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 , '팬텀 스레드'
[시네마 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 , '팬텀 스레드'
  • 미용회보
  • 승인 2018.04.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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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다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대의 모양 무언지 알 수 없네/내 곁엔 온통 그대뿐/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 인용된 페르시아 시인 하킴 사나이의 시

사랑은 형태가 없다. 그래서 사랑은 물의 형태이자 보이지 않는 실과 같다. 완성을 지향하지만 어떤 형태로 머물지 알 수 없다. 풀린 실밥처럼, 관계는 한순간에 어긋나기도 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팬텀 스레드>는 은유적인 제목처럼 사랑의 관계를 유려하게 다루고 있다.

사랑의 모양이라는 한국어 부제를 달고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제목처럼 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물이 스며드는 장소에 따라 물의 형태가 결정되듯이, 사랑의 형태도 경계를 허물 때 이뤄지는 이치를 담아냈다. 반면 <팬텀 스레드>는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실’, 이면에 감춰진 관계의 얽힘에 주목한다. 몸에 맞는 완벽한 옷으로도 감출 수 없는 표정처럼, 완성될 수 없는 사랑과 관계의 균열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사랑은 물의 형태’, 다름을 인정할 때 시작

 

 

<셰이프 오브 워터>는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소 냉전시대가 배경이다. 목소리를 잃은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아마존에서 끌려온 괴생명체(더그 존스)의 사랑을 그렸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엘라이자는 어느 날 비밀실험실 수조에 갇힌 괴생명체를 발견하고 그와 소통이 가능한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의 감정을 느낀 엘라이자는 센터의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에게 고통받던 그를 탈출시키려 한다.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어드 젠킨스)와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호프스 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 등이 힘을 합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로맨틱 판타지의 외피를 쓰고 있다. <미녀와 야수>, <킹콩> 등의 서사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르다. 저주받은 왕자라거나 인간과의 대결을 그린 이들 영화와 달리 사랑의 본질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다.

물처럼 사랑의 형태를 정의할 수 없지만 스며드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의 인정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부에 있는 이들이다. 주인공 엘라이자는 청소부이자 목소리를 잃은 이다. 동료로 등장하는 이들도 그렇다. 청소부이거나 가난한 화가이다. 괴생명체 탈출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호프스 테틀러 박사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사람(소련 스파이)이다.

목소리를 잃었거나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들, 자신의 정체성을 감춰야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양서류 인간 혹은 괴생명체(creature)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다. 모두 주류사회에서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대상이다. 감독이 이 영화의 시대배경을 1960년대로 설정한 것도 당시 흑인 인권운동과 미소 냉전 등 이항 대립적 대결이 팽배한 시대의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게 한다. 흑인과 백인, 소련인과 미국인, 여자와 남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청소부와 연구원, 비인간과 인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등 이항 대립 코드를 통해 다름을 드러낸다. 이들 다름을 지닌 이들이 힘을 합쳐 괴생명체를 탈출시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물은 경계가 없는, 다름을 구별하지 없는 상징으로 읽힌다. 또 물은 사랑의 형태이자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에서 온 양서류 인간과 엘라이자를 이어주는 것도 물이다. 엘라이자는 양서류 인간을 탈출시켜 자신의 집 욕조에 살게 한다. 욕조의 문틈을 막아 물로 채운 이후 나누는 둘의 사랑, ‘물의 에로스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압도적 상징이다. 물은 방 안을 가득 채우며 아래층(극장)으로, 외부로 스며든다. 각자의 방울이 마침내 하나의 물을 이루듯, 경계가 허물어진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어떤 것이 형태를 이루어 사랑이 될지 알지 못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관계의 균열, 불가능한 사랑의 완성

 

 

 

<팬텀 스레드>1950년대 왕실과 상류층 맞춤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과 우연히 마주친 웨이트리스 알마(비키 크리엡스)의 사랑 이야기다. 레이놀즈는 첫눈에 반한 알마를 피팅 모델로 발탁, 자신의 의상실로 데려온다. 이후 둘의 관계의 얽힘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얼개다.

레이놀즈는 완벽주의자다. 옷을 재단하듯 자신만의 규칙대로 통제된 삶을 산다. 그는 옷을 입히는 사람, 완성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도 완성하려 한다. 그 완성은 자신의 통제 아래 놓여있는 것을 말한다. 완성에서 어긋나면, 장인들이 그러하듯 내쳐진다. 그런 그의 삶에 알마는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다. 알마도 이전의 수많은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수차례 내쳐질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이전의 그녀들과 달리 알마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주체적 여성이다.

레이놀즈는 완벽한 듯 보이지만, 어렸을 때 재혼해 떠난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 남아 있다. 이것은 그의 결혼을 방해하는 요소기도 하다. 알마와의 만남도 어머니와 유사한 이상형의 발견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첫 만남 후 데려간 장소도 어머니와 살았던 시골집이며 첫 대화도 엄마가 주제다. 그만큼 과거에 고착된 인물이다. 어쩌면 과거의 경험을 저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문받은 맞춤복 옷 솔기에 나는 저주받지 않았다는 문구를 감춰놓은 것도 그런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주문일 수 있다.

알마는 그런 그에게 일정한 탈출구로 역할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레이놀즈는 다시 자기의 세계로 돌아가며, 알마를 의상실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만 대한다. 알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레이놀즈를 돌려세운다. 그것은 레이놀즈를 약하게 만들며(독버섯을 사용한다) 자신에게 기대게 하는 방식이다.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처럼.

이 영화에는 알마가 누군가에게 레이놀즈와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 초반부부터 중간 중간 들어 있다. 중반부를 지나면 설명을 듣는 주체가 의사란 것이 드러난다. 그만큼 이들의 관계는 병리학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알마는 이 대화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를 알아가야 해요라고 말한다. 관계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레이놀즈는 사랑까지도 완성하려 하지만, 정작 사랑을 자기 방식대로 완성한(하려는) 이는 오히려 알마로 보인다. 어머니의 유령을 대체하는 것도 알마란 점에서다(반대로 레이놀즈는 어머니의 저주에서 벗어났을 수 있다).

<팬텀 스레드>는 보이지 않는 실, 귀신같은 솜씨 등의 뜻을 지녔지만 이 영화에서는 중의적으로 활용됐다. 맞춤복 디자이너를 말하는 의미와 함께 관계를 직조하는 숨겨진 욕망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다. 이들 관계는 배우들의 표정(두 배우의 표정은 대부분 클로즈업으로 표현됐다)으로 잘 드러난다. 자신의 규칙에 균열이 생길 때 나타나는 레이놀즈의 표정(입가의 떨림)이나 무심한 듯 환한 미소를 짓는 알마의 표정만으로도 영화가 꽉 채워질 정도다. 이 영화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으로 알려져 있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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