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애도에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콘텐츠 큐레이션] 애도에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 미용회보
  • 승인 2018.04.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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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스쳐지나가도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파도가 지나가도 바다가 흔들리는데
하물며 당신이 지나갔는데
나, 흔들리지 않고 어찌 견디겠습니까


/ 한 사람을 잊는다는 건_김종원 / 중략

 


애도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주는 시선이 필요하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 머리카락이 흔들리는데 소중한 한 사람이 지나가는데 어찌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그렇다. 수없이 흔들리며 성장하고 깊어지는 것이리라.
‘세월이 지나면 잊힌다’ ‘잊어야 산다’ ‘죽은 사람은 잊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게 흔한 위로의 말이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틀렸다. 상실의 대상과 상실감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가 애도라는 힘겨운 감정 노동을 통해서 그 강한 억압감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애도는 어쩌면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상실된 소중한 관계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사랑한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다양한 제의와 애도를 수행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곧 애도의 역사라는 말에 절대 동의한다. 그렇다면 소중한 이를 보내고 애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애도를 장례식장에서 제의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 보는 것은 너무 짧고 제한적이다.

애도에는 단계가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의견들이 있지만, 사람마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는 것처럼 그 삶에 맞는 각자의 애도의 방식과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몇 개월 만에 압축하여 치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애도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애도는 격한 슬픔 그 자체에 머무는 빨리 벗어나는 것이 옳은 감정이 아니라 슬픔을 자신 안에서 들여다보고 관계를 되짚어 애도하는 사람의 삶 속에서 겹쳐져 재구성되는 감정 노동이다. 즉, 일상 안에서 자신 죽음과 연계하여 앞으로의 삶을 가능한 한 충만하게 가꾸어 나가는 매우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사색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애도의 시간, 가능한 충분히, 천천히 애도하라

종교 혹은 저마다의 주관에 따라서 의식은 다를 수 있겠지만 동양에서는 보편적으로 ‘49일’을 죽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 기간으로 삼는다. 한국문화에서 익숙한 ‘49재’에 기인하는데 49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로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절충된 것이다.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제(齋)를 올려 죽은 이가 49일 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그래서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부르며, 이 49일간을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生)이 결정된다고 믿는 종교의식에 기반을 둔다.

유대교도 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땅속에 묻고 나면, 쉬바(shiva)라고 하는 7일간의 깊은 애도 기간을 보낸다. 쉬바가 끝나면 일상으로 생활이 어느 정도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떠난 배우자에 대한 종교적 애도가 진정으로 끝나는 날은 불교에서의 49재와 비슷한 30일 애도기간인 쉘로심sheloshim이 끝나는 날이라고 한다. 인종과 종교를 떠나 저마다의 문화마다 가까운 이를 잃은 슬픔에 대해 일정 기간 애도할 수 있는 심리적 시간을 부여하는 문화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미지 : 픽사베이]

 

49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감동적이고 인상 깊은 일본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49재 하면 ‘상복’ ‘하얀 머리핀’ ‘향’ ‘제사’ ‘눈물’이란 키워드가 떠올랐다면 이부키 유키의 『49일의 레시피』를 읽으며 ‘유쾌함’ ‘맛있는 음식’ ‘기억하고 싶음’ ‘따뜻함’ ‘행복감’이라는 키워드로 대체되었다. 이 책은 필자 또한 남동생을 잃고 난 후 애도의 과정을 비탄을 넘어 애도하는 힘을 갖고 직면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을 실어준 매우 소중한 스토리였기에 뷰티엠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한 가족이 재생하기까지의 49일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일본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로 뒤늦게 만난 새 가족을 위해 평생 자신의 자식을 낳지 않은 채, 인생의 마디마디를 조용하면서도 열심히 살다 간 계모의 죽음, 그리고 그녀가 남긴 요리 레시피를 계기로 가족들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세상을 떠난 주인공인 오토미는 자신의 49재에 자기가 남긴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이 크게 연회를 열어 즐겁고 맛있게 먹고 만나기를 바란다.

49재에 불경도, 향도 필요 없고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이 만나 크게 연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오토미의 마지막 바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내가 없더라도 당신이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죽은 계모가 남긴 따뜻하고 예쁜 레시피 카드가 가족의 삶을 치유하는 이 소설은 ‘죽음과 49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전혀 어둡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책을 가슴에 품게 했다.

상실의 슬픔은 대단히 사적인 경험이며 사적인 슬픔이기에 사적인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을 또한 상대를 기다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슬픔에는 끝이 없고, 사랑에도 끝이 없기 때문임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

 

 


 

 

김도경 

스푸파토 대표 Contents Director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전공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프로젝트 기획개발기획&사업관리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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