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철인3종 도전기
피아니스트의 철인3종 도전기
  • 신은경
  • 승인 2024.07.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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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새벽을 가르며 자전거를 끌고 숙소에서 나왔다. 비 온 뒤의 하와이 하늘은 더욱 검고 축축했다. 젖은 땅에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선수들이 나를 “쌩!”하니 지나쳐 경기장을 향해 갔다. ‘저들과 함께 레이스를 해야 하는데, 부딪치지는 않으려나.’ 걱정 하나가 올라왔다가 무거운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경기가 취소되었으면...’ 몸은 경기장을 향하면서도 마음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하와이 도착한 날부터 하늘이 뚫린 듯 내리던 비는 경기 날 새벽에 거짓말처럼 그쳤다. 긴장으로 밤새 한숨도 못 잤다. 
많은 선수들이 호놀룰루 철인3종경기를 하기 위해 5월 19일 새벽 5시 알라모아나 바다 앞에 섰다. 나는 몽롱한 몸과 마음을 깨기 위해 바다를 바라보며 스트레칭과 제자리 뛰기 등을 하였다. 경기 현장의 스피커에서 영어로 울리는 안내와 신나는 음악만큼이나 이 상황은 알아듣기 어려운 삶의 한 장면 같았다.
 
수영은 25미터를 겨우 헤엄치고, 자전거도 없는 내가 철인3종이라니! 나는 왜 이 도전을 시작했을까? 
첫 번째, 나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여리고 나약한 내 모습이 싫었다. 강단지고 튼튼하고 힘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경기를 끝내고서 알았다. 남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아닌, 내가 보는 나를 바꾸고 설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두 번째, 내게는 죽을 때까지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한 몸이 필요했고, 더 늦기 전에 체력을 올려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두 가지 모두 얻었다. 그런데 내가 얻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철인3종경기 참가를 결정한 뒤, 해가 정수리에 꽂히건 비가 머리를 적시건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심지어 감기 걸린 날에도 수영장 물에 몸을 담갔다.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은 수영 동영상을 보며 내 자세를 상상하며 체크하고 머릿속에서 수영했다. 자전거와 수영은 어느새 취미가 아닌 매일의 훈련이 되었고, 넘어야 할 산이 되었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피아니스트의 무모한 도전을 걱정하고 만류했다. 사이클 연습 중 손가락 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고심했다. 최우선순위는 음악이었지만, 몸 없이는 음악도 성립되지 않았다. 깃발을 꽂으면 깃발을 향해 가기 마련이다. 철인3종 완주라는 목표를 세운 이후, 어떤 것도 핑계로 끌어다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힘겨운 발걸음이 계속되었다. 나약하고 나태한 마음, 그리고 무거운 몸과 타협이 들어가면 이미 게임에 진 것이다.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걷고 뛰고 물살을 가르기 위해선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전에 일단 몸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50년간 나의 움직임이란 것이 대체로 눕거나 앉거나 피아노 손가락 운동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매일 뛰고, 자전거 페달 돌리고 물살을 가르는 반복적인 연습으로 마침내 알라모아나 바다 앞에 서게 되었다. 

“삐!!” 휘슬이 새벽의 어두움을 한 차례 벗겨냈다. 올림픽 코스 선수들이 먼저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저들은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까? 어느 때보다도 건강한 자신의 에너지를 발현하기 위해 여기 이렇게 모여 있구나.’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 나아지겠다는 마음으로 수영하고 따릉이 페달을 굴렸던 나와 오버랩되어 울컥했고, 그들과 연결되어 가슴이 장대해졌다. 스프린트 코스인 나를 위한 휘슬이 두

근거리던 심장에 내리꽂혔다. 모래를 발바닥으로 제치며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오래도록 내린 비로 뿌옇게 된 바닷물에 내 얼굴을 넣어야 하나 싶어, 파도에 철렁거리는 발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찜찜해도 어쩌랴. 눈 딱 감고 입 안을 소금기 있는 바닷물로 헹구고, 수경을 쓰고 몸을 먼저 들이밀면서 수영을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온도도, 넘실거리는 파도도 잔잔한 수영장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점점 미궁 속에 빠지는 듯했다. 어느새 발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어 깜짝 놀라 발이 닿는 곳으로 있는 힘껏 헤엄치기도 했다. 바다를 나와 다시 육지를 밟았다. 모래사장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발은 땅에 닿아야 맛이지! 

바꿈터(철인3종경기에서 수영에서 사이클로, 사이클에서 마라톤으로 바꾸기 위하여 선수들이 그들의 장비를 준비해 두는 곳)에서 젖은 발을 수건으로 닦고 러닝화를 신었다. 발은 보금자리를 찾은 듯 포근하게 신발에 감싸졌다. 드디어 두 번째 종목이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갔다.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만 타자고 다짐했다. 멋진 자세의 선수들이 나를 수없이 추월해갔다. 능숙하게 자전거를 다루는 근사한 무리 속에 내가 함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웠다. 나 역시 추월할 때는 몸을 바짝 낮추어 공기의 저항을 줄이고 가볍게 페달을 돌리며 속도를 냈다. 그런 나 자신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20킬로미터의 사이클 경기가 거의 끝나 바꿈터로 돌아올 즈음, 안전요원이 “Come down, Come down!” 하며 속도를 줄이라고 외쳤다. ‘아, 다 왔구나.’ 마지막 달리기 종목을 남겨두고 완주에 확신이 들면서 눈물이 밑에서부터 차올랐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했던 자기 의심은 내 두뇌에서 지워졌다.

하와이에서 처음 빌린 자전거가 낯설어 올라탈 때 휘청거려 놀라고 당황했었다. 공연장마다 피아노가 달라 리허설을 통해 적응하는 것처럼 자전거도 그랬다. 안장이 높고 핸들은 낮고 왜 이리 많이 흔들거리는지. 나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어깨가 뻣뻣해졌다. 2월에 한국에서 있었던 사이클 낙차 사고의 두려움이 올라와 아무래도 이 자전거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음 날, 자전거 기어를 무겁게 조정한 뒤 올라타는 것부터 다시 시도했다. 다행히 덜 휘청거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다음 날, 불안한 상태였지만 팀의 도로 연습에 함께 했다. 팀을 놓치지 않으려고 허벅지가 터지도록 페달을 밟았고, 차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집중 또 집중했다. 또 다음 날, 자세를 낮추며 코어에 힘을 주고 팔다리에 힘을 빼는 것을 배웠다. 그랬더니 훨씬 수월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라이딩을 무섭고 힘들어하던 내가 막상 사이클 경기에서 추월하면서 희열까지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의 반복적인 연습이 빛을 발했다.
다치지 않고 수영과 라이딩을 마치니, 마지막 종목인 달리기는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가벼웠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무와 잔디, 갖가지 푸른 빛의 바다를 눈으로 담으며 뛰었다. 하와이의 대자연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 경기가 끝나기 전엔 체력 이외에 무엇을 얻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 인생에 있어 철인3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종 피니쉬 지점을 통과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끝까지 해냈기에 나와 나의 삶을 새롭게 얻었기 때문이다. 부상과 감기 등 여러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내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두렵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연습하고 내 몸을 통해 하나씩 모든 과정을 통과해 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그간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감동되었다. 음악과 운동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잘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비난했던 내가 ‘그저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를 인정했다. 내 인생에 없었던 일이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야 나를 인정했던 혹독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가 자신에게 인정과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성장곡선을 그리는 나의 삶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야자수나무도 그 긴 팔을 부드럽게 흔들며 나의 삶을 환영했다.

나의 삶엔 음악 따로, 운동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하는 행위이기에 하나의 트랙 안에 존재한다. 하와이를 다녀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가락 부상으로 3개월 반 연습을 쉬고 다시 하려니, 음악이 거대한 파도처럼 엄습해와 건반 앞에서 머뭇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악기에 대한 두려움에 연습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 한낮 피아노학원 가기 싫어서 떼쓰는 아이처럼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피아노 앞에 붙어 건반을 터치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운동을 통해 강도와 빈도 높게 훈련한 것이 몸에 밴 덕분이다. 다음 날 연습은 훨씬 수월하게 지나갔고 연습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반복은 뇌를 이기지 못한다. 반복한다고 천재가 되지는 않지만, 천재들은 수없이 반복했다. 반복을 통한 일상의 힘은 내 몸으로도 드러나고, 무대 위에서도 보여질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먼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철인3종경기는 한 선수가 세 가지 종목, 야외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실시하는 경기로 수영에서 마라톤까지 쉼 없이 치르는 극기와 초지구력 운동이다. 1978년 하와이에서 서바이벌 테스트를 철인3종 경기로 만들어 유명한 국제 스포츠 경기가 되었다. 경기 사이즈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아이언맨 코스는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이고, 올림픽 코스는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이고, 스프린트 코스는 수영 750m, 사이클 20km, 마라톤 5km 등이 있다. 나는 스프린트 코스를 등록했고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철인3종경기는 매년 5월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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