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의 아름다움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 신은경
  • 승인 2024.06.24 10: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테너 배재철

아직 온전하지 않은 내 손가락을 본다. 아침마다 부어 있는 손가락은 구부리거나 펼칠 때, 묵직하고 뻐근한 통증이 있다. 5주간의 손가락 깁스를 풀었지만, 그 후유증을 3개월 동안 마주해야 한다. 그래도 이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를 수 있어 다행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의 촉감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성악가에겐 성대가 중요하다.
테너 배재철, 그는 우리나라 동아콩쿨 1위, 국제콩쿨에서 다수 입상을 하고 외국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독일의 자브리켄 국립극장의 주역 가수가 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2004년 갑상선 암이 발병했다. 2005년 암 수술을 받았는데, 불행히도 성대를 건드려 한쪽 성대에 마비가 왔다. 성대 양쪽을 비벼야 소리가 나오는데, 한쪽 성대의 마비로 성악가인 그는 노래는커녕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다. 자브리켄 국립극장에선 그런 상황을 알고서도 주역 가수의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무대의 기회를 열어 놓은 채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오, 예상 밖의 행정에 내 눈이 커졌다. 극장 측에선 어떤 마음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는 성악가를 기다렸을까. 그를 노래하는 도구로 본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신뢰와 안목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이후, 배재철을 아끼는 일본의 음악기획자가 성대 복원 수술로 세계에서 일인자인 의사를 찾았다. 그래서 배재철의 성대를 몇 차례 수술하게끔 했다. 하지만, 성대의 마비가 풀리거나 완벽히 돌아오지 않았다. 목소리는 겨우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음과 음을 이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음과 음을 연결하는 음정 연습을 수년간 반복했고 마침내 음을 연결해서 멜로디를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간혹 어떤 음은 이탈되거나 뒤집어지기도 했고, 예전만큼 고음을 낼 수도 없었고, 풍부한 성량이 나오지도 않았다. 
과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없는 참담함과 음악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불완전함 속에서 그가 느낀 좌절의 깊이는 얼마큼이었을까. 그만 음악을 놓을 법도 한데, 그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쪽 성대로도 노래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 불완전함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무대에 설 때 가장 자기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김상만 감독, 유지태 주연의 실화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울림이 있는 이유는 역경을 안고 가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성악가에게 전부인 목소리를 잃었지만, 다른 것을 얻었다. 그는 물리적 소리를 넘어 다른 울림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그 울림엔 삶에 대한 좌절과 의지, 음악을 향한 간절함과 사랑이 묻어나 있다. 매끄럽고 아름다운 소리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감동이다. 그는 예전과 같이 큰 무대에 서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크고 작은 무대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의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는 감동을 주는 반면 어떤 노래는 훌륭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일지 않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목소리에 삶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저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닌, 그의 에너지를 듣는다. 현란한 테크닉도 없고 유려한 음색이 아니어도 그의 노래에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한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통과해 간 삶의 책임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듣는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고, 삶의 터널을 묵묵히 걸어 지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목소리뿐 아니라 악기 연주에서도 연주자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영혼을 느낄 수 있다. 공기를 매질로 파장을 전하는 악기 소리 역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소리에 어떤 에너지를 담겠다는 의도를 내면 그 에너지가 담길까? 그렇다. 연주자는 악보를 보고 음악이 요구하는 에너지를 담아 연주한다. 동시에 그 소리엔 연주자의 삶이 배어 있다. 그래서 무대에 선 연주자들은 때로 자신이 발가벗겨진 느낌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손가락 깁스를 하는 동안, 연주를 앞두고 있음에도 피아노를 칠 수 없었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건반부터 누르는 내가 이제는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을 매번 눌러야 했다. 내 손끝으로 음악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마음으로만 표현하고 상상해야 했다. 물리적인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악보를 보며 다른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요할 때,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음악과 내가 깊이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면, 소리에 담긴 에너지가 물리적인 소리보다 먼저 들리는 듯했다. 하나의 감각을 쓸 수 없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불완전함 또한 얼마나 온전한가! 손가락을 쓸 수 없었던 그 시간이 나의 귀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이 삶이 신묘하고도 아름답다.

삶의 에너지가 목소리에, 그리고 피아노 연주에 담기고 묻어난다.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 다시 물으며 숙고하는 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123 미용회관 5층
  • 대표전화 : 02-585-3351~3
  • 팩스 : 02-588-5012, 525-1637
  • 명칭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 제호 : BeautyM (미용회보)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한미용사회중앙회.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