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허스토리’, ‘거룩한 분노’
[시네마 리뷰] ‘허스토리’, ‘거룩한 분노’
  • 미용회보
  • 승인 2018.08.0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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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스스로 만드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춰진 사실, 혹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허스토리(HERstory)라 불러도 좋을까? 그동안의 역사가 승자의 기록, 그것도 승리한 남성들의 이야기(HIStory)였다는 점에서다. 여성들의 역사는 그만큼 억압과 착취에 균열을 내온, 희생의 이야기다. 남성과 여성을 나누지 않고 온전히 ‘우리’들의 이야기로, 동등한 권리를 찾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영화 <허스토리>와 <거룩한 분노>는 거기서 출발한다. 감춰졌거나 외면당한 이야기의 복원이다.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98년까지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이어진 ‘부산 종군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관부재판)’이라는 실화를 다룬다. <거룩한 분노>는 1971년 스위스 여성들의 참정권 쟁취 투쟁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두 영화 모두 사건의 중심을 향하면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 와중에 드러나는 남성들의 비아냥거림과 노골적인 반감을 딛고, 여성 스스로 공감하며 연대에 나선 끝에 결국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다.

 

 

 

‘허스토리’, 증언의 힘으로 공감대 형성

<허스토리>는 1992년 시작된 관부재판이 이뤄지는 과정부터 98년 1심 판결이 내려지는 시기를 다룬다. 관부재판은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연 이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촉발됐다. 같은 해 9월 정신대 신고전화가 전국적으로 개설됐고,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에서도 부산지역 신고전화를 열었다. 영화 <허스토리>는 당시 부산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부산 신고 전화로 8명이 신고했으며, 그중 4명이 관부 재판에 참여했다. 이어 1993년 12월 5명, 1994년 3월 1명의 원고가 추가로 소장을 제출해 총 10명의 원고단이 구성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인, 근로정신대 피해자 7인이었다.


1992년 시작된 관부재판은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시절 피해자들이 전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첫 소송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2년 12월25일 부산시 등에 거주하는 종군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10명이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 제소하며 시작됐다. 98년 1심 판결까지 6년간 20여 차례의 변론이 이어졌고 결국 일본 법정이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일부 승소했다. 종군위안부 관련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 소송은 일본 정부의 항소로 열린 2심(히로시마 고등재판소)에서 패소했고, 원고측 상고로 이어진 대법원 판결(2003년)에서도 져 최종 패소했다.


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을 만큼 의미있는 결과를 이룬 재판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 속에서 잊혀져왔다.
영화 <허스토리>는 이처럼 잊혀진 이야기를 복원한다.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의 복원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나온 일본군 위안부 소재 영화와 접근 방법이 다르다. 과거의 상처를 전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오로지 피해자들의 증언과 표정만으로도 공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영화 <허스토리>에는 플래시백이 등장하지 않는다. 상처와 비극을 재현하는 것보다 피해 할머니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피해 경험을 고백하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연대가 이뤄진다.
무엇보다 핵심 역할을 하는 문정숙 사장(김희애)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문 사장은 부하직원의 잘못(기생관광)으로 영업정지를 당하자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정신대 피해자 신고센터를 임시로운영한다. 문 사장은 TV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이 나올 때, 딸에게 공부하지 않으면 저 할머니처럼 된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신고센터도 말 그대로 임시방편이었다. 그러던 문 사장은 할머니들의 피해 접수와 사연을 접하면서 함께 분노하며 그동안 자신만 알고 살아온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더구나 그의 집에서 수십년간 일해온 배정길(김혜숙)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돕기에 이른다. 본격적으로 재판이 시작되면서 배정길(김혜숙)을 비롯한 박순녀(예수정), 서귀순(문숙), 이옥주(이용녀) 등의 사연이 더해지며 ‘함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거룩한 분노’, 변화 이끈 여성들의 연대

 

영화 <거룩한 분노> 1971년 스위스 작은 마을에서 실제 일어난 여성 참정권 투쟁 과정을 다룬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다. 스위스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해가 1971년이다. 그리고 이어진 투쟁 끝에 1990년 아펜첼 주를 마지막으로 스위스 전역에 여성 참정권이 인정됐다.
영화 <거룩한 분노>는 이같은 변화를 이끌어낸 평범한 여성에 초점을 맞췄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사회 변혁의 물결이 거세게 일던 때다. 프랑스 68혁명으로 촉발된 변혁의 물결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저마다 평등, 자유, 평화를 외쳤다.
영화 <거룩한 분노>는 이같은 변화의 물결을 오프닝 다큐멘터리 필름을 통해 알리면서 시작한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제니스 조플린의 공연부터 흑인 민권운동, 여성 해방 운동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변혁의 물결을 보여주다 멈춰선 지점은 조용한 스위스의 시골마을이다. 마치 일시정지된 것처럼 평온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다.


무대는 정숙한 아내 노라와 근면한 남편, 그리고 두 명의 아들, 시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는 평온한 가정이다. 그리고 형님네 부부와 딸이 이웃 농장에 살고 있다. 노라는 이른 아침 남편과 아이들의 배웅을 마치고 이웃 형님네 이웃 농장으로 가 일손을 거드는 것이 일과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이 가정의 남자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로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 전통은 이어진다. 평온함은 이같은 질서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노라 입장에서 보면 일상생활 자체가 억압의 증거로 작용한다.


노라는 이같은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직업을 갖고자 하나 남편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조카 한나의 연애를 돕기 위해 취리히 시내로 나가게 되고, 우연히 여성운동가들로부터 여성참정권 투표 소식을 듣고 각종 전단을 받아온다. 집에 돌아와 전단을 읽던 노라는 서서히 변화하고 어느덧 연단에 선다. 나답게 살고 싶다는 자각과 남성과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의식 변화가 일어난 후다. 노라의 변화와 함께 마을 여성들도 하나둘 연대에 나선다.
영화 <거룩한 분노>는 사회변혁이라는 무게에 눌리거나 선동으로 흐르기보다 잔잔하고 유머러스하게 변화의 흐름을 짚는다. 여기에는 여성들만의 공감과 연대라는 따뜻한 정서가 반영돼 있다. 노라의 개인 서사를 바탕으로 한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네 명으로 점차 숨어있던 동료들이 늘어나며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한다. 마을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전면 거부하고 한 공간에 모여 파티를 하고 함께 잠을 청할 때 느껴지는 정서적인 유대감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영화는 노라가 첫 투표하는 장면에서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기분을 만끽하는 클로즈업으로 마무리된다. 동등한 시민의 권리뿐만 아니라 성에 있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주체가 되는 변화를 그린 셈이다. 엔딩크레딧에 등장하는 1969년 실제 스위스 여성들의 호루라기 시위 장면은 이런 변화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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