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 피아니스트의 뇌
음악칼럼 - 피아니스트의 뇌
  • 신은경
  • 승인 2022.10.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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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로서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는지 늘 궁금해 왔는데 피아니스트의 몸을 뇌와 연결해 쓴 책이 있다. 후루야 신이치의 <피아니스트의 뇌>라는 책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대회 입상을 하고 독주회를 열었던 피아니스트이자 공학, 의학박사다. 그는 피아노 치는 것이 너무나 좋아 연습으로 통증이나 피로가 와도 무시하고 연습을 계속 지속했다고 한다. 그러다 급기야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고통스런 상태가 되었고 병원 치료를 비롯해 여러 치료를 했으나 악화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 몸과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규명하고 싶었고, 부상입은 피아니스트들을 돕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마음에서 탄생했다. 그 감사한 마음이 내게까지 도달했다.

내 경우도 연주나 시험을 앞두고 맹연습할 때 부상이 꽤 있었다. 약골이었기에 손가락 근육도 함께 약했던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어깨와 등 근육 통증은 어떻게든 참으며 연습할 수 있었지만, 새끼손가락 관절의 통증은 피아노를 영영 못 치게 될까 봐 겁부터 덜컥 났다.
손에 무리가 가는 옥타브 구간이나 강한 힘을 요구하는 곳에서 손가락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힘으로 타건(건반을 두드림)해서 근육이 긴장하고 염증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도 연습을 안 할 수는 없었기에 거즈로 돌돌 감아 손가락을 고정시켜 연습을 하곤 했다. 아픔보다 표현이 무뎌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내 손톱 끝은 손가락 살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있어서 손톱을 무척 짧게 깍는데, 타건을 많이 하다 보면 손톱과 손가락 살 사이가 벌어져 찢어지면서 건반 위로 피가 묻기도 했다. 손끝이 건반에 닿을 때마다 쓰라렸지만, 피 흘리며 연습한 모습이 뿌듯해 오히려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연주회에 가면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중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나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마도 손가락 부상을 겪지 않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 설문조사 결과, 하루 연습 시간이 4시간을 넘으면 손을 다칠 위험이 증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자신은 하루 4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는다고 했나? 하지만 지나친 사용이 손과 팔을 다치게 한다는 견해와 또 다른 견해가 있음을 이 책에선 밝히고 있다. 부적절한 신체 사용과 타건법이 몸을 다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필요한 힘만 써서 효율적으로 연습한다면 부상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지 늘 궁리해왔다. 그럴 때마다 함께 사는 음악가인 남편이 내게 해준 말은 ‘그냥 무조건 연습하라’였다. 팔이 아파도 계속 연습한 자신의 대학 동기가 어느 날 팔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극한점을 넘어가면 되는 것이니 너무 머리 쓰지 말라고 조언을 했었다. 난 그 정도 감당할 몸의 끈기가 없었기에 머리를 굴려 효율적인 몸의 움직임을 찾고 배웠는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랬다니 위로가 된다.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근육은 일반인보다 강할까? 난 당연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식구들 안마를 해주면 역시 피아노 치니 손힘이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의 실험 결과는? 피아니스트와 일반인 손가락 끝으로 물건을 집는 힘과 손의 악력을 측정했는데, 피아니스트 손가락 근력이 일반인과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고 파워풀한 소리를 내는 피아니스트는 일반인과 무엇이 달랐을까? 초절기교를 구사하는 피아니스트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뇌’에 있었다!!! 손가락 근육이 아닌 뇌라니. 그동안 나의 손가락을 무수히 탓해 왔는데, 문제는 손가락이 아니었다.

손가락 움직임이 복잡하고 재빠르게 움직일수록 뇌의 운동피질에 있는 신경세포가 많이 활동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 피아니스트의 운동피질 신경세포는 적게 활동했다. 피아니스트의 뇌는 활발히 움직이지 않아도 복잡한 손가락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잘 다듬어져 있었다. 오랜 연습으로 특화된 뇌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피아노 칠 때 더 빨리 치기 위해 어떻게 동선을 짜야 에너지를 절약하는지 생각하는데, 뇌도 나름 그러고 있었다. 다만 실험 결과 밝혀진바, 피아니스트 손가락 움직임을 맡은 소뇌 부피는 일반인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뇌에 일반인보다 약 50억개의 신경세포가 더 많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는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운동피질과 소뇌)가 일반인보다 발달되어 있어 더 민첩하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피아니스트가 운동을 한다면 그 역시 잘해 낼 수 있다는 얘기 아닐까? 
운동에 소질이 없었던 내가 자신감을 얻은 건 예술고등학교에서나 가능했다. 친구들 역시 운동엔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만년 달리기 꼴찌인 내가 꼴찌를 면한 것도 예고에서였다. 그래서 난 음악가는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연습으로 운동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운동을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발달한 운동피질을 이용해 운동하면 나도 잘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같은 연습량이면 어릴 적 연습하는 것이 뇌 발달에 유리했다. 피아노를 어릴 때 시작할수록 왼손 손가락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더 커지고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피아노를 시작해도 연습을 충분히 한다면 손가락을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대부분 피아니스트의 뇌는 타고 나기보다는, 연습 훈련으로 뇌 신경세포가 증가하고 뇌 활동이 다듬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악기연주를 담당하는 뇌 기능은 연습 시간에 비례해서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연습을 열심히 하면 뇌 기능과 손가락 기능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어도 연습을 하면 계속 테크닉이 발전하니 연습을 안 할 수가 없다.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가 80세가 되어도 매일 연습을 3시간 이상 꾸준히 하니까 왜 연습을 그리 많이 하는지 기자가 물었다. 카잘스는 “나는 아직도 좋아지고 있다고!”라고 시원하게 대답한 일화가 생각난다.

희소식은 이런 특별한 뇌가 일반인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음악가가 아닌 사람에게 피아노로 간단한 멜로디를 치게 하고 그 담엔 좀 더 어려운 것을 치게 하는 식으로 단계적 훈련을 했더니, 훈련한 지 20분 만에 음을 듣기만 해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세포가 반응했다고 한다. 이 훈련을 5주간 했더니 뇌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멜로디뿐 아니라 리듬도 마찬가지였다. 리듬감 있는 음악에 우리는 어깨를 들썩거리거나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나. 리듬에 반응해 몸을 움직이는 신경세포가 활동하기 때문이라 한다. 

음악감상에 있어서 무서운 음악을 들으면 본능의 뇌인 편도체가 활성화된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편도체가 듣기 싫은 음악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놀랍다. 그럼 그 반대는 어떨까?

감동적인 음악을 들을 땐 편도체가 둔해져 안심이 되는 감정상태가 되며 심장 심박수가 오른다고 한다. 단, BGM으로 흘려듣는 것보다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들을 때 이런 뇌의 보상이 커진다고 한다. 
안정을 꾀하고 싶다면 음악을 흘려듣는 대신 집중해서 들어보자. 최근 지인의 무례한 행동이 내 레이다망에 걸려 화가 나 있었다. 어제 저녁 레슨을 하면서 음악과 학생에 집중했더니, 그 문제는 멀어져 객관적으로 보이고 어느새 내 맘은 가벼워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돌이켜보면 연주회장에서 집중해서 듣는 음악, 차 안에서 홀로 듣는 음악 등 음악은 내게 치유까지 선물해주었다. 
많은 이들이 피아노뿐 아니라, 하고 싶은 악기 하나씩 다루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악기를 다루는 것으로 뇌의 청각피질, 시각피질, 운동피질 등을 발달시켜 나이와 상관없이 뇌를 더욱 영민하게 만들 수 있고, 마음의 안정과 함께 삶이 다채롭고 풍요로워지는 것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2번 완독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보아야겠다. 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손가락을 느끼며 난 오늘도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신은경
스토리텔링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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