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듯 음악하다
산을 오르듯 음악하다
  • 신은경
  • 승인 2024.04.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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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혈정’이란 마음이 있는 곳에 기가 흐르고, 기가 흐르는 곳에 피가 돌고, 피가 잘 도는 곳에 에너지(정)가 모인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 마음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떠오른다. 정말 그럴까? 나는 울산에 있는 일곱 개의 봉을 오르내리며 ‘심기혈정’이라는, 마음과 에너지의 관계를 몸으로 체득했다.

어릴 적부터 나가 노는 것에 대한 흥미가 없었던 나는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하는, 다소 심심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가 속해 있는 자기계발프로그램인  IRM(Identity Relationship Management)에서 영남알프스 7봉 완주를 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나는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넷째 손가락에 금이 가서 깁스하고 피아노와 살림까지 모두 내려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의 소음과 공해, 디지털 등의 자극을 끊고 자연이라는 공간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나의 엉덩이는 실실 들썩거렸다. 등산이야 다리로 하는 것이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또 한편으론 양손을 써야 하는 험한 산에서 깁스한 상태로 잘 오르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고민이 부질없었음을 등산 첫날 바로 알게 되었다. 등반의 어려움과 육체의 고통은 손이 아닌 다른 부위에서 찾아왔다.

첫날, 하루에 하나의 정상도 헉헉거리던 내가 높고 험한 두 개의 봉을 올랐다. 영남알프스의 큰 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지산, 그리고 운문산이었다. 등산하는 3일 내내 나를 괴롭힌 것은 손의 깁스가 아닌, 내 발에 꽉 끼는 어머니의 등산화였다. 오를 때는 문제 없던 발이 하산할 때 벌겋게 붓고, 엄지의 앞부분이 신발에 닿을 때마다 찌릿거렸다. 경사가 가파를수록 누군가 칼로 나의 엄지를 슥슥 베어내는 것 같았다. 결국 하산 막바지엔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땅을 디뎠다. 순간 아픔에서 해방되었지만, 이번엔 작은 모래알들이 송곳처럼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했다. 퉁퉁 부은 발을 시냇물에 담그고 열기와 통증을 식혔다. 그랬더니 이번엔 살을 에는 추위가 정강이뼈까지 전해졌다. 자극에 민감한 내게 쉬운 것이 없었다. 그래도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벌건 발가락을 등산화 속에 살살 넣었다. 

둘째 날, 세 봉을 오르는 날이었다. 새벽 수련으로 천천히 근육을 늘리고 경락을 자극하며 관절들을 풀었다. 그랬더니 의자에 앉을 때마다 찢어지듯 아팠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통이 조금 덜어졌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은 피했다. 간월재를 지나 신불산을 향하는데, 제주 오름에 온 듯 탁 트인 전망이 망막에 시원하게 맺혔다. 가파른 계단이 다시 시작되자, 심장박동은 마구 뛰고 나의 거친 숨이 온 산을 뒤덮었다. 마지막 봉인 영축산 가는 길,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이 자신을 드러냈다. 3월 말의 흰 눈은 겨울의 흔한 하얀 빛과는 다르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신불산에서 영축산까지 얼마나 걸었을까. 가도 가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고 돌을 밟는 나의 발가락은 점점 더 붉게 화를 냈다. 둘째 날 마지막 산인 영축산 정상에 오르자 하루가 지나가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어둑어둑해지는 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왔다.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벌건 발뿐이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그재그 하산길을 걷고 걸어 내려오는 중, 밝은 빛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진달래가 이토록 선명히 빛을 내고 있을 줄이야. 나는 그 붉은 빛을 입 안에 머금었다. 

셋째 날, 새벽 수련으로도 몸은 잘 풀어지지 않았다. 이틀간의 여정이 어지간히 무리가 되었나 보다. 그런 몸과 상관없이 마음은 7봉 완등을 위해 천황산으로 향했다. 케이블카에서 평온한 조망은 잠시였고, 나의 다리는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불쌍한 발가락을 등산화에 닿지 않게 하려고 초반부터 오므리고 걸었다. 
고헌산은 무척 가파르고 험해서 스틱 두 개가 필요했다. 한 손에 깁스를 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발끝만 집중하며 걷자고 다짐했다. 무사히만 돌아오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고헌산은 초입부터 죽음의 계단으로 시작되었다. 끝도 없는 계단에 나는 한여름 무더위에 혀를 늘어뜨린 개처럼 입을 벌리고 헉헉대었다. 고헌산 정상이 보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에 도달했다. 오르는 것은 이제 종결이다!

일곱 개의 봉을 오르내리며 내가 한 것은 그저 걷고 걸은 것이었다. 삼 일 내내 몸의 극한, 한계에 맞닥뜨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나.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불가능의 상황에서 ‘내 다리는 아프지 않다, 충분히 걸을 수 있다’라고 마음으로 중얼거리면 다리가 다시금 움직였다. 내가 걸음에 마음을 두고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에너지가 샘물처럼 조금씩 솟아나 몸이 움직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넘어서지 못할 것 같은 벽이 내 앞에 버티고 있을 때마다 힘겹지만 한 발 내디디면, 그 벽은 신기루처럼 허물어졌다. 일곱 봉을 넘은 건 누구의 발도 아닌 나의 발이었다. 한계 앞에서 허물어진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앞에 현실 같던 한계가 하나둘 스르륵 사라지고 있었다. 몸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편안한 것만 찾던 내가 몸을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세상을 향해 단단한 다리로 서 있는 내가 느껴진다. ‘심기혈정’이라는 개념은 이렇게 내게 실재로 다가왔다. 

연주와 등산의 같은 점은 오로지 정직하게 자신의 몸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연주실력이 솟구치지 않듯 산의 정상도 한 번에 날아오를 수 없다. 연습이 쌓여야 연주실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등산도 한 발 한 발 차근히 올라야 정상에 오른다. 
끊임없이 나의 몸으로, 한 발을 옮김으로 7개의 봉우리를 넘었던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었다. 완주라는 결과도 물론 좋은 경험이었으나, 내게 깊게 영향을 준 것은 불가능을 계속 가능으로 만든 다리의 움직임이었다. 반복적인 몸의 경험은 나에 대한 믿음을 발끝에서부터 올렸다. 내게 자신감이란 나에 대한 믿음의 다른 말이었다. 
등산은 정상이라도 있지만, 음악은 끝이 없는 예술 분야이다. 완성이 없음에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구도의 길이기도 하다. 음악의 완성된 이상적 상태만 바라보고 음악 한계에 부딪히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초라하고 한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신을 낮춰 보는 대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높은 정상을 바라보면 언제 저기 도달하나 하는 생각에 산 초입에서부터 지친다. 하지만 나의 발끝에 집중하고 한 발씩 나아가며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상에 올라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에 나오는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아무리 높은 곳도, 아무리 먼 곳도 이르지 못할 곳이 없나니”라는 말은 음악에도 마찬가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근육을 느끼며 연습하는 것을 피아노 의자에 앉아 매일 담담히 해보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준 다리의 움직임은 나의 삶 전반에 영향을 주겠지만, 특히 음악 인생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걸음 하나, 손끝의 움직임이 어떤 삶의 그림을 그려낼까. 수없는 반복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음만 놓지 말자. 그것이 내 음악의 ‘심기혈정’이다.
끝없는 길에서 나를 믿으며 가는 매일의 움직임이, 음악의 우주로 안내하고 무대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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