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봄날, 우리 모두의 상실감에 관하여
[콘텐츠 큐레이션] 봄날, 우리 모두의 상실감에 관하여
  • 미용회보
  • 승인 2018.04.0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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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 ④

 

스스로 봄 길이 되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지난주 ‘책에 관한 나의 이야기’로 필자가 진행한 강연에 참석한 수강생이 필자의 강연을 들으며 겹쳐졌다는 정호승 시인의 <봄 길>이란 시다. 강연자에 대해 지금껏 그리 걸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한없이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갈 것이란 소회를 글로 남겨놓은 것이다.

그렇구나. 누군가에게 나는 이미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부끄러움과 함께 동시에 의도하지 않게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자기검열의 시선이 밀려오기도 했다. 늘 그래왔던 것 같지만 이 봄은 봄옷을 꺼낼 틈도 없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봄이 당도했다. 내가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든 안 되든 봄은 그렇게 나에게로 당도한다.

계절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마무리된다고 하는 계절의 순서는 오로지 인간의 편리 때문에 기준을 잡아놓은 의미 없는 잣대일 수도 있다. 계절은 상실,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돌아 대자연의 순환으로 그저 그렇게 다시 인간에게 당도하고 한없이 새로고침의 힘이다.

 

사진1) 봄 길

 

모두의 상실감
필자는 지난해 12월 중순, 강연을 진행하며 강연 초반 참석자들에게 퀴즈를 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紙)는 매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데 여러 가지 힌트를 제시하며 ‘2017 올해의 인물’을 강연장에 모인 50여 명의 남녀 성인, 누구도 맞추지 못했다. 12월 6일 올해의 인물은 ‘침묵을 깬 사람들(Silence Breakers)’이다. 이들은 “나도 이렇게 당했다”며 ‘#미투(Me Too)’ 운동에 참여해 유력 인사들의 성폭력을 폭로한 불특정 다수 여성이며, 타임은 이날 NBC방송 프로그램 ‘투데이’와 트위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올해의 인물 선정 사실과 이번 주 발행본 표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2) 타임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던 그때로부터 3개월이 지난 2018년 봄날, 대한민국은 한 검사의 폭로로 촉발되어 한국사회 전체의 이곳저곳을 흔드는 핵폭탄이 됐다. 이제 유치원생들도 ‘#미투(Me Too)’를 알 정도가 되었고 폭로와 논쟁,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한 사람의 피해 진술이 연쇄적으로 다른 사람의 기억과 용기를 끌어냄으로써 혼자서는 오래된 상실감을 꺼내기 어려웠던 개인의 산발적 폭로를 넘어 ‘기억의 연대’를 이루며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꽃피는 이 봄, 대한민국은 공동체적 상실감을 너나없이 몸서리치게 겪으며 이전과는 다른 형태와 감수성으로 성찰하고 꺼내어 공론화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가고자 한다.

 

우리 모두의 필사적 회복(回復)을 바라며
회복. 모르는 단어가 아니지만, 사전을 부러 찾아봤다.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 원래(元來/原來). ‘원래’라는 단어가 짧은 문장에서 두 번이나 사용되며 강조된다. ‘원래’를 이어서 다시 사전에서 찾아봤다. ‘원래’는 ‘본디’와 같은 말. 모르던 단어가 아니지만 새삼 이 단어에 대해 주목성을 갖게 된 것은 연일 쏟아져 나오는 미투(#MeToo)에 휘청거리는 우리 시대의 상실감 때문이다.
삶에서 아무리 상실을 겪지 않겠다고 조심하고 다짐해도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언제든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겪으며 살고 있다.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 찬란한 봄날,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필사적 회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상처가 끔찍할수록 꽁꽁 감추는 일은 위험하다.
억눌린 상처가 인생 전체를 파괴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설사 고통을 다시 겪게 되더라도 한 번은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중

 


 

김도경

스푸파토 대표 Contents Director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전공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프로젝트 기획개발기획&사업관리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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