습니다. 작가의 인생 여정을 담은 사진을 담뱃갑에 붙여 콜라주 형식으로 만든 것이죠.
제3전시관 ‘라스트 뷰티’는 작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만든 2012년 작품입니다. 2만5000 송이의 티슈 꽃이 만개한 장례식장 입구에 상복을 입은 아내와 자녀들 그림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대형 드로잉인 ‘승리와 자유의 여인들’이 뒤에서 애도합니다. 
제4전시관 ‘퍼스트 뷰티’는 좁고 경사진 길에 태슬을 드리워 마치 관람객이 산도를 통과하는 신생아의 경험을 갖게 합니다. 어둠이 끝나면 작가의 고향집에 다다르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죠.

 

정성이 주는 감동

전시관에 딸린 미니 도서관에 가면 ‘라드라비’에 관한 상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곳은 이렇다 할 설계도 없이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라드라비(L’art de la vie)는 불어로 ‘인생의 예술’이라는 뜻입니다. 이상일 선생의 인생 예술을 본 느낌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런 표현이 어떨까 싶네요. ‘지극한 정성의 예술’이라고요. 
어디에 무엇 하나 이상일 선생의 정성이 배이지 않은 곳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감동에 압도됐다고 할까요. 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까? 저 건물은 어떻게 올렸지? 그림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 그가 묻힌 지문이 사방 곳곳에 묻어있는 듯 보입니다. 
지난 5월 초 이곳 개관식에 그의 지인과 수십 년 전 단골이 다녀갔습니다. 이상일 선생에게 머리를 맡겨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고객들은 그의 정성어린 손길을 지금껏 기억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라드라비’를 찾는 이들이 많아 보입니다. 한옥 스테이에 원빈·이나영이 묵고 갔다고 해서 더 알려진 것 같아요. 필자가 간 건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이었는데, 이탈리안 식당에서의 점심이 오후 3시를 넘어야 가능했습니다. 미용인들에게도 성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글 성재희

전 그라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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