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쿵' 소리에 정지된 이미지가 깨어났다 '메모리아'
영화리뷰 - '쿵' 소리에 정지된 이미지가 깨어났다 '메모리아'
  • 신대욱
  • 승인 2023.02.0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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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일 : 2022.12.29
장르 : 드라마
감독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출연 : 틸다 스윈튼, 잔느 발리바, 다니엘 기메네즈 카쵸 외

새벽의 적막을 깨는 알 수 없는 ‘쿵’ 소리에 제시카(틸다 스윈튼)는 잠에서 깨어난다.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한 이 소리는 그녀의 삶에 깊이 파고든다. 제시카는 이후 지인의 소개로 사운드 디자이너 에르난(후안 파블로 우레고)을 만나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쿵’ 소리를 재현하려 한다. 그러다 그 소리가 자신에게서만 들린다고 생각한 제시카는 병원을 찾아 원인을 해소하고자 한다. 고고학자를 만나 발굴된 유골에 얽힌 기억을 듣기도 한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 제시카의 여정은 잔잔히 흐르는 계곡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로 가득한 숲 속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르난(엘킨 디아스)을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소리에 깃든 기억을 추적하는 신비로운 여정

소리를 영화로 옮길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뇌 속에서 일어난 진동의 근원을 영화로 그려낼 수 있을까.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메모리아>는 ‘쿵’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데, 소리가 지닌 시각적 한계에 다가선 영화다. 소리는 듣는 순간만 존재하기 때문에 영상으로 옮길 수 없다.
그래서 <메모리아>는 소리의 발생과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여기서 시간이 발생하며 서사가 이뤄진다. 사운드를 구축하듯이, 소리에 깃든 기억을 추적하는 신비로운 과정에서 영화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메모리아>는 소리가 들린 후 정지된 이미지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출발한다. 시각화할 수 없는 소리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다.
알려진 것처럼 <메모리아>는 폭발성머리증후군(Exploding Head Syndrom/EHS)을 앓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EHS는 잠에 들려는 순간 머리에서 폭발음이 들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종의 수면 장애다.
또 감독은 신작을 위해 콜럼비아에 머무는 동안 경험한 대규모 터널 공사에 얽힌 고고학자와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파헤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제시카가 숨겨진 기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메모리아>에서 ‘쿵’ 소리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자동차의 경적이나 버스의 폭발음 등이다. 설명할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다. 이 소리들은 영화 배경인 콜롬비아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암시하는 장치로도 볼 수 있다. 소리에 깃든 불안함은 역사의 기억들이 응축돼 나타날 수 있어서다.
이 소리들은 영화 후반부의 기억과 연결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존재는 에르난이다. 공교롭게 사운드 디자이너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이름이 모두 에르난이다. 소리와 기억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의도적인 인물 배치로 보인다. 그러니까 <메모리아>는 둘로 나뉘어진 영화라 할 수 있다. 혹은 두 번의 반복으로도 볼 수 있다.
전반부의 에르난은 소리를 재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후반부의 에르난은 소리를 말로 옮겨놓는다. 제시카는 자신이 경험한 ‘쿵’ 소리를 사운드 디자이너인 에르난에게 설명하며 재현해줄 것을 요청한다. 제시카는 “이건 우르릉 소리와 같아요. 지구의 중심에서 온 것 같은 소리에요. 쿵 그리곤 수그러들어요.”라고 전한다. 에르난이 재현된 소리를 들려주면 제시카는 다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묘사하고 차이를 설명한다. 이 과정은 몇 차례 반복된다.

 

소리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여정만큼

정교하게 짜여진 사운드가 돋보인다

시간의 두께에 가려진 기억의 지층, 역사의 편린

두 번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르난을 만난 제시카는 자신의 ‘쿵’ 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에르난은 처음 만난 제시카에게 당신이 어디 머무는지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옆에 놓인 돌을 집어 들며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이 돌에서도 한 남자의 이야기가 들린다고 얘기한다. 제시카가 그 남자를 아냐고 하자, 에르난은 그 남자를 모르지만 진동이 돌에 새겨져 있다고 전한다.
제시카와 에르난의 대화가 이어지며 제시카의 ‘쿵’ 소리는 말을 경유해 기억으로 옮겨간다. 첫 번째 에르난이 소리를 재현하려 한 것처럼, 두 번째 에르난은 이야기를 펼쳐놓고 과거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시간의 두께를 벗겨내듯이(두 번째 에르난이 처음 등장할 때 그는 생선의 비늘을 벗기고 있다) 소리의 내용을 말로 파고든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에르난은 그만큼 사물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말로 옮길 수 있는 인물이다. 잠을 자는 순간마저도 눈을 뜨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제시카는 에르난과 대화를 거듭하면서 공명하듯 불가능한 기억인 아기 때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에르난은 제시카에게 “나는 일종의 저장장치에요. 그리고 당신은 안테나고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둘은 손을 잡는다. 비로소 시간의 지층이 쌓인 기억의 편린을 끌어올린 소리의 정체에 도달한다. 그렇게 ‘쿵’ 소리에 깨어난 이미지는 역사의 기억을 들추며 넓어진다.
<메모리아>는 소리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여정만큼 정교하게 짜여진 사운드가 돋보인다. 가장 주된 ‘쿵’ 소리를 포함한 도시와 자연의 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각 시퀀스에 맞춰 정교하게 제작됐다. 제시카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그녀의 방 창문을 넘어 저 멀리 산을 통해 다가오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강렬한 ‘쿵’ 소리는 수많은 녹음 파일들로 완성됐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에 최초로 녹음된 파일을 겹겹이 쌓아 사용했다.

 


신대욱
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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