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이 여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감상하며 애도함
[콘텐츠 큐레이션] 이 여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감상하며 애도함
  • 미용회보
  • 승인 2018.08.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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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⑧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습관적으로 FM 93.1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마침 나오는 웅장한 교향곡이 자동차를 가득 채우네요. 이 곡은 지난 5월 10일 이후로 자주 듣고 있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입니다. 이 곡을 들으려면 무려 72분에 달하는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물론 음악 따로 저 따로 제각각 흘러갈 때도 있지만 아무튼 말이죠. 더위로 차의 창문을 닫았기에 음악 소리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온전히 저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이 됩니다. 저는 목적지를 향한 액셀을 밟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음악에 저를 맡겨봅니다. 이 곡에 연결된 세 명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생애 마지막 곡을 지휘할 수 없었던 베토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자 교향곡 중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함께 편성해 만든 곡입니다. 4악장에서 네 명의 독창자와 혼성합창단이 등장하죠. 4악장에서 중창단과 합창단이 부르는 가사의 텍스트는 독일의 시인 실러가 1785년에 처음 쓴<환희에 붙여서>가 초안이라고 전해집니다. 교향곡 9번에서 베토벤이 사용한 텍스트는 오리지널 버전은 아니지만, 가사에서 전달하고자 한 ‘인간 자신의 힘으로 낙원에 들어선다’라는 본래 의미는 변함이 없다고 해요. 초연은 1824년 5월 7일, 빈의 궁정극장에서 열렸는데, 베토벤은 그날 초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청력 상실로 자신이 작곡한 곡의 지휘봉을 들 수가 없어서 다른 지휘자에게 지휘를 맡겼다는 생애 마지막 교향곡입니다. (1827년 3월 사망)

 

그림1 베토벤

 

Freude(환희)'를 'Freiheit(자유)'로 바꾸어 연주한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작곡가, 피아니스트 주자이면서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제 기준으로 베토벤의 9번 [합창]은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실황 영상을 보고 듣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여러 나라의 연합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했습니다. 이때 이미 폐암 선고를 받았던 번스타인이 지휘봉을 들었죠. 당시 동서 냉전의 종식을 상징하는 의미로 번스타인이 텍스트의 원저자 쉴러의 '환희의 송가' 가사 가운데 'Freude(환희)'를 'Freiheit(자유)'로 바꾸어 연주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더욱 큰 이유는 72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열정적이고 격렬하게 지휘를 하는 그의 몸짓을 볼수록 보고 듣는 저마저도 희열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30여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영상임에도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저 또한 객석에 앉아있는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10월 사망)

 

그림2 레너드 번스타인

 

 

안락사로 떠나기 전 [합창]을 듣고 떠난, 데이비드 구달


지난 5월 10일 이후로 맹렬하게 이 곡을 듣게 한 사람은 데이비드 구달 박사입니다. 66세에 은퇴 후에도 호주로 이주해 100세까지 논문을 발표하고 102세까지 연구를 해온 저명한 생태학자죠. 지난 5월 10일 전 세계 언론에 그가 스위스 바젤에 있는 ‘이터널 스피릿'이라는 기관에서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뉴스가 보도됐습니다. 매년 80여 명이 이곳을 찾는데 대부분 아프거나 고령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며 비용이 많이 들어 구달 박사도 모금을 통해 2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구달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초고령화 사회에서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부여해야 하느냐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안락사(조력자살)를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로 봅니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의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면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있기 때문이겠죠. (2018년 5월 사망)

 

그림3 데이비드 구달

 

나는 이제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다시 한번 내 발로 숲속을 걸어볼 수 있다면
마지막 날을 계획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우울하지도 참담하지도 않다
눈물로 가득한 장례식은 치르지 말아 주세요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증해 주세요
그리고 나를 잊어주세요. 저는 이제 다시 숲속으로 떠납니다.
생을 마칠 기회를 얻게 돼 행복합니다.
노인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도구로 내가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논란을 걷어 내고 ‘품위 있게 죽을 개인의 권리’에 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그의 고민과 결국 선택한 여행에 깊게 공감합니다. 저는 오늘도 그가 주사기의 밸브를 스스로 열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며 200여 년에 걸쳐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세 명의 거장들을 동시에 애도합니다.

 

 

 


 


김도경

(주)인포디렉터스 콘텐츠디렉터,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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