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 깜짝 선물
생활수필 - 깜짝 선물
  • 김시연
  • 승인 2021.05.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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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삑 삐~~~’ 현관문을 들어선 아이가 중문을 헐레벌떡 열며 말한다. "엄마! 나 1등 했어!" 어깨에 멨던 에코백은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듯이 팔뚝에 반쯤 걸린 채 늘어졌고, 신발은 아직 벗어나지 못한 발을 담은 채 상체 먼저 들이밀었다. "뭐어! 뭐가?" 난 아이 이마위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흥분한 아이보다 더 흥분되는 목소리로 다음 말을 재촉했지만 '앗!' 순간 감이 왔다. 전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엘 갔다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참여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책을 대출하면 추억의 뽑기를 할 수 있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쿠폰을 신중하게 골라 긁었더니 5등이 나왔었다. 연필과 지우개를 사이좋게 하나씩 골라 쥐고 잡은 손을 흔들며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날씨만큼 좋았다.
 "나, 내일 또 해야지!" 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뭐하러 또 하느냐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필과 지우개는 넘쳐나는데 뭐하러 또 하느냐는 말을 생략한 것이다. "재밌잖아~" 아이는 뽑기 하는 것 자체가 재밌으니 상품은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1등 쿠폰을 뽑은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쿠폰 안에 1등이 숨어있었다니, 

해마다 년 초에는 사업계획서를 쓰느라 바쁘게 보낸다. 1년 동안 먹고 살 일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해야할까? 책만 팔아서는 서점운영이 어렵다보니 시작하게 된 나라 보조사업이다. 지원사업이니 그냥 '옛다!' 하고 던져주는 건 줄 아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지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렇다. 우선 연말까지는 한해에 진행했던 사업의 정리(정산 포함)가 이루어진다. 12월31일까지 가까스로 끝내기도 하며 식사를 거르기가 일쑤다. 다음 해 1월이 되면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기지만 정산에 따른 보완 요청이 있을 때에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야 한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2월부터 당해년도의 사업을 살핀다.
시청 및 구청, 문체부 홈페이지 등에서 수많은 공모사업을 볼 수 있으나 우리의 경우엔 인천문화재단의 사업을 메인으로 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지역문화진흥원의 공모사업을 보고 있다. 나라 보조사업을 알려주는 앱도 있다던데 해당된다고 모두 할 수 없으니 이전부터 해왔던 일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2월에는 문화재단의 홈페이지를 들어가지 않는다. 정산하느라 무척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늦어진 사업의 정산 건으로 방문했다가 때이른 공고를 발견했다. 예술 표현활동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을 알게 된 건 2019년으로 문인이나 공연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연구모임 부문에 관심을 두었다. '점자를 활용한 인천의 문화상품 개발 연구'를 하고 싶은 이유였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탈락. 나 같은 사람이 하기엔 문턱이 높은 건가 싶어 잊고 지내다가 해가 더해져도 한글점자를 활용한 문화상품 개발에 대한 목표가 사그라들지 않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때 이른 공고로 그나마 쉼의 기간인 1월부터 사업계획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마감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부리나케 정산 건을 마무리한 후, 2019년에 냈던 사업 계획서를 열어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어 제출했으나 3월이 되어도 묵묵부답. 새해 처음 제출한 사업계획서인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 코로나 상황의 악화만큼 마음의 불편함도 악화되었다. 하지만 지난 일에 매달리고 있을 수 없어 이어서 올라오는 사업의 계획을 위해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낼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였던 사업까지 3개(예술표현 연구모임까지 4개)의 사업계획서를 써서 제출했다. 
기다림의 시간. 서류 발표 날까지는 그런대로 기다릴 만 하다. 하지만 서류가 선정된 후 보게 되는 인터뷰와 그 이후의 기다림은 마음을 조마조마 하게 만드니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하나가 왔다. 3월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메일에 대한 회신 요청 문자였는데 똑 떨어진 줄 알았던 예술표현 연구모임에 대한 내용이었다. 1월에 제출한 서류가 3월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으니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잘못 온 문자라고 생각하다가 혹시나 싶어 메일을 열었고, 재단의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이미 보름 전에 발표한 내용에는 나의 이름이 떡 하니 있었다. 깜짝 선물이다. '하하하 됐네!'
비록 20%나 깎인 예산으로 과정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이름도 거창한 연구 모임에 선정된 것이 그 무엇보다 기뻤다. 1년 동안 해봤자 100만원도 안 되는 인건비를 받는 사업이라 기쁨도 잠시, 제출한 다른 사업들의 발표를 애써 태연한 척 하며 기다렸다. 3시간동안 진행되었던 인터뷰도 있었고, 최종 발표 후 모니터링도 있었다. 4월 중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올해의 사업이 투명해졌다. 연구모임에 떨어진 줄 알았고, 지원사업도 어떻게 될지 몰라 덜컥 수락한 학교 수업까지 총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으니 무척 바쁘게 보낼 듯싶다. 정신차려보니 5월이 되었고 6월이 코앞이다.  

 

언젠가 남편이 물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도 이런 사업들을 하겠느냐고. 또 어떤 단체의 대표는 그랬다. 재밌어서 하는 거 아니냐고. 글쎄다. 그땐 나라지원사업 말고 자체 사업으로 운영하고 싶다. 사업계획서야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서 옮겨 적으면 되는데, 발표가 날 때까지 조마조마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너무 힘들고 강의 외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것이 그 무엇보다 힘들다. 

서점에 사람이 모이도록, 그러면 자연히 매출도 올라갈 거라는 생각에 나라보조사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다양한 사업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시야도 확장되었다. 내성적인 내가 나서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나의 성격과 성향을 뛰어 넘었다. 하지만 나도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며 가끔씩은 카페에 앉아 수다도 떨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어쨌든 깜짝 선물 덕분에 내 어깨는 봉긋 올라갔다. 


 

김시연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 공원연출 및 상품 기획
기업 문화 상품 기획(포스코 外 다수)
웹사이트 디자인(주한 르완다 대사관 外 다수)
엄마의 책장 기록집 <오늘은 고백하기 좋은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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