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3] 그대, 그런 장소를 가졌는가
[일상문화탐구3] 그대, 그런 장소를 가졌는가
  • 미용회보
  • 승인 2020.02.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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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런 장소를 가졌는가
 
 
이불 밖은 위험해!?
2020년 새해부터 코로나바이러스로 중국, 일본,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신종바이러스 공포로 움츠러들었다. 확진 환자가 다녀간 대형 면세점, 마트, 기업의 직장폐쇄는 물론 응급실 폐쇄까지 이어졌다. 대중 모임, 공연, 전시, 서점, 도서관, 졸업식 등 주요 행사, 스터디, 교육문화 프로그램 휴강 등이 줄줄이 이어지며 소상공인들의 고통은 더욱 극심했다. 미용실도 예외가 아니었으리라. 비염으로 인한 재채기를 해도 경계의 눈초리가 온몸에 꽂히는 듯한 분위기에 작은 기침에도 입을 틀어막으며 통제를 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로 저마다 피로감이 쌓여갔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모이고 웃고 떠들고 공부하던 장소에서 사람들이 물이 빠져나가듯 사라져갔다. 인파로 북적이던 장소들은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생존을 위해 지켜내야 하는 휑한 공간이 되어가며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서로가 간절히 원했다. 온라인 마켓들은 뒤돌아 웃으며 위기가 선사해준 절대 기회를 최대한 마케팅 기회로 삼으며 ‘코로나 19 주의보!!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선정적 광고로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선동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이불 밖은 위험한가?’라는 의심을 하여본다. 자체적 격리, 사회적 격리가 중첩되어 길어지며 개인의 공간에서 접속하여 모두가 모이는 온라인 공간에는 많은 사람이 어서 오프라인 모임과 외부 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들이 모여들었다.
 
녹아내리는 눈물이 필요할 때
어쩌면 삶을 떠받치는 장소, 거기
평상시에도 쇼핑, 맛집 등 핫한 공간을 찾아다니는 일이 별로 없지만 2월은 특히나 많은 일이 몰려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많은 이들이 바깥출입을 자제하며 최소한의 동선에서 자체 격리하며 지내던 시기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것마저 포기하기는 어려워 꿋꿋하게 찾아간 장소가 있다. 거기는 집 가까이도 아니고 사무실 가까이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는 다른 동네 대중목욕탕이다. 출근 전에 들르거나 때로는 몸과 마음의 팽팽한 압력을 조금이라도 빼내는 게 필요할 때 응급처치하듯 달려가 풀어 놓는 장소다. 1, 2월 코로나의 공포를 넘어서 어쩌면 하루도 쉼 없이 달려온 내게는 다시 나아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간 장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스크까지 쓴 채 지친 몸으로 그 목욕탕을 향하며 생각하곤 했다.
왜 집 앞도 아닌데 번거롭게 거기 목욕탕을 가는 것일까.
목욕탕으로는 보기 드물게 햇살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공간 구조 때문일까.
환대해주는 이도 없는 그 공간이 내게는 어떤 의미일까.
특정한 때 찾아가서 쉬고 싶은 특정 장소란 무엇일까.
베네딕트 워드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 내부의 궁극적 장벽, 곧 우리가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는 깊고 차가운 확신'을 녹아내리게 하는 눈물이 필요할 때 내가 온전히 숨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준 곳이다. 그곳이 내게는 목욕탕이고 그중에서도 거기다.
 
▲ 그림1 출처 : 영화 - 행복목욕탕
▲ 그림 출처 : 영화 - 행복목욕탕

 

진실한 자기가 될 수 있는 곳,
퀘렌시아, 그곳이 어디인가
그때 떠오른 하나의 이미지와 단어는 ‘퀘렌시아 Querencia’ 스페인어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투우장에서 황소가 투우사와의 대치상황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서 향한다는 장소.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으며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운다. 환호하며 즐기는 자 입장에서는 황소의 그 절박함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 장소, 퀘렌시아. 황소의 거기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현재 이 싸움에서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피며 정한다고 한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황소는 그렇게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그곳에 있을 때 소는 자신이 다시 이 난관을 헤치고 나갈 얼마간의 힘을 모을 수 있다. 소만 아는 그 자리, Querencia.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반대로 투우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투우에서 이기려면 황소가 정한 그 장소를 알아채 황소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투우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 번 넘게 투우장을 드나든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
 
▲ 그림 출처 : pixabay
▲ 그림 출처 : pixabay
▲ 그림3 출처 - pixabay
▲ 그림 출처 : pixabay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퀘렌시아는 반드시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는 일과 관계의 책임 등 모든 시름을 잊고 커피 한잔과 책을 앞에 두고 잠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 또 다른 이에게는 극한의 거리 42.195km를 달리는 일, 또 누군가는 힙합을 추는 것 혹은 나무를 만지며 소품을 만드는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 이 모든 비정형의 시간과 공간이 삶에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삶은 여전히 자주 위협적이고 힘 빠지게 하는 일련의 일들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빈번하게 우리의 다짐과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지곤 한다. 그때 사람들 앞에서는 흐트러짐 없는 듯 서 있어도 내면의 나는 투우장에서 구석에 몰린 소처럼 때때로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어디로 가서 잠시 멈춰있어야 할지 알아채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마음을 추스르고, 상황을 펼쳐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렇다. 투우장의 황소처럼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숨 고르며 회복하는 장소,
삶의 작은 조각을 담는 스몰 플레이스

필자는 요즘 또 하나의 작은 퀘렌시아를 만들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 전 최소 1분에서 3분 정도의 시간을 명상 음원을 들으며 자동차도 사람도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그때 어딘가를 향하기 1분의 시간은 회복의 장소이다. 여러 번의 교통사고를 겪었던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해나가는 시간이기도 하고,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나 자신의 마음을 미리 다잡으며 스스로 평화로워지는 나만의 스몰 플레이스(Small Place)이다. 제3의 장소, 집과 일터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두는 곳. 나를 살리는 한 공간이라고도 한다. 게임에서 히든카드가 필요하듯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런 제3의 장소, 퀘렌시아가 필요한 이유다.
 
▲ 그림 출처 : pixabay
▲ 그림 출처 : pixabay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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