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아모르파티, K패션
패션칼럼 - 아모르파티, K패션
  • 지재원
  • 승인 2022.07.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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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는 가수 김연자(63)에게 제3의 전성기를 열어준 노래다. 
중3때 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가요계에 뛰어들어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한 그녀는 아모르파티가 히트하기 전까지는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인 엔카 가수’로 통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활동한 기간이 가수활동의 절반 가까운 22년이다.
일본에선 엔카 가수로, 한국에서는 트로트 가수로 알려진 김연자가 EDM(Electric Dance Music)) 리듬의 신나는 댄스곡인  아모르파티를 처음 내놓았을 때(2013년),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김연자조차 맞추기 힘들었다고 할만큼 엇박자가 심했으며 가사가 긴데다 메시지도 너무 많이 담았다.       

▲ ‘아모르파티’를 열창하는 김연자(사진 출처 : 여수 MBC) 
▲ ‘아모르파티’를 열창하는 김연자(사진 출처 : 여수 MBC) 

이 노래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어느 네티즌이 “딱 40초만 들어주세요, 딱 40초만”이라면서 아모르파티 동영상을 SNS에 적극 알린 것이 계기였다.
“산다는 게 다 그런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 소설같은 한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 (중략) …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 /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김연자가 일본활동을 접고 귀국한 뒤 작곡가(윤일상)에게 “자기 인생을 표현한 노래를 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받은 곡이다. 그래서 처음엔 노래 제목이 ‘연자송’이었다. 작사가 이건우의 노랫말에 신철 PD가 제목을 ‘아모르파티’로 달았다.

▲ ‘아모르데이(Amor dei)’ 시대에 ‘아모르파티(Amor fati)’를 주창했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사진 출처 : pixabay)
▲ ‘아모르데이(Amor dei)’ 시대에 ‘아모르파티(Amor fati)’를 주창했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사진 출처 : pixabay)

 

아모르파티(Amor fati)는 독일의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기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제기했던 개념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모르 데이(Amor dei 신을 사랑하라)’가 유럽의 보편적인 인식이던 시절에 니체는 사람들에게 “각자 자기의 운명(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했다.
 어머니가 목사의 딸이고 아버지가 목사였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니체는 <즐거운 학문> <안티크리스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저작물을 통해 “신은 죽었다”고 주장해 기독교계는 물론 유럽사회 전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철학자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흥겹게 춤추게 만드는 노래 ‘아모르파티’의 노래제목에는 이처럼 시대의 흐름을 뒤엎는 니체의 전복적(顚覆的) 생각이 담겨 있다. 
  <니체의 인생강의>를 쓴 철학박사 이진우교수(포스텍대 인문사회학부)는 “니체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말하는 철학자를 대표한다”면서, 그의 삶이 철학이고 그의 사상이 곧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동생마저 잃은 니체는 35세때 건강문제로 일찍 대학교수직을 사임하고 이후 요양 겸 여행을 하며 사색과 독서, 집필로 여생을 보낸다. 45세때 정신발작을 일으켜 10여년간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56세에 세상을 떠난 그의 일생은, 세속적으로 본다면 매우 불우했다고 할 수 있다. 청혼했던 당대의 지성(루 살로메)에겐 거절당하고, 연모했던 또다른 여성은 지인(작곡가 바그너)의 부인이었던 니체.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를 말년에 보살펴준 이는 여동생과 어머니였다.

▲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커플 구씨와 미정(사진출처 : jtbc)
▲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커플 구씨와 미정(사진출처 : jtbc)

 

 jtbc의 16부작 주말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종영된 5월말 이후에도 한동안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인기순위 1위를 지킬만큼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었다. 서울에 있는 회사의 계약직 사원인 주인공 염미정(김지원)은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3남매중의 막내다. 언니나 오빠에 비해 말수가 적고 소극적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그녀가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싱크대 제작사업 일손을 돕는 구씨(손석구)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뭘 했던 사람인지도 모르는 구씨는 싱크대제작은 물론 때때로 농사일도 돕는, 말수적은 일꾼이다. 매일 저녁 소주 4병을 마시는 알콜중독자라는 것외에는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는 구씨. 어느날 홀연히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밝혀진 그의 정체는 남자 접대부 출신이며 호스트바에서 수금을 담당하는 매니저였다. 주인공 미정은 그런 전력에도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한다. 세속의 잣대에서 해방되어 서로의 운명(삶)에 진정한 주인이 되어가는 두사람의 사랑이야기에, 사람들은 쑤욱 빨려들어갔다. 
극작가 박해영은 이미 tvN 16부작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에서도, 사망한 아버지의 사채빚을 떠안고 사채업자에게 학대에 가까운 시달림을 당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이중삼중 자물통을 걸어잠근 주인공 이지안(아이유)이 마음의 빗장을 서서히 열고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극작가 박해영의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공통점이라면 정상적이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결국엔 각자 운명의 주인공이 돼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모르파티,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학기 수업 수강생 중에 외국학생이 5명(중국 3, 말레이시아 1, 네덜란드 1) 있었다. 그들에게 K패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2명은 “K패션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고, 3명은 “K패션은 분명히 있다”고 했다.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 중에는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스트리트 브랜드 몇개를 소개하면서 자기도 그 브랜드들을 좋아한다는 적극적인 ‘K패션 팬덤’도 있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펴낸 ‘2022 해외한류 실태조사’에 의하면,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K팝이 23.2%로 1위였고 한식(20.3%) 드라마(16%) 한류스타(12.6%)가 그 뒤를 이었다. K패션은 IT제품(11.9%) 영화(10.4%) 뷰티제품(9.8%) 자동차(7.2%) 태권도(7%)에 이어 6.7%로 10개 항목중 10위였다.
 

반면에 K컬처 이용 지출 금액은 패션이 월평균 33달러(약 4만원)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뷰티(29.4달러, 약 3만5천원) 음식(24.7달러, 약 3만원) 순서였다. K패션 지출비용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화장품이나 음식값과 큰 차이가 없다. 통상 옷값이 화장품이나 음식값에 비해 몇배 더 비싼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들이 K패션을 얼마나 ‘싼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지난 2년여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 등 특수품목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분야가 길고 긴 침체기를 경험했고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해외 명품업체들은 지난해 전년대비 40% 늘어난 8조6천억원(금융감독원 통계) 규모로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전체 패션디자이너의 연간 매출액(약 6천억원)이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작년 한해 매출액(6,139억원)과 비슷하며 루이비통(1조4,680억원)이나 샤넬(1조2,238억원)에는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의 차이를 보여준다.
 

▲ 2022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출품작 중에서(씨지엔이 이서정 디자이너)(사진출처 : 엘르 코리아) 
▲ 2022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출품작 중에서(씨지엔이 이서정 디자이너)
(사진출처 : 엘르 코리아) 

 

K패션은, 외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데다 값싼 브랜드로 취급받고 국내에서는 해외명품들에 치여서 존재감이 미미한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남성복 분야의 ‘우영미’나 제일모직의 준지(정욱준), 2018년 전세계 젊은 디자이너들이 선망하는 LVMH상 수상자 황록, 2020년 전세계 젊은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넷플릭스가 주최한 패션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김민주, 특별히 홍보하지 않는데도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로의 성장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아더에러’ 등 우리나라 패션계에도 화수분처럼 숱한 인재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K팝이나 드라마 영화 등 K컬처의 다른 분야에 비하면 존재감이 아주 약하다. 
외국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마저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K패션에 눈을 돌려보면 우리만의 개성 넘치는 멋진 스타일을 디자이너브랜드, 내셔널브랜드,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등에서 얼마든지 다채롭게 찾아낼 수 있다.   
K패션에도, 아모르파티가 필요하다고 본다.     

 


 

글 / 지재원

패션 칼럼니스트, 고려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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