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 손 때 묻은 것들
생활수필 - 손 때 묻은 것들
  • 미용회보
  • 승인 2018.07.30 17: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때 묻은 것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떤 사람은 구질구질하다고 또 어떤 사람은 알뜰하다고 한다. ‘버려야 잘 산다’는 말도 듣지만 어쨌든 난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니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보다. 정리정돈이 안될 땐 ‘다 버려야지~’ 하면서도 ‘언젠간 필요 할 텐데.......’ 라는 생각이 이내 차오르니 고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언제 사용하게 될지 기약도 없으면서 바느질할 때 생긴 조각 원단부터 엄마가 신혼여행 때 입으셨던 옷에서 떼어낸 빈티지 단추들, 이제는 보기도 어려운 오래된 형광등 전등갓까지 내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니 펼쳐놓으면 아마 오만가지도 넘을 것이다. 가구며 소품도 엔틱을 좋아하여 엔틱샵을 기웃 기웃 기웃! 나는 왜 이렇게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건 애초에 싫다. 네모 반듯! 모던함도 내 취향이 아니다. 조금 가볍게 살 필요가 있겠다 싶어 미니멀리즘의 유행에 편승 해 볼까 싶었지만 난 아무래도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너무 많은 것도 답답해 싫지만 너무 여백이 많은 것도 춥게 느껴지는 난 맥시멀리즘을 지향한다.

 

 

 

할머니의 물건


큰엄마는 할머니께 물려받은 것이 많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말이다. 그중에서 제일 갖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할머니의 손재봉틀이다. 나무로 된 뚜껑이 있는 그것은 지금까지 눈여겨 본 것들 중 가장 예쁘다. 우리 할머니를 닮아서일까? 그 재봉틀이 갖고 싶어 큰엄마를 엄청 졸랐지만 “나중에~” 란 말씀만 반복하셔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재봉틀을 가져가라신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누군가에겐 그저 낡은 고물덩어리지만 내겐 귀한 보물이다. 두근두근!


“큰엄마! 재봉틀 어디 있어요?” 천으로 만든 덮개에 씌어있던 그것은 손볼 곳이 많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만져보고 돌려보고 정말 감개무량하다.
어릴 적 할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아들선호사상이 크셨던 분이라 할머니의 情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재봉틀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며 할머니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들들들들~~~ 들들들들‘
‘사람은 가고 물건만 남았구나....... ’

그러고 보니 내겐 할머니께 직접 받은 미니 소반 하나가 있다. 쟁반보다도 작아 귀한 손님이 오시면 1인 찻상으로 내놓는 상인데 초등학교 시절 어디서 그런 용기를 낸 건지
“할머니 이건 저 주세요~” 했더니
“그래! 그건 내가 오래전에 500원주고 산거다. 잘 간직해라~”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생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발견하신 큰엄마는 그릇장에서 그릇들을 꺼내시며 “다 버릴 거야~” 말씀하신다. 난 눈과 손을 빨리 움직이며 비록 짝이 없지만 오래된 듯 한 그릇들을 챙기고서야  문을 나서는데 쓰레기로 보이는 비닐봉투 속으로 시선이 멈춰 선다. “앗! 저거~~~ 저거 제가 가져가도 되요?” 부리나케 봉투를 풀어헤치고 꺼내보니 곱게 수 놓여진 ‘자수 보’다. 얼룩덜룩 지저분해진 터라 그걸 가져가서 뭐하냐는 말씀이 뒤따랐지만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일까?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내가 회생시켜주겠노라’ 다짐하고는 신이 나서 집으로 가져왔다. 버려질 위기에 처해있던 낡은 자수 보부터 살려야겠다 싶어 뜨거운 물에 과탄산소다를 잔뜩 풀어 담가 놓고는 다음날 세탁했더니 움하하하! 이불만한 새하얀 광목에 빈티지한 색실이 곱게 드러났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봐도 그 예쁨에 반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좋아 큰엄마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설명하니 여간 좋아하시는 게 아니다. 당신이 처녀 적에 조금씩 수놓은 것을 딸과 며느리는 관심도 없는데 조카인 내가 버려지지 않게 잘 써준다니 고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처럼 오래된 물건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랬다. 물건만 남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적어도 한번은 선택받았던 것들에겐 이야기가 담겨 역사가 된다.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친구는 갖고 있던 물건을 다 버리고 새 물건으로 집안을 채운다. 깨끗해서 좋기는 하지만 어째... 과거 없이 현재만 있는 것 같아 헛헛함이 느껴졌다.
손때 묻은 물건들을 닦고 정리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 아뇨, 당신은 잃은 게 아니었어요.
난 바로 여기 있었어요.
또 어쨌든 당신은 날 사랑했어요.
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예요, 여보.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죠.
가버린 사람의 미소를 볼 수 없고, 그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 줄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질 수도 없고, 같이 빙빙 돌며 춤을 출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런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게 환해지죠. 추억 말예요.
추억이 동반자가 되는 거예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꾸고 품어주고,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어요."

에디의 천국 "사랑"중에서...

 


 

 

김시연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 공원연출 및 상품 기획
기업 문화 상품 기획(포스코 外 다수)
웹사이트 디자인(주한 르완다 대사관 外 다수)
엄마의 책장 기록집 <오늘은 고백하기 좋은날> 출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123 미용회관 5층
  • 대표전화 : 02-585-3351~3
  • 팩스 : 02-588-5012, 525-1637
  • 명칭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 제호 : BeautyM (미용회보)
  •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한미용사회중앙회.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