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그러지 말자.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콘텐츠 큐레이션] 그러지 말자.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 미용회보
  • 승인 2019.08.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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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 ⑳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정현종

 

일생에 통해 반복되는 일, 만남과 헤어짐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 방문객. 시를 쓴 시인은 말합니다. 한 사람의 삶 속으로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 그 자체뿐만 아니라 오고 있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담은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내게 오는 것이라고 말이죠.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면 어마 무시한 일입니다. 어떤 형태와 무게로든 일방적이지 않고 밀접하게 상호적이고, 관계의 밀도감이 깊어질수록 서로에게로 향하는 기쁨과 희망, 상실과 슬픔은 함께 깊어집니다.

사람이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경험하는 일이 바로 만남과 헤어짐입니다. 한 생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죠. 누가 알겠습니까. 허나, 그 횟수가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탄생의 순간부터 낯선 타자와의 만남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문학예술 작품에서 이별이 주는 고통이 삶을 감내할 수 없을 때 어떤 이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우리 곁에도 이별 후에 모든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우울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슬픔과 상실을 통제하고 싶어도 계획대로 되지 않음 또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심장이 갈라지는 듯한 슬픔과 고통에 대해 너무 쉽게 가볍게 말하거나 비난할 때 이차적 고통으로 더 괴로워했던 경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겁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얼마 전 온라인상의 글을 읽으며 불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쓴이는 개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글이 조회 수가 1만 번이 넘은 것을 기념한다며 대형 포털의 유명 연재 플랫폼으로 옮겨와 내용을 추가 보강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용은 최근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 유명 톱스타 커플의 성격유형을 에니어그램(Enneagram 사람을 9가지 성격으로 분류하는 성격 유형 지표이자 인간 이해의 틀. 희랍어에서 9를 뜻하는 ennear와 점, 선, 도형을 뜻하는 grammos의 합성어로, 원래 '9개의 점이 있는 도형'이라는 의미)으로 분석한 글이었습니다.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련 보도와 결혼 당시 예전 인터뷰 부분을 발췌해 이별하는 커플의 성격유형을 상당히 자의적으로 추정한 글이었습니다. 개별 성격의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부정적 측면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약물복용, 극단적 선택, 허무주의, 불건강’ 등의 상당히 민감한 표현도 있었습니다. 가장 눈살이 찌푸려졌던 것은 ‘차후 000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라며 두 사람에게 향후 어울릴만한 성격유형을 추천한 부분이었습니다. 야만스럽고 저급하다는 느낌에 불쾌감이 몰려왔습니다.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은 직업적 특성상 대중의 관심을 동력 삼아 살아가는 공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사건을 현재 겪어내고 있는 자연인이자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글에서는 드라마 속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 속에 처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일말의 안타까움이나 최소한의 예의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글의 맥락과 의도로 볼 때 문제의식을 느끼며 적절하지 않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소감을 회신했습니다. 커플들이 각자의 성격유형을 알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지극히 일방적인 관점으로 활동 분야에서 인기리에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 글을 전달한 지인에게 필자의 반응은 적잖이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상황상 지극히 일방적이고 폭력에 가까운 주관적인 성격유형 분석을 아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무리수(無理手)’. 정도에 지나치게 벗어나는 방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러 번에 걸쳐 다시 읽어도 ‘무리수’라는 단어를 지울 수 없었습니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중


냉혹한 유희
발표가 나자 이틀간 포털 사이트에 쏟아진 기사만 3,000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마침 병원 진료 대기 중 대형 TV를 통해 본 연예 이슈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을 유독 반짝거리고 입술에 타액을 바쁘게 묻히며 쉴 새 없이 호기심을 발산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누더기 같은 루머와 의혹들을 덧보태며 한동안 방송 조회수를 올릴 대박을 잡은 들뜬 느낌이 여과 없이 전달됩니다. 한 언론사 기자가 관련 소식에 대한 미디어의 행태에 업계 종사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올린 기사의 제목처럼 ‘우리’는 남의 아픔을 두고 ‘클릭’ 장사를 하며 언론이라는 이름의 포장 아래 참담함을 보았습니다. 어서 이 기사를 클릭하여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라는 냉혹한 유희의 손짓에 당사자들의 고통은 증폭되고 불특정 대중의 불쾌지수는 높아졌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마케팅의 소재로 삼아 부추기는 일부 미디어와 관음증적으로 소비하는 일부 대중의 냉혹한 유희가 몹시도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속을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부딪히는 반복적인 삶의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어느 누구도 타인의 시련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내던지며 함부로 타자화, 단순화 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기쁨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고 믿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은 자기 생각만큼 깊거나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겸허히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 또한 또 하나의 유희로서의 텍스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글을 씁니다. 각종 사회면 기사에 한 편의 시(詩)와도 같은 댓글을 올려 댓글시인이라 불리는 ‘제페토’의 댓글로 글을 마칩니다.


헤어질 때에는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
외출하는 주부처럼 쓸쓸한 창문을 닫고
뚝뚝 떨구던 것도 이제 그만 잠그자.

-중략-

그러고도 오랫동안 아프겠지만
서두르지 않는 이별이
아픔은 덜하다. 그렇다고 치자.

<이별 요령> 제페토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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