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레이디 버드
[시네마 리뷰] 레이디 버드
  • 미용회보
  • 승인 2018.04.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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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시네마 리뷰

 

우리 모두의 사춘기, 평범한 그러나 특별한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개의 10대가 받아들이는 세계란 시시하고 지루하다. 그래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며 지금의 현실을 건너뛰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 미완성이다. 나름의 치열함이 있지만 ‘안달’에 가깝다. 어쩌면 그 세계는 ‘뒷문’에 불과할 수도 있고, 그냥 없어져볼까 하는 ‘반항’에 머문 것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한 뼘 정도 성장하며 어른의 세계에 다다른다.
일반적인 성장영화는 특별한 ‘사건’을 겪은 주인공의 성장담이란 공식을 따른다. 사실 특별한 사건은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다. 대개는 소소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어른이 된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미덕도 여기에 있다.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틀을 벗어나 누구나 겪을 법한 소소한 사건들을 이어가며 공감하게끔 유도한다는 점에서다.
또 하나의 미덕은 이미 10대를 지나온 엄마의 시점으로도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10대 소녀의 성장담이기도 하지만 중심 틀은 모녀 관계에서 출발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모녀간의 대화 또는 통화다.

 

 

평범한 소녀의 특별한 ‘나’를 만드는 과정

 

새크라멘토의 카톨릭계 고교 졸업반인 크리스틴은 자신의 이름도, 엄마도, 사는 지역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크리스틴은 ‘레이디 버드’란 이름을 짓고,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그녀는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가고자 한다.
영화는 이렇다할만한 사건 없이 10대 소녀가 부모와 고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이야기로 짜여 있다. 엄마와의 갈등이나 친구와의 우정, 이성과의 사랑 등이 짜임새 있게 뒤를 받친다.
크리스틴은 평범하지만 특별해지길 원한다. 크리스틴 대신 스스로 ‘레이디 버드’란 이름을 지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수학 실력이 떨어짐에도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길 바라며, 당선 가능성이 없는 학생회장 선거에도 출마한다. 학내 뮤지컬 오디션을 통과했지만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다. 특별해지려는 노력은 동부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하는 욕망은 이름에 담겨 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열어가는 행위이다. 주어진 세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레이디 버드’란 이름에 담긴 의미는 그만큼 함축적이다. 새처럼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가고자 하는 욕망, 부모와 고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다. 누구나 가졌음직한 10대 시절의 특별함이다.
영화는 그 특별함을 경유해 도달한 뉴욕에서 멈춘다. 주인공이 뉴욕으로 떠나는 순간 멈춘 것이 아니라 뉴욕에 도착한 이후의 에피소드를 그리며 마무리된다. 보통의 성장영화가 희망을 안고 떠나는 장면에서 마무리되는 것과 다른 지점이다. 어쩌면 영화는 여기서 다시 출발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희망이 실망으로 변하는 과정이며, 삶은 지속되는 과정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자신이 다른 이름으로 특별하게 불리길 원했던 주인공은 본래 이름을 되찾는다. 그리고 하찮고 별 볼일 없는 동네라 여긴 고향 새크라멘토가 다시 소환된다. 뉴욕 술자리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 버드 대신 크리스틴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부르면서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지”라고 덧붙인다.
숙취에서 깨어난 아침, 그녀는 불현듯 성당을 찾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자동응답기에 남긴다. 영화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남긴 후 뉴욕 거리에 멈춰선 크리스틴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이름의 숙명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한꺼번에 깨달은 걸까? 아마도 삶은 지극히 실망스럽고, 결국 세계란 평범함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프닝의 인용구와 이어진다. 영화의 오프닝엔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말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봐야 한다”라는 새크라멘토 출신 저널리스트 조앤 디디언의 말이 나온다. 이 인용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이해가 된다. 그만큼 새크라멘토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도시지만 특별함을 지닐 수도 있다는 메시지이다.

 

 

 

먼저 소녀의 길을 갔던 엄마의 서사에도 공감

새크라멘토의 특별함은 특히 달리는 차창을 통해 아름답게 드러난다. 영화 초반부와 중반부 엄마와 딸이 같은 도로를 운전하는 쇼트에서 나타난다. 같은 길을 먼저 걸었을 엄마의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엄마는 뉴욕으로 떠난 딸과 달리 떠나지 못하고 새크라멘토에 25년째 눌러 살고 있다. 어쩌면 떠나지 못한 크리스틴(실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엄마 이름이 크리스틴이다)일 수도 있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남편이 실직하고 간호사로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의 삶의 무게도 곳곳에 배어 있다. 딸에게 등록금이 저렴한 가까운 시립대를 권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모녀의 대화는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모녀의 대화로 영화가 시작하는 것이 이를 요약한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오디오북을 들으며 두 모녀가 감동하는 도입부 장면이다.
이후 모녀는 티격태격 서로 상처가 될 말을 주고받는다. “엄마가 나를 좀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좋아하냐고.” “난 항상 네가 최고의 모습이면 좋겠어.” “지금이 내 최고의 순간이라면?” 이런 식이다.
또 다른 대화 장면에서는 극으로 치닫는다. “헛돈 쓰고 다니는 너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얼만줄이나 알아?” “얼만데? 돈 많이 벌면 갚고 인연 끊어버릴 테니까!” “넌 어차피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직업 못 가져.”
대개의 모녀가 그렇듯 말이 조금 앞섰을 뿐, 서로 애틋한 마음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미세한 모녀 관계는 영화 곳곳에 배치돼 있다. 딸이 뉴욕으로 떠날 때의 장면이 이를 압축해 보여준다. 엄마 몰래 뉴욕 쪽 대학에 원서를 넣고 합격한 딸과 다툰 이후의 장면이다. 공항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딸을 떠나보낸 후, 엄마는 공항 주변을 맴돌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환송대로 달려간다. 감췄던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울컥하게 만든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가제는 ‘엄마와 딸’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모녀관계가 핵심이었다는 말이다. 소녀들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 성장하며, 어느 순간 엄마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레이디 버드>는 세상 모든 소녀들을 위한 영화이자, 엄마들을 위로하는 영화기도 하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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