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아사코
[시네마 리뷰] 아사코
  • 미용회보
  • 승인 2019.03.2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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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얼굴, 다른 사람으로 다가온 사랑”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바다에 도달했으나, 바다는 보이지 않고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길게 늘어선 방파제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려면 방파제 위로 올라서야 한다. 한명은 바다를 보러 왔지만 바다를 보지 않는다. 다른 한명은 엉겁결에 따라 왔지만 바다를 보고야 만다. 영화 <아사코>에서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은 방파제를 사이에 놓고 이뤄진다.
이 선택이 이뤄지기까지는 영화 시작 후 8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나머지 30여분은 달라진 표정과 응시로 나아간다. 자신만의 시선을 찾기까지의 과정이다. 영화가 다른 결을 갖게 되는 지점이다. 후반부의 도약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순정 멜로 영화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사라진(혹은 헤어진)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큰 서사 줄기란 점에서다.
오사카의 대학생 아사코는 사진전에서 자유분방한 바쿠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쿠는 신발을 사러 간다고 말한 후 사라진다. 2년 후, 도쿄로 옮긴 아사코는 그곳에서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만나게 된다. 사케 회사에서 일하는 료헤이는 외모만 똑같을 뿐 바쿠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에 거리를 둔다. 료헤이는 적극적으로 아사코에게 다가가고 결국 아사코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5년이 흐른 후,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 둘 사이에 불현듯 바쿠가 나타난다.

 

 

‘재난’같은 사랑, 관계의 균열

영화 <아사코>는 후반부 결정적인 선택에 이르는 과정을 정교하게 구조화하고 있다. 그것은 유사한 상황의 반복을 통해서다. 바쿠를 처음 만난 곳은 일본 사진작가 고쵸 시게오의 오사카 사진전이다. 료헤이와 관계를 이어가는 계기를 만든 주요 장소도 같은 사진작가의 도쿄 사진전에서다. 아사코는 두 번의 사진전에서 똑같이 쌍둥이 자매 사진에 오래 머문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쌍둥이 자매 사진의 유사성은 아사코가 맞닥뜨리는 반복되는 상황과 현실을 응시하게 되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사진전 타이틀도 ‘자아와 타자(Self and Others)’로 상징적이다.
아사코는 차 안에서 잠들었다 깨어난 후 “고속도로에서 내려왔어?”라고 바쿠와 료헤이 두 사람 모두에게 물은 적이 있다. 료헤이와는 센다이 재해지역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바쿠와는 바쿠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향하는 도중 센다이 바닷가 진입 무렵에서다. 이 둘의 중심에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놓여 있다. 아사코가 료헤이의 마음을 받아들인 계기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날이다. 동일본 대지진은 단순히 서사를 뒷받침하는 배경보다 더 깊이 스며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그동안 획정됐다고 생각했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알 수 있게 했다. 영화 <아사코>는 이를 통해 사랑의 불분명한 경계와 관계의 균열,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일본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지를 주고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발코니나 강둑, 방파제 같은 경계 위에 서 있거나 걷고 달린다. 지진 같은 흔들림에 주저앉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정서가 깔려 있다. 기대에 어긋나는 선택과 변심도 그런 경계 위에서 이뤄진다.
수동적이던 아사코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 순간은 두 번이다. 사라진 바쿠가 나타나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따라나선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센다이 바닷가 방파제 앞에서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이다(영화 <아사코>의 영어 제목은 ‘아사코 I&II’다. 이 선택에 따라 아사코 I, II가 구분될 것이다.).
첫 번째 선택은 운명 같은 사랑의 기대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던 첫사랑의 기억의 확인일 수 있다. 아사코는 이 선택에 앞서 자신만의 이별인사를 한 적이 있다. 직접 조우하기 전 유명모델이 된 바쿠의 존재를 알고 난 후다. 오사카로 발령받은 료헤이와 결혼을 약속한 이후의 일이기도 하다. 이 이별의식은 바쿠가 사라졌을 때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온 행동이지만, 한편으로 다시 찾아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선택은 바쿠를 선택한 것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바쿠와 홋카이도를 향하는 길에 아사코는 료헤이를 만나 행복하게 지내온 시절이 꿈같았다고 얘기한다. 바쿠는 오로라를 봤고, 하늘에 펼쳐진 오로라가 마치 바다 같았다고 말한다. 이 둘의 대화는 센다이 바닷가에서 멈춘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바쿠의 말에 아사코가 더 이상 가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방파제(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워졌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센다이 재해지역 봉사활동을 다니던 아사코는 방파제 너머 바다가 있는 것을 안다. 바쿠는 이국의 하늘을 보고 바다 같다고 한 사람이다. 여기서 아사코는 료헤이와 지냈던 것이 꿈같았다고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 놀랐을 것이다. 아사코는 바쿠와 헤어진 후 방파제 위로 올라가 바다를 본다. 이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아사코의 정면 클로즈업이 나온다. 현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응시하게 됐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리고 방파제를 따라 홀로 걷는다.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어쩌면 바쿠는 아사코의 꿈 또는 환영일지도 모른다(영화 <아사코>의 일본 제목은 ‘잠들었을 때나 깨어있을 때나’이다). 아사코와의 만남이나 오토바이 사고, 재회 장면, 헤어짐 등에서 불쑥 들어왔다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아사코와 료헤이의 만남이 쌓여가는 과정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료헤이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 이후 아사코가 돌아가는 과정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보다 어려운 두 번째 선택이 주는 비중이다. 아사코는 왔던 곳까지 바래다주겠다는 바쿠의 제안을 물리치고 홀로 센다이 바닷가에서 오사카의 료헤이에게 간다. 센다이 봉사활동에서 인연을 맺은 지역 노인에게 차비를 빌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됐다.
결혼까지 약속한 아사코가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떠나는 것을 봐야 했던 료헤이에게 그 사태는 재난이다. 다시 돌아온 아사코를 쉽게 용서할리도 없다. 료헤이는 용서를 구하는 아사코를 뿌리치고 아사코는 절박하게 매달린다. 달아나는 료헤이를 빗속에서 필사적으로 쫓는 장면은 압권이다. 쓰던 우산을 집어던지고 달리는 순간, 카메라는 부감으로 빠지며 원거리로 길게 보여준다. 달리는 그들 외에 모든 것이 멈춘 듯(빗소리까지) 고요하지만 역동적이며 슬픈 정서를 배가한다.
료헤이는 가까스로 아사코를 받아들인다. “난 아마 평생 널 못 믿을 거야.” “알고 있어.”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집 앞을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료헤이는 빗물로 불어난 강을 더럽다고 말한다. 아사코는 그래도 아름답다고 대꾸한다. 과거의 기억에 묶여 있던 아사코는 이제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앞을 바라보게 됐다. 료헤이도 신뢰가 부서진 상황을 겨우 받아들였다. 이들이 같은 방향에서 강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같이 가야 한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재난’ 이후의 시선이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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