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리뷰 - 자산어보
시네마리뷰 - 자산어보
  • 신대욱
  • 승인 2021.04.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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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에 담아낸 시대극, 모두가 깊어지는 영화

“벗을 깊이 알면 내가 깊어진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는 조선의 학자 정약전이 저술한 어류도감인 <자산어보>에 얽힌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보태 만든 수작이다. 영화 <동주>에 이은 흑백영화로 수묵화처럼 수려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는 순조 1년(1801년) 천주를 믿었다는 이유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관직에 나아가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만나 서로 도우며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섞이기 힘들었던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사대부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정약전과 흑산도 어부인 창대의 관계를 통해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이 가능한지 질문한다.
실제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서문에 나오는 창대란 인물에서 영화가 출발했다. “섬 안에 창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은 탓에 식견을 넓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품이 차분하고 정밀하여 초목과 조어를 세밀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만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오랜 시간 그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름 지어 <자산어보>라 한다.” 

신분 뛰어넘은 우정으로 바다를 품다

영화에서 창대는 양반의 서얼로 버림받은 자식으로 나오지만, 실제 기록은 <자산어보> 서문에 나오는 게 전부다. 그나마 수평 사회를 꿈꾸던 정약전이었기에 청년 어부 창대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됐다. 서문뿐 아니라 본문에도 주요 어종을 설명할 때, “창대가 말하기를”이라고 적시한다. ‘공자왈, 주자왈’ 대신 평범한 개인의 이름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정약전의 수평적 사고가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이 같은 시기 유배를 떠난 동생 정약용보다 정약전에 마음이 간 대목이기도 하다. 신유박해로 불리는 사건으로 두 형제는 함께 유배를 떠난다. 동생 정약용은 강진,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각각 유배돼 긴 시간을 보낸다. 정약용은 알려졌다시피 이 시기 엄청난 양의 저작물을 내놓는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같은 대표적인 저술이 나온 것도 이 시기다. 반면 형 정약전은 <자산어보>와 소나무 관리 정책을 비판한 <송정사의>, 어부 문순득의 표류기를 기록한 <표해시말> 정도로 적은 양의 저술을 남겼다.
영화 곳곳에 “주자는 힘이 세구나”란 자조의 말이 나온다. 정약전은 성리학에 갇혀 나라가 쇠락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동생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글을 통해 “이제부터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에 눈을 돌리기로 했네”라고 전한다. 동생 정약용이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저술에 집중한 반면, 정약전은 민중의 삶을 위한 저술로 나아간다. 이런 태도는 창대에게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영화 초반부 정약전과 창대를 이어주는 것은 사서중 하나인 <대학>이다. 창대는 더 배우고자하는 갈망은 있지만, 그에게서 바다생물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정약전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던중 <대학>을 접하게 됐는데, 첫 구절을 해석하지 못해 답답해한다. 결국 서로 갖고 있는 지식을 ‘거래’하기로 하면서 둘 사이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다.
<대학>의 첫 구절은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친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즉 큰 배움의 도는 밝은 덕을 더욱 밝게 함에 있으며, 그 덕이 백성과 친하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함에 있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3강령이다. 이를 실천하는 덕목이 8조목인데,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우리가 주로 배운 덕목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통해 다룬 덕목이기도 하고, 넓게 보면 사람 공부라 할 수 있다. 정약전은 8조목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격물치지, 즉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데 집중한다. 

민중의 삶에 다가간 ‘자산어보’의 길

그래서 영화 <자산어보>는 ‘목민심서’의 길과 ‘자산어보’의 길을 주요 길목에 배치했다. 두 길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결국엔 이어진다. 창대가 그걸 보여준다. 창대는 정약전을 통해 배움의 깊이를 더해 ‘목민’으로 나아가 제대로 성리학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정작 그가 마주한 것은 성리학의 폐해다. 세금 포탈의 비극을 다룬 정약용의 시 ‘애절양(갓난아기와 죽은 사람에게도 부과하는 과도한 세금에 항의하며 자신의 생식기를 자른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시)’의 대목과 정약전이 마지막 혼신을 다해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장면이 병치되는 클라이맥스는 두 길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창대는 목민의 꿈을 꿨으나 결국 목도한 것은 애절양의 현실이었다. 창대는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창대는 다른 방식(영화 후반부 컬러로 등장하는 파랑새가 상징적이다)으로 목민의 꿈을 실현했을 것이다.

 

창대처럼 이름 없는 ‘개인’에 대한 관심은 여성에게도 이어진다. 이정은이 연기한 ‘가거댁’이다. ‘가거댁’은 영화에서 정약전이 유배기간동안 함께 기거한 여인이다. 가거댁이 정약전과 창대에게 일침을 날리는 장면에서다. 가거댁은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 모른다”며 “씨뿌린 애비만 중허고 배아파 낳고 기른 애미는 뒷전인디, 이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자극받은 창대는 부엌일을 거든다. 그만큼 영화 <자산어보>는 신분 차별이나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당대 민중들을 보듬어 안고 있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으면 벗이 되고 내가 깊어지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역사적 사건인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뿐만 아니라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전의 ‘송정사의’, ‘표해시말’에 얽힌 일화들도 곳곳에 배치해 이야기가 풍성해졌고, 적재적소에 배치한 정약용의 한시는 형제간의 우애를 알 수 있는 장치로 활용했다. 설경구와 변요한, 이정은 등 주요 출연진 외에도 류승룡과 조우진, 최원영, 명계남, 김의성, 방은진, 민도희, 강기영 등 조연들의 앙상블도 뛰어나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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